[사설] 백신 외교 찬물 끼얹은 문 대통령 발언
[사설] 백신 외교 찬물 끼얹은 문 대통령 발언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00:12 | 종합 34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5월 방미를 앞둔 문 대통령은 '백신개발국의 자국우선주의'를 비판하는 등 미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어제 기준으로 한국 국민의 백신 접종률은 4.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5위다. 전 세계 순위로는 70위권 밖이고, 2차 접종까지 마친 접종완료율(0.2%) 순위는 훨씬 더 떨어진다. 집단면역 목표 시점인 11월까지의 백신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정부가 아무리 강조해도 국민이 쉽사리 믿지 않는 이유가 이 통계로 설명된다. 더 많은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고, 이미 확보한 분량도 실제 도입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코로나 탈출 대열에서 저 멀리 뒤처지게 된다.
미국 겨냥 백신 자국우선주의 비판
내달 한·미 정상회담 입지 더 좁아져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관련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국경 봉쇄와 백신 수출 통제, 사재기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며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백신 개발의 압도적 선도국가인 미국을 비판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한 문 대통령의 보아오포럼 연설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을 치켜세우는 자세가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코로나19와 같은 인류 공동의 과제는 국제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이상론을 펼치기에 국제사회의 현실은 냉엄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은 더더욱 절박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고 국민의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많은 국민은 다음 달로 예정된 문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백신 가뭄의 숨통이 트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엊그제 발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얻어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과로 ‘백신 스와프’(31.2%)를 꼽아 다른 이슈를 크게 앞질렀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화이자 백신 추가 확보에 성공한 전례를 감안하면 우리 국민이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 외교 경로로 백신 스와프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어제 6000만 회분의 백신 여분을 해외에 공급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자국을 비판하는 나라에 혜택을 베풀겠는가. ‘K방역은 세계의 모범’이란 자아도취에 시기를 놓쳐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한 것도 뼈아픈 일인데, 뒤늦게 뛰어든 백신 외교마저 실패한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한없이 추락할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사설] 백신 외교 찬물 끼얹은 문 대통령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