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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 돌려야 하는 친문들의 언어

산야초 2021. 5. 6. 22:01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번역기 돌려야 하는 친문들의 언어

[중앙일보] 입력 2021.05.06 00:35 |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철호 기자

 

친문 향한 싸늘한 시선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는 지난 4년에 대한 재평가였다. 능력도 안 되면서 함부로 한 약속(“부동산은 자신 있다”“소득주도 성장은 전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선거법 일방 강행)에 대한 차가운 심판이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안 돼 선거 참패는 묻히고 있다. 임기 1년을 남긴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거침없는 질주 중이다.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늦추는 대신 기존 정책 방향을 고수하면서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다.
 

정책 전환은커녕 가속 페달만 밟아
명분·원칙보다 지지층 눈치 살펴
주요 현안에 사회 흐름과 정반대
친문, 자폐로 치달을까 걱정스러워

 

친문재인 진영은 선거 패배를 “개혁이 부진했기 때문”이라고 딴청을 피운다. 선거 민심도 “정책 전환이 아니라 보완 요구가 핵심”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연장 선상에서 코로나 백신·검찰 인사·부동산·삼성 이재용 부회장 사면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사회의 흐름과 정반대로 역주행 중이다. 명분도 잃고 원칙도 사라지고 있다. 강성 친문의 문자 폭탄에 대해서도 “권장돼야 할 사안”이라며 맞받아친다. 어느새 자기 진영의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다. 말 뒤집기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언어는 정치적 번역기를 돌려야 겨우 해석될 지경이다.
 
검찰의 탈정치화와 이중잣대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탈(脫)정치화는 적어도 제가 20여 년 가까이 본 문 대통령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김오수 전 차관을 검찰총장으로 추천하면서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굉장히 높다”고 했다. 김 후보자와 이성윤 중앙지검장 등이 탈정치 검사의 표상이란 유체이탈 화법이다. 친문 진영은 정권 말기와 퇴임 이후를 대비한 방탄 인사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호남 출신이어서 지역 안배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도 꿈쩍 않고 있다.
 
오죽하면 진보 매체조차 “김오수·이성윤은 피할 수 없는 ‘정치 검사’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다”고 걱정할 정도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등 곳곳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중잣대는 흔들릴 조짐이 없다. 자신들 말을 잘 들으면 탈정치 검사, 안 들으면 정치검사라는 게 친문의 언어다. 일부 친여 매체들마저 “윤석열 전 총장을 ‘정치하는 검사’라고 비난하면서 왜 ‘정치검사’ 김오수·이성윤을 고집하나”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백신은 안전하고 광우병만 위험한가
 
그제 의사 출신의 이용빈 민주당 대변인은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해 “소화제를 먹어도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사고보다 훨씬 확률이 낮다”며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백신 불안으로 끌고 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언론 태도”라고 비난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실제 부작용 확률도 그의 말대로 1000만분의 1 정도다. 하지만 이 또한 진영논리일 뿐, 백신 부작용을 실제 목도하고 있는 국민에게 할 말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파동 때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학계에서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10억분의 1로 추산했다. 로또복권 당첨 확률(814만분의 1)의 1% 정도다. 골프에서 홀인원 하고 돌아오다 벼락을 맞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만약 그 당사자가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라도 그런 말 하겠느냐”며 핏대를 세웠다. 지금 돌아보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광우병의 10억 분의 1은 위험하고, 코로나 백신의 1000만 분의 1은 괜찮다는 논리가 과연 국민에게 먹혀들까.
 
“백신 원활하다”는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의 백신 발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 백신 도입과 접종은 당초 계획 이상으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백신별 도입 물량을 1차, 2차 접종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이미 주변의 75세 이상 어르신들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현실이다. 아스트라제네카(AZ)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백신 절벽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헛발질의 연속이다. “백신 업체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매달리고 있다”(11월·박능후 복지부 장관)→“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12월 9일· 문 대통령)→“모더나 CEO와 내년 2분기 2000만명분 백신 합의했다”(12월 29일·문 대통령) 등은 모두 가짜뉴스였다. 그럼에도 미국·이스라엘·영국 등 백신 선진국과 비교되며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무리수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야당과 일부 언론이 가짜 뉴스로 방역을 정쟁화하고 있다”며 뒤집어씌웠다. 문 대통령도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라”며 거꾸로 가고 있다.
 
이에 대해 굳이 보수 야당의 반박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 한 달간 여영국 정의당 대표의 발언으로 충분하다. “정부가 K 방역 성과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느라 백신 구매에 안이했다. 백신이 민생인데 11월 집단 면역은 불가능해졌다.” “(백신 절벽은) 정부가 4월까지 300만명 접종 목표를 채우기 위해 (1차 접종 인원을 무리하게 늘이다가) ‘아랫돌 빼내 윗돌 괸’ 탓에 자초한 것이다.” 차라리 문 대통령이 “이달 중순부터 AZ 백신 723만회 분이 들어오니 보름 정도의 백신 보릿고개를 양해해 달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말 바꾼 삼성 이재용 사면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충수염 수술을 받은 뒤 구치소로 돌아갔다. 삼성병원 측은 원기 보충을 위해 마지막 식사로 고기를 내놓았으나 이 부회장은 “냄새가 너무 역하다”며 그냥 물렸다고 한다. 맹장이 터진 뒤 한 달 가까이 죽과 미음을 먹다 보니 쇠고기 냄새조차 맡기 어려워진 것이다. 몸무게도 7~8kg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제단체들과 종교계가 청와대에 이 부회장의 사면을 공식 건의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당초 정부는 “특별 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쉽지 않다”(정세균 전 총리, 4월 21일)는 입장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면 사면을 검토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 후 알앤서치와 윈지 코리아,데이터 리서치 등의 여론조사가 꼬리를 물었다. 모든 조사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이 부회장 사면은 70%가 찬성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다.
 
갑자기 친문과 진보 진영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사면이 정권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둔갑해 버렸다. 참여연대·민변·민주노총 등은 “이 부회장 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 아닐뿐더러 우리 경제와 삼성그룹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예 사면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 부회장 사면은 (국정농단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연결돼 있다. 사면 문제를 경제 영역으로만 판단할 사항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이때부터 사면 반대의 공격이 거칠어졌다. 민주당 부대변인은 “삼성어천가 때문에 토할 것 같은 하루”라고 했다.
 
친문, 조국·김어준 등 자기편 지키기
 
보수 정권 시절에 친문들은 정부 광고를 특정 매체에 몰아준다고 비난했다. 그런 친문 출신의 김의겸 의원이 “정부 기금으로 뉴스 포털을 만들자”며 “이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에 정부 광고를 우선 집행하자”는 언론 개혁안을 내놓았다. 정부 광고를 이용해 대놓고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딸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산대가 꿈쩍 않는 데는 숨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부산대 관계자에 따르면 차정인 총장은 부산·경남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부산대 로스쿨 교수 시절 노무현 재단 경남지역 대표까지 지냈다. 얼마 전 부산대는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조민씨의 입학취소 여부를 판단할 공정관리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사법부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부산대가 먼저 입시 비리에 대한 판단을 내릴지는 의문이다.
 
친문들은 요즘 조국·김어준 등 자기편을 지키느라 결사옹위에 들어갔다. 그들의 언어는 번역기를 돌려야 겨우 알아들을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도 모든 사안을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해석하기 시작했다. 최근 민간 구조사가 한강변 실종 의대생의 시신과 핸드폰을 잇달아 건져 올리자 “경찰은 무얼 하고 있나”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한 네티즌 반응은 “지금 경찰은 대통령 관심사인 대북 전단 찾느라 너무 바쁘다”는 게 대세였다.
 
이뿐 아니다. 검찰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전 장관이 “기소권 남용”이라 비판하고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선 출마가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우리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얼마나 단련됐는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지금 SNS에는 “설사 유 이사장이 내년 옥중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 흘러넘친다. 자폐 조짐의 친문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번역기 돌려야 하는 친문들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