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 국민 괴롭힐 생각 말고 90% 국민 주거 개선에 집중해야
[사설] 10% 국민 괴롭힐 생각 말고 90% 국민 주거 개선에 집중해야
조선일보
입력 2021.05.26 03:22
서울 종로구 사직2구역의 모습. 당초 이 지역은 재개발을 통해 456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뀔 예정이었지만 2017년 서울시가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직권 해제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분노한 민심을 반영하겠다며 시작한 부동산 정책 논의가 용두사미로 흐르고 있다. 재산세를 0.05%포인트 깎아주는 감면 대상을 현행 공시가격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높이는 것 말고는 종부세 기준 완화 등 주요 쟁점에서 당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갈팡질팡이다. 부동산특위 위원장을 경제 관료 출신 김진표 의원으로 교체하면서 의욕을 보였지만 강성 친문들에게 막혀 논의가 헛돌고 있다. 12년 전 정해진 ‘공시가격 9억원 이상‘의 종부세 기준을 집값 급등에 맞춰 현실화하자는 논의조차 “국민 96%는 종부세와 아무런 상관 없다”는 강경파 목소리에 밀렸다.
보완은커녕 주택 임대사업자에게 부여해온 종부세 합산과세 배제 혜택도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는 등 도리어 과세 강화 쪽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집값을 올려놓고는 주택을 대거 공급할 노력을 하는 대신 임대사업자를 ‘다주택 투기꾼’으로 몰아 집을 팔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에 없던 세제 혜택까지 약속하면서 민간 임대사업을 독려해 집 구매를 부추기더니, 정책을 180도 바꿔 민간 임대사업자의 긍정적 기능까지 무시하려 한다. 민간 임대주택의 77%가 아파트가 아닌 연립, 원룸, 오피스텔 등이어서 아파트 가격 안정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근본 이유는 주택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와 시장 상황을 무시하고 국민을 90% 다수 대(對) 10% 소수로 편 가르기 하는 부동산 정치에 매달린 탓이 크다. 지난해 재산세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집값 6억원을 기준으로 주택 소유자를 ’92대8′로 갈라치더니 부동산 민심이 갈수록 험악해지자 이번엔 종부세 대상이냐 아니냐로 ‘96대4′의 프레임을 만들려 한다. 그런 사고방식에 갇혀 있으니 집 하나에 오래 살아온 국민이 느닷없이 벌금 같은 세금을 물게 돼도 그 고통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국 주택의 절반이 지은 지 30년 넘는 주택이다. 쾌적한 새집에 살고 싶은 건 사람의 기본 욕구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전임 시장 9년간 개발을 억제하고 담장 칠하기 같은 전시성 정책으로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 여기에다 문 정부 4년간 이념에 매달려 집값 양극화를 더 키웠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격차,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자산 격차, 서울 강남과 강북의 삶의 질 격차가 역대 최악이다. 10%의 가진 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때려 90%의 표심을 자극하겠다는 부동산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국민 90%의 주거 질(質)을 높이는 목표로 4년간 부동산 정책을 펴왔다면 결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