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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2시간, 먹는덴 10분... 태풍와도 줄 서는 ‘30회전’ 막국수 [결정적 메뉴]
산야초
2022. 7. 6. 19:03
대기 2시간, 먹는덴 10분... 태풍와도 줄 서는 ‘30회전’ 막국수 [결정적 메뉴]
‘하루 30회전’ 불멸의 기록 세운 ‘고기리 막국수’
전국 100여곳 돌며 막국수 공부, 영동지방 비빔면에서 착안
손맛 대신 철저한 계량화로 맛 유지 #사장의 맛
박정배 음식평론가
입력 2022.07.06 11:05
날 좋은 주말이면 ‘고기리 막국수’는 하루에 1700여그릇의 막국수를 팔고 매출이 2000만원이 넘는다. 하루에 테이블 8개를 ‘30회전’ 한 기록도 있다. 식당 주인들에게 30회전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불멸의 기록으로 회자되고 있다. ‘태풍이 와도 줄 서는 집’이란 평가답게 평일에도 1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주말이면 기본 1시간 반~2시간이다. 10여년 전까지 경기도 용인의 고기리는 물놀이 하기 좋은 고즈넉한 계곡이었다. 2012년 홍천의 ‘장원막국수’에서 막국수 기술을 전수받은 부부의 작은 식당은 이후 고기리를 거대한 식당과 카페 타운으로 탈바꿈시켰다. 막국수 메뉴가 바꾼 나비효과다.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외식업 판도를 바꾼 ‘결정적 메뉴’를 연재합니다. 오늘은 들기름 막국수 열풍을 만든 주인공 ‘고기리 막국수’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탐구합니다. 음식평론가 박정배씨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메뉴는 들기름 막국수, 막국수, 수육 세 가지다. 막국수는 2012년 창업 당시부터 이 식당을 지켜온 근간이다. 막국수는 깊은 우물물 같이 맑고 단아한 국물에 물기를 잘 빼내 야구공처럼 둥근 모양의 국수 사리가 반쯤 잠겨 있다. 회색이 은은히 감도는 하얀 사리 위에 무채와 초승달 같은 배, 노란 지단 한 점이 올려져 있다. 외관으로 막국수인지 냉면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메밀 비빔면의 대중화에 성공... 들기름 막국수
현재 고기리 막국수의 명성을 만든 건 들기름 막국수다. 국수 매출의 60% 이상이 들기름 막국수에서 나오고, 2021년에는 오뚜기에서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 제품도 나왔다. 전국에 들기름 막국수를 메뉴로 내는 식당도 제법 생겼다.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국수는 국물 국수가 주를 이뤘다. 막국수나 냉면은 ‘시원한 국물’로 더위를 날려 주는 더위 방탄 냉장고였다. 비빔면은 짜장면, 쫄면 정도가 대중화된 것들이다.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는 메밀로 만든 비빔면의 대중화라는 점에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핵심 재료인 들기름은 처음에는 대기업 시판 들기름을 사용하다가 동네 방앗간으로 바꾼 뒤 지금은 기름 명가로 유명한 ‘옛간’의 들기름을 사용한다. 많이 볶아 색과 향이 강한 방앗간 것과 달리 찜 누름 방식으로 짜낸 들기름은 색과 맛이 연하지만 은근하고 깊은 맛이 난다. 과한 것을 배제하려는 두 대표의 음식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간장은 ‘샘표501’을 사용한다. 김과 함께 올라가는 깨는 향과 식감을 동시에 주도록 두 가지 방식으로 가공해 올린다. 김과 참깨, 들기름, 간장이 가는 메밀 면 위, 아래에서 면발을 감싸 안으면 들기름 막국수 한 그릇이 완성되는 것이다.

◇100군데 막국수 투어의 결론... ‘고급스럽게’
고기리 막국수의 유수창·김윤정 대표는 창업 전부터 100군데 이상의 막국수 투어를 다닌 마니아였다. 부부가 막국수 투어를 다니며 안타까워한 것은 표준화와 세련됨이 부족해 막국수는 ‘막’ 대접을 받는 저렴한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들기름 막국수의 시작은 영동지방이었다. 유수창 대표는 “영동지방에는 들기름을 간장이나 식초와 함께 탁자에 두는 식당들이 많아요. 국수는 맛있는데 양념이나 간이 면과 안 맞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거기는 면과 육수가 따로 나오거든요. 손님 취향대로 만들어 먹는 DIY(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보는 것)스타일인 거죠” 라고 말했다. 이렇게 면과 육수를 따로 먹는 방식은 영동을 중심으로 강원도 전 지역에 남아있다. 비빔으로 반쯤 먹다가 육수나 동치미국물을 부어 먹는다. 부산의 밀면도 그렇게 먹는다.
막국수 투어 중 만들어 먹던 비빔막국수의 실험은 식당으로 이어졌다. 2012년 시도한 최초의 들기름 막국수는 김가루가 크고 국수 사리의 모양은 물 막국수처럼 둥글게 말아 올린 것이었다.
둥글게 만 면 사리는 국물이 있으면 쉽게 풀어지지만 비벼 먹기에는 약간의 난이도가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김이었다. 김은 호남에서 1950년대에 원조 밥도둑으로 불렸을 정도로 감칠맛이 강하고 향이 좋다. 하지만 김은 입에 잘 들러붙어 매끄러운 먹기를 방해한다.
메밀은 분 단위로 사리의 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먹는 게 중요하다. 오랜 고민과 시식을 통해 2017년이 돼서야 지금 형태의 김 가루가 완성됐다. 김을 깨처럼 잘게 부숴 입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김가루가 뿌려진 들기름 막국수를 비비는 게 아니라 떠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