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산야초 2016. 7. 9. 22:04


 

 

모음곡 페르귄트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는 1843년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북해로 새우잡이를 왔다가 노르웨이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여성이었다. 그리그가 태어났을 당시 노르웨이는 1536년에 덴마크에 병합되어 약 300여 년간의 지배를 받았고 1814년부터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격파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된 것은 1905년의 일이었다고 하니 그리그가 태어난 1843년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였다.

 

 

  

페르귄트 모음곡 op. 46 – 아침

 

 

페르귄트 모음곡 op. 46 - 오제

 

 

 

페르귄트 모음곡 op. 55 – 솔베이그의 노래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Cond

페르귄트 모음곡 op. 55 -  아니트라의춤(Anitras Tanz

 

 

그리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같은 베르겐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올레 불의 인정을 받아, 그의 권유로 15세때(1858년)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한다. 이 시절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도 들었고 바그너의 [탄호이저]도 여러 번 보았다 전해진다. 귀국 후 21세 때,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작곡가였던 노르드라크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듬해 코펜하겐으로 옮긴 그리그는 덴마크 음악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와 교류했다.

 

그리그는 1865년에 로마를 여행했고, 1870년에 리스트의 초대로 재차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이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1868)을 연주한 리스트는 그리그를 극찬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1867년에 오슬로 음악 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 활약했고, 1874년 31세 때부터 고향인 베르겐이나 오슬로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국가의 종신 연금을 얻어 작곡에 전념했다. 그리그가 [페르귄트]를 작곡한 것은 이 시절이었다.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그리그.

 

 

 

위대한 극작가 입센의 작품에 음악을 입히다

작곡가들의 작품을 작곡 분위기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확신에 의해서 감전된 듯 써나가는 작품이 있고, 반신반의하며 회의 속에서 작곡하는 곡이 있다고 할 때 [페르귄트]는 명백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리그는 평소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서정적이라 극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페르귄트]를 처음 의뢰 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했었다고 한다. 돈 때문도 아니었고 단지 주제가 음악적이지 않아 아무런 영감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낳은 위대한 극작가 헨릭 입센의 위촉을 받고 힘을 내 작곡에 임한 결과, 그리그의 최고 명곡일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 [페르귄트]가 탄생했다. 그리그는 의뢰를 받은 31세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했고, 다음 해 여름에 완성했다. 처음에는 피아노 2중주 형식으로 출판했다가 뒤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이 극음악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춤곡, 독창곡, 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헨릭 입센이 노르웨이 민속설화를 소재로 해서 쓴 [페르귄트]의 환상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페르귄트는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재산을 낭비하고 몰락해 버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과부가 된 어머니 오제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페르귄트는 대단히 게으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는 자신이 잘 될 것이라 큰소리 치며 꿈을 꾸는 몽상가이자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돈과 모험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면서 기적적인 모험을 겪는 페르귄트는 남의 부인을 빼앗기도 하고,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농부의 딸인 솔베이그가 나타나 서로 사랑을 맹세하지만, 페르귄트는 애인인 솔베이그를 두고 늙은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다. 페르귄트는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등 부와 모험을 좇아 고뇌와 유랑의 모험을 하던 페르귄트는 끝내 몰락한다. 그는 노쇠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 산중의 오막살이에는 솔베이그가 페르귄트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이 된 채. 그리하여 페르귄트는 그를 사랑하던 여인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그는 후에 이 극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4개의 작품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하고 그 후에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삼았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 입센은 그리그에게 자신의 작품
[페르귄트]에 곡을 붙여줄 것을 의뢰했다.

 

 

 

제1모음곡 Op.46

1. 아침의 기분 (Morgenstimmung)

원래 4막의 전주곡으로 경쾌한 목가다. 조용한 새벽빛이 떠오르는 모로코 해안의 아침 기분을 목가풍으로 묘사했다. 이 아름다운 아침의 정경은 한 폭의 그림같이 전개된다.

 

2. 오제의 죽음 (Ases Tod)

느리고 비통하게 연주된다. 어머니 오제는 산에서 돌아온 페르귄트를 맞아 병상에서 아들의 공상 이야기를 들으며 임종을 맞는다. 여기서 나오는 간명한 슬픈 노래가 고독했던 늙은 어머니의 죽음을 잘 그려놓았다. 전곡을 통해 슬픔을 가장 잘 대변해 놓은 곡이고, 유유한 구상에 높고 풍부한 감정, 어두운 측면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만가이다.

 

3. 아니트라의 춤 (Anitras Tanz)

4막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천막에서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추는 춤곡이다. 매력적이고 깨끗한 작품으로 현악기와 트라이앵글로 연주하는 동양풍의 요염함이 돋보인다.

 

4. 산속 마왕의 전당에서 (In der Halle des Bergkonigs)

2막 산 속 마왕의 전당 장면이다. 개막 전부터 연주되는 행진곡풍의 곡으로 동굴에 사는 마왕의 부하들이 춤을 추면서 마왕의 딸을 페르 귄트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주위를 돌아다닌다.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큰 폭음이 폭발해 악마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그는 이 부분에 대해 “소똥 냄새가 나는, 너무도 노르웨이적인 작품이다”라고 코멘트했다.

 

부와 모험을 쫓아 유랑하는 페르귄트의 모습을 그린 삽화.

 

 

 

제2모음곡 Op.55

1.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Der Bruderovet Ingrids Klage)

원곡에서는 2막의 전주곡이다. 신부의 약탈이라는 짧은 테마가 관현악을 통해 격렬하고 야성적인 절규를 하게 된다. 페르귄트는 신부를 약탈해 산으로 가지만, 곧 그 여자에게 권태를 느껴 새로운 꿈을 그리며 깊은 산으로 도망치게 된다. 처음에는 약탈을 묘사한 음악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의지할 데 없는 탄식을 묘사하고 있다.

 

2. 아라비아의 춤 (Arabischer Tanz)

4막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의 장면이다.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으로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반해버린 페르귄트의 심리 상태를 묘사했다. 페르귄트는 마치 예언자처럼 가장하고 춤을 구경한다. 아라비아의 아름다운 소녀들은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플루트와 탬버린이여 기뻐 소리를 외쳐라” 하면서 합장하며 춤을 춘다.

 

3. 페르귄트의 귀향 (Peer Gynts Heimkehr)

5막에 나오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해안의 저녁이다. 페르귄트는 미국에서 금광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돌아가는 길에 폭풍을 만나 배가 부딪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알몸뚱이가 된다. 그리그는 천지를 뒤엎는 큰 폭풍우의 정경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4. 솔베이그의 노래 (Solveigs Lied)

페르귄트의 귀향을 애타게 고대하는 솔베이그의 심정을 노래한 너무나 유명한 이 멜로디는 이 극에서 세 번 나온다. 꿈을 그리면서 헤매던 몽상가 페르귄트는 기쁨과 슬픔이 얽힌 오랜 여정을 마치고 지친 늙은 몸으로 고향의 오막살이로 돌아오게 된다. 백발이 된 솔베이그는 페르귄트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기를 위해 기다려준 솔베이그의 무릎에 엎드려 평화스런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곡은 마쓰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테마 음악으로도 변용되었는데, 아내의 영원한 순정을 노래한 이 명곡의 내용은 이렇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추천음반
명곡이기에 1970년대 이전에도 훌륭한 연주들이 많이 존재하는 데다가, 전곡연주가 가능하게 된 1980년대 이후부터는 원어 연주와 많은 곡들을 담은 음반들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연주는 북유럽의 피가 흐르는 두 지휘자, 외이빈 피엘스타트와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의 음반이다. 노르웨이 출신 피엘스타트의 연주에서는 넓은 폭에 꽉찬 관현악이 묵직하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그늘진 우수가 느껴진다. 스웨덴계 미국인 지휘자 블롬슈테트는 원어판을 사용해서 20곡을 발췌했는데, 북유럽 가수진을 동원해 소박하고도 진지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에스토니아 국립교향악단과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의 녹음은 2005년 이 곡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예르비는 성악 파트를 통찰력있게 취급하여 기존의 명연이던 아버지(네메 예르비)의 연주를 넘어서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주이트너의 젊은 시절 해석(1952~1953년)은 훗날 독일/오스트리아 작품들에서 보여준 풋풋하고 싱그러운 해석의 예고편처럼 들려온다. 어쩐지 소슬하게 다가오는 극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기량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