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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 현악사중주 라장조 종달새

산야초 2016. 7. 20. 23:12


Streich quartett No.35 in D major, Op.64-5
하이든 / 현악사중주 라장조 종달새
Franz Joseph Haydn [1732∼1809
data & makeup-shomron

1790년에 작곡한 것으로 <종달새>라는 이름은 제1악장 제1테마의 선율, 제4악장의 음형에서 새의 지저귐이 연상되기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 세상의 시름을 다 잊고 그저 즐겁기 만한 종달새가 하늘 높은 곳에서 움츠렸던 날개를 마음껏 펼쳐보는 기쁨의 노래와 같다.

 

 
작품설명

하이든 현악 4중주 D장조 작품 64-5 "종달새" 여섯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작품 64중 제일 먼저 작곡된 제5번은 <종달새>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이든은 많은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이 곡은 곡의 첫 부분에 나오는 바이올린의 연주가 마치 종달새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종달새’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 중의 하나이다.

현악 4중주는 제 1 바이올린, 제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각 1명씩 4명으로 연주하게 되는데, 규모가 큰 관현악곡처럼 풍부한 음량이나 다채로운 음색을 들려주지는 않지만, 현악기들만으로 구성되어 소리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현악 4중주와 같이 소수의 인원이 각각 한 파트를 맡아 연주하는 곡을 실내악곡이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처음에는 교향곡 같이 규모가 큰 곡을 많이 듣다가 나중에는 실내악곡에 심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작곡가들이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지만 그 중에서도 하이든의 곡은 가장 듣기 쉬운 곡이라고 할 수 있다. 현악 4중주는 하이든이 교향곡 다음으로 가장 많이 작곡한 분야이며 뛰어난 곡을 많이 남긴 분야이다. 하이든이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이 곡을 작곡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곡의 제 1악장을 들어보면 들판에서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요즘 같은 봄 날씨에 어울리는 실내악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멀리하고 창공에 높이 올라 즐겁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종달새의 이미지가 적절하게 표현된 아주 경쾌하고 가벼운 곡으로,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곡이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D장조 2/2박자
1악장은 여린 스타카토 음으로 시작되며 제1바이올린이 높은 음으로 여유있는 종달새의 울음과도 같은 선율을 노래하면, 다른 악기들은 이에 리드믹한 반주를 담당한다.
제2악장 - 아다지오 칸타빌레 A장조 3/4박자
2악장은 감미로운 선율이 대위법적으로 반주되면서 노래되며 장조와 단조의 주제가 충분히 선율적으로 변주되면서 재현된다.

제3악장 - 미뉴에트 알레그레토 D장조. 트리오 d단조
3악장은 미뉴에트로서 즐거운 느낌을 주며

 
제4악장 - 피날레 비바체 D장조 2/4박자
4악장은 유쾨한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듯하게 빠른 악구를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연주하며 결미부로 들어가서는 화려하고 박력있게 전곡을 끝내는 상쾌하고 매력적인 악장이다.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

오스트리아 로라우에서 출생한 하이든(1732~1809)은 현세에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려지고있다. 100곡 이상의 교향곡, 70곡에 가까운 현악4중주곡 등으로 고전파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만년에는 미사곡과 《천지창조(天地創造) Sch pfung》(1798), 《사계(四季) Die Jahreszeiten》(1801) 등 오라토리오풍의 교회음악의 명작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수레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때 친척인 초등학교 교장이자 교회음악가인 프랑크라는 사람의 집에 가서 교육 을받았다. 그리고 1740년 빈의 성스테파노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간 그는 당시의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았으나 1749년 변성기에 들어가자 합창대를 나와 그때부터 빈에서 자유롭기는 하였지만 불안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1759년까지 10년간이나 계속되고 그 동안의 자세한 경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어느 시기에는 이탈게작곡을 배우기도 하고 음악 애호가인 귀족 툰 백작부인의 하프시코드 교사가 되기도 하였으며,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인 N.포르포라에 오스트리아의 귀족 퓌른베르크남작 집안의 실내음악가로 고용되기도 하였다 한다.또 스테파노대성당 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가수로서 예배주악에 참가하기도 하였으며 밤에는 세레나데악단에 참여하여 빈거리로 나와 돈을 버는 일도 하였다.

이처럼 고생을 하면서 음악과 더불어 살아간 그는 10년 후인 1759년 마침내 보헤미아의 모르친 백작 집안 궁정악장(宮廷樂長)에 취임하였다. 보헤미아에 부임한 하이든은 그곳에서 초기의 교향악과 관악합주인 디베르티멘토를 작곡하였다. 그러다가 백작의 집안 재정상태가 핍박하여 악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다시 실업자가 되어 빈으로 돌아왔고, 1760년 11월 가발업자의 딸 마리아 안나 켈라와 결혼하였다. 1761년 5월 1일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후작 집안의 부악장(副樂長)에 취임하였다. 당시의 악장은 G.베르나였으나 그가 사망한 1766년부터는 하이든이 명실상부한 그곳 악장으로 승진하였다.

에스테르하지후작의 집에서는 하이든이 17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충실한 악장으로 근무하였다. 그 동안에 많은 교향곡(현악4중주곡 오페라) 등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 등 실내악(클라비어소나타) 등 기악곡에 있어서는 고전파의 규범이 되는 형식을 창조하고, 1781년에는 소나타 형식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6곡으로 된 《러시아4중주곡》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리고 1780년대에는 파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곡의 《파리교향곡》을 비롯하여 《토스토교향곡》(2곡) 《도니교향곡》(3곡) 등 명작을 잇달아 작곡하였다. 1790년 9월 그가 오랜 세월을 모시던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후작이 사망하자 그는 명예악장이라는 칭호를받음과 함께 그 직을 물러나 빈에서 살았다.

이 무렵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성공을 거둔 J.D.잘로몬의 권유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791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런던에서 오케스트라시즌에 출연하였는데 그는 《잘로몬교향곡》(제1기, 6곡)을 작곡하여 크게 성공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명예음악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그런 성과에 크게 자극을 받은 하이든은 1794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다시 영국을 방문, 《잘로몬교향곡》(제2기, 6곡)을 작곡하였다.

만년의 하이든은 다시 에스테르하지 집안의 악장으로 되돌아갔으며 뛰어난 미사곡 6곡을 작곡하고 또 두 개의 오라토리오의 대작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하였다.하이든은 젊은 모차르트와 친교가 있었는데 첫번째 영국 체류 중이던 1791년에 모차르트는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런던에서 독일로 돌아가던 1792년, 본에 들렀던 하이든은 거기서 처음으로 젊은 베토벤을 만났으며 그후 잠시 빈에서 그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베토벤이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게 될 무렵에는 은퇴하여 여생을 즐겼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제2회 빈 공략의 포성을 들으면서 77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