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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중국 혐오 왜?... 세계 각국 투자계약 잇달아 취소-연기

산야초 2016. 8. 15. 16:07

번지는 중국 혐오… 글로벌사업 제동

구자룡 특파원 , 동정민 특파원 , 부형권 특파원

입력 2016-08-15 03:00:00 수정 2016-08-15 03:00:00


세계 각국 “차이나머니에 안보까지 휘둘릴 위험”… 투자계약 잇달아 취소-연기
濠 “전력공급사업, 中에 매각 반대”  
英, 中컨소시엄 원전건설 승인 보류  
美, LA연결 고속철 공사 취소 통보  
中 “중국 혐오증 드러낸 것” 반발
 

중국이 외국의 철도와 에너지 발전 등 대규모 국가 기간사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지만 해당국에서 계약을 갑자기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핵심 인프라 산업에 대한 투자로 국가 안보가 위협받거나 거대 중국자본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차이나머니는 싫다’는 중국 혐오증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호주 정부가 11일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국 배전망 사업의 중국 매각에 반대한다고 발표하자 다음 날 “중국 혐오증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관영 언론이 외국에 ‘중국 혐오증’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배전망 사업체인 오스그리드를 99년간 장기 임대하기로 하고 투자자를 물색해 왔지만 막판에 중국국가전망공사(SGCC)와 홍콩 부호인 리카싱(李嘉誠) 소유 청쿵인프라그룹(CKI)만 남자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중국 관영 언론이 반발하자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12일 “국가 안보를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4월에도 한국 국토보다 넓은 1100만 ha(약 11만 km²)의 소(牛) 목장인 ‘시드니 키드먼 앤드 컴퍼니’를 중국 회사에 파는 것에 반대하면서 “국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댔다. ‘국토가 중국에 팔려나간다’는 반(反)중국 정서가 강하게 작용했다. 호주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고 두 나라 간에 자유무역협정(FTA)도 맺었지만 안보 이익에 관련된 부분은 양보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중국, 프랑스와 합작으로 영국에 건설하려던 ‘힝클리포인트 C’ 원전 건설을 보류한 것에도 차이나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작용했다. 중국 컨소시엄에 당초 계약 당사자인 중국 국영 광핵그룹(CGN) 외에 핵무기 제조 군수업체인 중국핵공업그룹(CNNC)이 개입한 사실이 막판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가 최근 CGN과 이 회사에 고용된 핵 기술자 앨런 호를 핵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한 것을 보고 영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국에선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돈의 출처와 그 목적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상반기 중국 기업의 미국 내 직접투자 총액은 184억 달러(약 20조3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64억 달러)의 약 3배에 이른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자본이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물밀듯 들어오지만 일부 투자자는 미국 기업의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혁신적인 기술만 빼내가려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중국 칭화(淸華)대 산하의 반도체회사 칭화유니그룹은 D램 반도체회사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인수하려다 미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핵심 기술 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 미 반도체 산업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익스프레스웨스트는 6월 로스앤젤레스(LA)와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길이 370km의 고속철도 공사에서 중국철도국제유한공사와의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중국 기업이 127억 달러(약 14조270억 원)짜리 미국의 첫 고속철도를 건설해도 되느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우방국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입찰에도 ‘중국은 안 돼’라며 입김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 정부는 2014년 11월 수도 멕시코시티와 산업도시 케레타로를 잇는 210km 고속철도 공사 입찰에서 중국 기업이 주도한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발표했다가 3일 뒤 취소했다. 미국이 반대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항해 건설되는 니카라과 운하는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이 수주해 내년 5월 착공한다. 이 회사는 홍콩 자본이지만 중국 정부와의 관련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운하 건설 지역 주민들이 환경 문제로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파나마 운하에 영향력이 있는 미국이 뒤에서 견제하고 있다는 뒷말이 적지 않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자본이어서 싫다’며 외국에서 거부당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외국 진출 사례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중국 자본 경계령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을 이으며 실크로드의 화려한 꿈을 재현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플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뉴욕=부형권 / 파리=동정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