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163cm의 비밀
박정희의 신장은 크지 않았다. 대통령 재임 중 작성된 그의 공무원 인사기록카드에는 신장이 163cm로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의 키가 작은 이유는, 모친 백남의가 박정희를 유산시키려고 임신기간 중 갖은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그의 집안이 가난해 제대로 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발육을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모친 백남의 씨는 막내 朴正熙에 대해 유달리 사랑을 쏟았는데 그런 미안함에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다들 체구가 건장하고 신장도 큰 편인데 나만이 가장 체구가 작은 것은 이 보통학교 시절에 원거리 통학으로 신체발육에 큰 지장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의 소년 시절》 中
朴正熙는 유년 시절에 잦은 滯症(체증)을 앓았다. 소화제도 없던 시절이라 그는 침장이에게 침을 맞으러 다녔다고 한다.
<학교에 가지고 간 도시락이 겨울에는 얼어서 찬밥을 먹으면 나는 흔히 체해서 가끔은 음식을 토하기도 하고 체하면 때로는 아침밥을 먹지 않고 가기도 했다. 이럴 때는 하루 종일 어머니는 걱정을 하신다. 그러나 그 당시 시골에는 소화제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하면 이웃집의 침장이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침을 맞았다. 이상하게도 그 침을 맞으면 체증이 낫는 것 같았다. 나의 왼손 엄지손가락 뿌리에는 지금도 침을 맞은 자국이 남아서 빨갛게 반점이 남아 있다. 이 반점을 보면 지금도 어머니 생각과 이웃집 침장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나의 소년 시절》 中
어린 朴正熙의 엄지손가락 뿌리에 침을 놓아 준 침장이 할아버지는 바로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의 둘도 없는 술친구 김병태였다. 그는 漢學(한학)에 조예가 깊어 동네에서는 漢學者로 알려져 있었다. 박성빈과 함께 아랫마을 ‘밤마’의 주막에 앉아 함께 漢詩(한시)를 짓고 唱(창)을 즐겼으며 침술에도 능했다. 선산 金 씨인 김병태의 손자뻘 되는 김재학 씨의 증언에 따르면, “동네 사람들은 응급조치를 대부분 김병태의 침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그의 집은 박정희의 생가 바로 아래에 자리했으나 지금은 어린이 놀이터로 변하고 말았다. 박정희가 말하는 엄지손가락 뿌리의 침 자국은, 엄지와 검지가 갈라지는 부분으로 合谷(합곡)이라 말하는 유명한 體針(체침) 자리다.
아버지 박성빈의 키가 대략 170cm 정도였고, 셋째 아들 박상희가 그보다 약 10cm가 더 컸다고 하니 박정희의 집안 사람들은 기골이 크다고 할 만하다. 朴正熙는 청와대에서 가끔 “내가 그때 하루 40리 길을 걸으면서 얼어붙은 도시락을 먹고 자주 체하곤 했으니 키가 이렇게 될 수밖에…”라고 말하곤 했었다.
비름나물
朴正熙의 집안은 가난했다.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름나물을 즐겨먹었다. 비름나물과 관련된 逸話(일화) 한 토막이 그가 쓴 《나의 소년 시절》에 실려있다.
<어느 늦봄 날이었다. 보통학교 2∼3학년 시절이라고 기억이 난다. 20里 시골길을 왕복하니 배도 고프고 봄날이라 노곤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정오가 훨씬 넘었다. 삽작에 들어서니 부엌에서 어머니께서 혼자서 커다란 바가지에 나물에 밥을 비벼서 드시다가 “이제 오느냐. 배가 얼마나 고프겠느냐”하시며 부엌으로 바로 들어오라고 하시기에 부엌에 책보를 든 채 들어가 보니 어머니께서는 바가지에 비름나물을 비벼서 막 드시려다가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시고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같이 먹었다. 점심 때가 훨씬 넘었으니 시장도 하지만 보리가 절반 이상 섞인 밥에 비름나물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맛은 잊을 수가 없는 별미다.
나는 요즈음도 가끔 內子(내자)에게 부탁하여 비름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 보곤 한다. 엄동의 추운 겨울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가족들이 한 방에 모인다. 세상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버지와 형들이 한방에 모여 있으니 아버지가 계신고로 형들은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눈치를 알아차리시고 슬그머니 사랑방으로 내려가신다. 형들에게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도록 자리를 비워주시는 셈이다. 밤이 늦어지면 이야기도 한물 가고 모두들 밤참 생각이 난다. 어머니께서 홍시나 곶감을 내어놓으실 때도 있고, 때로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밥에다가 지하에 묻어둔 배추김치를 가져와서 김치를 손으로 찢어서 밥에 걸쳐서 먹기도 한다. 이것이 시골 농촌의 겨울밤의 간식이다. 가끔은 묵을 내오는 때도 있다.>
朴正熙는 대통령 재임 중에도 비름나물을 즐겨먹었다. 비름나물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장에서 구할 수 없었다. 당시 청와대의 朴鶴奉(박학봉) 부속실장과 李光炯(이광형) 부관은 할 수 없이 씨앗을 사 가지고 와 청와대 본관 뒷동산에 작은 밭을 일구고 심었다. 李 부관은 미끈미끈한 비름나물이 맛이 없었으나, 朴正熙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보리 섞인 쌀밥에 비벼 다른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맛있게 먹었다. 朴正熙의 측근들은, 그가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비름나물 비빔밥을 먹는 것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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