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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산야초 2016. 12. 6. 23:09










「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정호승



희미한 영안실 형광등 불빛 아래
시인들이 편육 몇 점에 술을 마신다

언제나 착한 사람들은 먼저 죽는다고
죽음은 용서가 아니라고 사랑도 어둠이었다고

누구는 켭라면을 국물째 들이키며
철없는 짐승인 양 술에 취한다

꽃이 죽어서도 아름답더냐
왜 발도 없이 인생을 돌아다녔나

겨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처럼
어린 상주는 꼬부라져 영정앞에 잠이 들고

뒤늦게 누가 보낸 화환인가 트럭에 실려온
흰 백합들이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달 없는 하늘에 별들만 푸른데
영안실의 밤은 깊어가는데...


죽음은 순서없이 찾아옵니다. 주민등록증을 보고 생년월일 차례대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죽음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두럽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이별과 단절과 소멸이 두럽습니다. 그러나 정작 육체적으로 의식을 잃고 나면 지극히 평온한 상태라는 것을 타인의 죽음을 통하여 수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매일 두려워하면 매일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단순한 기쁨』에서 피에르 신부는 '죽음이란 오랫동안 늦춰진 친구와의 만남 같은 것이며,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할 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말에 공감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죽음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