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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구워주는 닭꼬치의 진미

산야초 2016. 12. 17. 22:25

전문가가 구워주는 닭꼬치의 진미  

[맛난 집 맛난 얘기]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도리마루>

조리실로 돌아온 김인복 셰프의 얼굴은 한없이 맑고 밝았다. 그녀는 한식과 일식에 두루 뛰어난 조리사다. 그 중에서도 닭 요리에 일가견을 가졌다. 그 동안 한정식 집 경영, 조리 교육, 외식업체 CEO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최근 닭 요리 전문점을 새로 인수하고 이곳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음식들을 만들고 있다. 그 중 닭 꼬치가 으뜸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닭 요리 전문가

점포 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김 셰프가 저녁에 쓸 생닭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치 새끼 칠면조인 듯 한눈에 봐도 덩치가 엄청 컸다. 웬 닭이 이렇게 크냐고 물었다. 닭 꼬치를 하려면 개별 부위가 커야 하기 때문에 16호짜리 브랜드 닭을 사용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닭 해체모습
무용수가 춤을 추듯 해체하는 그녀의 손동작은 유연했고 리듬이 느껴졌다. 한 번 팔을 움직일 때마다 미끄러지듯 칼은 제 갈 길을 갔다. 칼이 지나간 자리는 아무 저항도 없이 분리 됐다. 오래 전부터 칼이 지나가길 기다렸다는 듯 생닭은 얌전히 칼을 맞아들였다. 호텔 식당이나 이자카야 등 웬만한 닭 꼬치 전문점에서 해체 작업을 직접 하지 않고 대부분 외주를 준다. 그런데 오너 셰프가 직접 칼을 잡은 모습이 무척 신선해 보였다.

다른 점포들처럼 외주를 주거나 직원들에게 시키지 왜 직접 칼을 잡았느냐고 물었다. 우선 그동안 못 했던 조리를 무척 해보고 싶었단다. 이제야 친정에 돌아온 느낌이고 본래의 내 자리에 선 기분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닭고기가 다른 동물의 육질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월등하잖아요. 일본은 닭 소비량이 우리나라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그나마 치킨이 대부분이고 이렇다 할 닭 요리는 드문 게 현실이지요. 이제 저부터라도 제대로 된 닭 요리를 선보이고 싶어요. 제 손으로...”

다양한 부위 즉석에서 참숯에 구워내

해체한 닭 한 마리에서 모두 17가지 꼬치 부위가 분리된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온 손님은 닭 꼬치의 부위별 가짓수가 많은 데 놀라고, 냉동 닭이 아니라 신선한 냉장 닭을 그때그때 해체해 구워주는데 놀란다. 닭다리, 날개, 가슴살까지는 일반인도 잘 알지만 그 외 부위는 생소하다. 김 셰프에 따르면 껍질과 목살도 훌륭한 닭 요리의 재료라고 한다.

이 집 닭 꼬치 맛이 우수한 것은 냉동닭이 아닌, 생닭을 참숯불에 구워내기 때문이다. 나무 꼬치에 꿴 꼬치를 숯불에 그슬리듯 굽는데 이 과정에서 염통과 모래집을 제외하고는 타래 소스를 바르지 않는다. 신선육이어서 타래 소스로 굳이 잡내를 잡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잘 구운 꼬치는 녹차와 약간의 후춧가루가 든 천일염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타래 소스를 즐기는 고객을 위해 따로 타래 소스도 마련해두었다.

꼬치
주문과 동시에 굽기 시작하는 것도 꼬치 맛을 더 내준다. 미리 구워놓으면 수분이 빠져 맛이 없다.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리면서 익어가는 꼬치를 바라보는 것도 꼬치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무엇보다도 예전 동무들과 어울려 구워먹던 참새구이의 진미가 느껴져서 무척 반가웠다. 신선육을 참숯에 구운 덕일 것이다.

이 집에서는 17가지로 분리한 닭 부위 가운데 12가지 부위를 꼬치로 구워 내놓았다. 닭안심, 닭등심, 닭가슴, 닭목살, 닭다릿살, 닭엉덩이살, 모래집, 염통, 껍질, 가슴연골(이상 10가지, 각각 3000원)과 닭다릿살대파, 닭날개(이상 2가지, 각 3500원)이다. 이 가운데 5가지를 모은 모듬 5종(1만5000원)과 10가지를 모은 모듬 10종(2만6000원)이 있다.

입맛에 맞는 꼬치를 모듬이나 개별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닭가슴살은 푸짐하다. 부드러운 닭안심살은 담백하다. 그런가 하면 짭조름한 양념맛과 원육 밸런스가 좋은 닭날개살도 있다. 여기에 각자의 입맛에 맞는 술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꼬치 요리가 닭고기만 있는 건 아니다. 돼지고기 7가지(3000~3500원)와 채소 등 각종 재료로 만든 별미 9가지(2000~5000원)가 있다. 이 중 토마토삼겹(3500원)은 토치로 구운 불 맛에 토마토와 삼겹살 맛의 조화가 빼어나다. 공장제 베이컨이 아닌 삼겹살을 사용한 데서 주인장의 정성이 느껴진다.

한우 스지와 부산어묵을 한 냄비에 끓인 맑은 탕도

꼬치와 함께 최근 이 집에서 인기 있는 메뉴가 스지오뎅나베(1만7000원)다. 한우 스지(소의 사태살에 붙어 있는 힘줄, 일본식 표기)와 부산어묵에 문어, 유부주머니, 새우 등을 푸짐하게 넣었다. 우선 주방에서 충분히 끓여낸 다음 나베(일본식 국물 요리) 냄비에 옮겨 담아 손님 테이블의 레인지 위로 올린다. 가츠오부시와 고추 대파로 낸 국물은 달짝지근하면서도 살짝 매콤하다. 맑은 국물은 깔끔하고 개운하다. 가스레인지에 따끈하게 데워가며 떠먹으니 숟가락 잡은 손이 멈출 줄 모른다. 

스지오뎅나베
한우 스지는 미리 세 시간 정도 삶아두었다가 쓴다. 쫀득하고 눅진한 콜라겐 특유의 식감과 도가니의 고소한 맛이 난다. 부산에서 가져오는 'ㅎ 사'의 제품인 부산어묵도 제 맛을 내준다. 여기에 스지에 붙어있는 한우 사태살, 곤약, 계란도 깊은 맛을 내는데 한몫씩 거든다. 스지오뎅나베는 소주나 사케 등 어떤 술과도 잘 어울린다.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우동면(3000원)을 넣고 끓이면 선주후면 마무리로 그만이다.

주변에 사무실과 클럽들이 다수 포진해서인지 젊은 층 손님들이 많다. 친구나 동료들과도 좋지만 홀가분하게 혼자 한잔 하기에 좋은 집이다. 점심에는 오야꼬동, 가라아게동, 차돌규동 등 꽤 먹을 만한 7000원대 식사 메뉴도 마련했다. 일요일은 휴무여서 다소 아쉽다. 이 집은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꼬치 요리가 매력적이다. 가끔 김 셰프가 유연성을 발휘, 메뉴판에 없는 음식도 비장의 솜씨로 선보인다.

김인복 셰프는 언젠가는 조리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면서 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빛이 편안해 보였다.
<도리마루>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85-4    02-548-0992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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