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국민에게 담배 선물했던 박정희 대통령 "한산도 수루 금연 표지 철거" 지시도

산야초 2017. 2. 26. 00:13

[김명환의 시간여행] [58]

국민에게 담배 선물했던 박정희 대통령 "한산도 수루 금연 표지 철거" 지시도

    입력 : 2017.02.22 03:09

    1977년 8월 1일, 경남 통영 한산도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제승당' 등을 돌아보던 박정희 대통령이 수루(戍樓)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다. 충무공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혼자 앉아 '깊은 시름'하셨다는 곳이다. 이곳에서 대통령이 즉석 지시를 내렸다. "금연 푯말을 치우고 재떨이를 비치해 놓도록 하시오. 관람객들이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이 수루에 올라 경치를 내려다보며 담배 한두 대쯤 피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경향신문 1977년 8월 11일자)

    오늘의 정부는 국민이 담배를 끊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는데, 40년 전엔 전혀 달랐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유적지의 금연 푯말 대신 재떨이를 놓으라고 지시한 사실은, 얼마나 '흡연 친화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상당한 애연가였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파병을 앞두고 고민하며 연방 줄담배를 피울 땐 육영수 여사가 따라다니며 재떨이를 열 번이나 비운 일도 있다.

    애연가였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에게 담배를 즐겨 선물하는 ‘흡연 친화적’ 인물이었다. 사진은 1973년 여름, 대통령 휴양지인 거제시 저도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박 대통령.
    애연가였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에게 담배를 즐겨 선물하는 ‘흡연 친화적’ 인물이었다. 사진은 1973년 여름, 대통령 휴양지인 거제시 저도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박 대통령.

    광복 후 1970년대까지 대통령이 연말연시 등을 맞아 군 장병이나 어려운 처지의 국민에게 가장 흔하게 보낸 선물이 담배였다. 12월이면 담배 공장은 '대통령 하사 연초'를 특별 제조하느라 바빴다. 1957년 제1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수상한 발명가 572명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기념품도, 1964년 서독의 한국 광부들이 고국에서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의 감동적 연설을 들은 뒤 받은 선물도 모두 담배였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상이용사에게 성냥으로 직접 담뱃불을 붙여 주기도 했다.

    정부가 흡연에 관대하던 시절, 담배 연기 없는 사무실은 거의 없었다. '담배 연기 싫어요'라는 표어를 붙여도 허사였다. '금연' 표지가 붙은 버스에선 운전기사가 '솔선'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1950~1960년대 국회의원들은 의사당에서도 마음대로 흡연했다. 한때 의사당 내 금연 규칙을 만들었지만 애연가 의원들은 "예배당이야? 담배도 못 피우게" 하며 계속 연기를 뿜었다. 1957년 3월엔 보다 못한 이기붕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일도 있었다. 신문은 "국회의 금새(물건 값)가 (불량 학생 흡연 단속하는) 고등학교 교실 정도로 떨어져 버렸다"고 꼬집었다. 제3공화국 국회에서는 아예 의사당 금연이 해제됐다. 해마다 연초에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와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면 야당 의원들은 거의 전원이 담배를 물고 자욱하게 연기를 뿜어댔다. 그러나 10월 유신 직후인 1973년 3월 개원한 9대 국회 때부터 새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장 흡연이 전면 금지됐다.

    '흡연자들의 천국'에 종지부를 찍은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다. 1996년 6월 1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공공시설의 흡연 단속이 시작됐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정부는 흡연자들 설 땅을 계속 좁혀가고 있지만 간단치 않다. 담뱃갑에 혐오 그림을 넣으면 그림을 가 려주는 케이스가 나오고, 전면 금연 빌딩을 늘리면 역전 광장들이 인근 직장인들의 '담배광장'이 되어버리고 있다. 따져 보면 광복 후 애연가들의 호시절이 50여년이었던 데 비해, 금연 정책의 시대는 20여년밖에 안 된다. 정부가 담배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인 까닭은 금연 시대보다 훨씬 길었던 흡연 친화적 시대의 거대한 관성이 버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