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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가 문득 그리울 땐 꼬막비빕밥!

산야초 2017. 4. 5. 23:55

남해바다가 문득 그리울 땐 꼬막비빕밥!

    입력 : 2017.04.05 08:00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서초구 <지심도밥상>

    자연 순환에 따른 계절별 밥상 선보여

    남녘에서 보내오는 벗들의 봄소식에 넋을 잃다 보면 어느새 봄이 고파진다. 안 그래도 봄바람이 살살 불면서 해산물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다. 벗들이 보낸 봄이 오는 남쪽의 섬 풍광은 언제나 싱그럽다. 꽃비로 쏟아지는 매화꽃잎, 핏빛으로 뚝뚝 떨어진 동백들, 봄바람에 찰랑거리는 바닷물의 파문, 그 파문에 반사된 눈부신 봄볕이 윤슬로 빛나고, 첫물 쑥에 끓인 도다리국, 맑은 바지락 국물에 이르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오늘 점심은 바다로 가자!’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서울 교대 근처에 <지심도밥상>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신뢰하는 블로거가 올린 글이어서 중년의 직원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이 지하에 위치해 처음엔 다소 어리둥절했다. 지하식당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기우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천장의 검은색과 벽면의 흰색이 흑백 투톤으로 연출해내는 분위기가 재즈 선율과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니 이 집은 계절에 따른 해산물과 채소로 밥상을 차리는 한식집이었다. 동의보감의 계절별 섭생 원칙에 따른 건강식 제철 밥상을 내고 있었다. 실제 어느 정도 실천하는지는 몰라도 업주의 이런 의지와 자세를 나는 높이 산다. 그리고 강연할 때마다 식당 업주들에게 이런 철학과 콘텐츠를 갖출 것을 권한다. 식당을 총괄 관리하는 점장의 친절한 설명과 손님 응대도 인상적이었다.

    조선시대 초등 교과서였던 천자문에도 ‘한래서왕추수동장(寒來暑往秋收冬藏)’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는 뜻이다. 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표현한 말이다. 우리 민족만큼 자연 순응형인 민족도 지구상에 다시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사람 몸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섭생해야 건강을 지킬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이름 속 ‘지심도’는 거제도 앞바다의 작은 섬이다. 사용하는 대부분의 해산물은 지심도와 가까운 통영 일대에서 공수해온다고 한다. 꼬막이나 새조개 등 다른 식재료들도 전남 벌교나 충남 남당 등 유명 주산지에서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꼬막전·멍게로 입 다시고, 푸짐한 꼬막 넣고 쓱쓱 비벼먹어

    지금은 봄! 새로운 것을 살려내는 생(生)의 시기다. 우리는 꼬막비빔소반(1만 원)을 주문했다. 매생이굴떡국(1만원)도 먹을 만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지났으니 이때쯤 맛이 드는 벌교 꼬막 맛이 궁금했다. 아무래도 꼬막하면 「태백산맥」과 외서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벌교 여자만 진흙뻘 기운이 스며들었을 차진 꼬막은 먹는 이의 근육마저 쫄깃하게 해줄 것 같다.

    잠시 후 먼저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부드러운 죽, 그리고 꼬막전과 통영에서 올라온 멍게였다. 온기가 남아 있는 꼬막전은 고소하고 맛있었다. 멍게도 향이 짙었다. 금세 입 안에 봄이 화~ 오는 듯 했다.

    에피타이저를 먹고 나자 수저가 깔리고 바로 반찬들이 나왔다. 수저도 깔끔한 수저집에 들어있었다. 깨끗한 흰색 그릇에 나온 찬들도 아주 깔끔해 보였다. 달걀말이, 파래무침, 깍두기, 묵은지였다. 여기에 큼직한 꽁치구이가 한 마리 악센트를 찍었다. 찬들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섞박지를 닮은 깍두기 맛이 좋아 몇 번 리필해서 먹었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지만 꽁치는 한 마리쯤 더 줬으면 싶었다.

    꽁치의 꽁지를 뜯고 있을 무렵 밥이 나왔다. 진짜 방짜유기는 아니지만 품위 있어 뵈는 그릇에 밥과 날 배춧국, 그리고 꼬막비빔밥이 나왔다. 밥그릇 가운데 꼬막이 한눈에 봐도 푸짐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넉넉하면서도 정갈한 밥상이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상추, 무채, 새싹, 무싹, 김 가루가 든 그릇에 밥을 넣고 초고추장을 뿌려 비볐다. 초고추장은 견과류를 곱게 빻아 넣고 직접 만들었다. 새콤하면서 맵지 않은 초고추장은 누구 입맛에나 맞을 것 같은 다소 대중적인 맛이었다. 된장을 넣고 끓인 날 배춧국도 짜지 않고 구수했다. 잘 비빈 밥 한 술을 떠서 먹었다. 새콤한 초고추장 맛과 함께 꼬막이 씹혔다. 순간 봄 바다의 맛이 느껴졌다. 여기 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함께 온 중년 직원도 밥과 반찬, 식당 분위기를 무척 흡족해했다. 음악과 인테리어는 모던한 스타일인데 밥상은 통영의 느낌이 났다. 마침 요즘 통영에서는 고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한국보다 세계가 더 알아주는 국제적인 음악가의 고향 통영! 오늘 우리가 먹은 점심은 살아생전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을 고향의 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출 내역(2인 기준) 꼬막비빔소반 1만 원 X 2 = 2만 원
    <지심도밥상>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49길 5   02-3477-1616​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