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현재 심 사정(玄齋 沈 師正)의 만물도(萬物圖)

산야초 2017. 6. 19. 23:32

현재 심 사정(玄齋 沈 師正)의 만물도(萬物圖)

 


          본관(本貫)은 청송.

          자(字)는 이숙(?叔),

          호(號)는 현재(玄齋), 묵선(墨禪).

 

아버지는 <문인 화가(文人畵家)> <심 정주(沈 廷胄)>이다.

증조부 지원(之源)이 영의정을 지낸

이름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인 익창(益昌)이 과거부정사건을 저지른 데 이어

왕세자(나중에 영조) 시해 음모에 연루되어

극형을 당하게 됨으로써

집안은 몰락하고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1748년(영조 24) 어진모사중수도감(御眞摸寫重修都監)

감동(監董)으로 추천되었으나

대역죄인의 자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파출(罷出)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천부적 자질을 지녀

스스로 물상을 그리고 현상을 만들 줄 알았으며,

20세 전후하여 <정 선(鄭 敾)>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소론계(少論系)의

김 광수(金 光遂)· 이 광사(李 匡師)· 김 광국(金 光國)과

남인계(南人系)의

강 세황(姜 世晃) 등과 교유하며

<남종 화풍(南宗 畵風)>의 조선화(朝鮮化)에 크게 기여했다.

 

<영모화(翎毛畵)>, < 화훼화(花卉畵)>, <초충도(草蟲圖)>,

<운룡도(雲龍圖)> 등 각 분야에 능숙했으며,

특히 산수를 잘 그려

<정 선(鄭 敾)>과 함께 <겸현 양재(謙玄兩齋)>로 손꼽혔다.

 

초기에는 정선의 화풍에 토대를 두고

<황 공망(黃 公望)> <심 주(沈 周)>를 비롯한

<원말 사대가(元末 四大家)>

<오파(吳派)><남종 화풍(南宗 畵風)>을 두루 섭렵하면서

이 화풍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 진수를 터득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연마를 통하여

요체를 체득한 다음 50대에 이르러

강하고 거친 묵법(墨法)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 중기의 절파(浙派) 화풍을 융합시켜

중국과는 구별되는

특유의 한국적 화풍(畵風)을 이룩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진경산수를 다루면서

눈에 보이는 실제의 경관을 초월하여

내재된 자연의 본질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융합시켜

새롭게 이상화된 산수화를 묘출함으로써

우리 산천의 이념화를 구현했다.

 

이밖에 영모·초충 등에서도

명대(明代)의 화법을 토대로 자신의 화풍을 이룩했다.

 

정선과 함께 영조연간

최고의 대가로 손꼽혔던 그의 이러한 화풍은

<최 북(崔 北)>

<김 유성(金 有聲)>

<이 인문(李 寅文)>

<이 방운(李昉運)> 등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상야박도 江上夜泊圖>(1747)

<패교심매도 覇橋尋梅圖>(1766),

개인 소장의 <경구팔경도 京口八景圖>(1768) 등이 있다.

 

<겸 재(謙齋)>, <정 선(鄭 敾)>과 더불어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인 화가(文人畵家)>였다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는 작은 그림이지만 설경 산수를 배경으로

                                         

나귀를 탄 선비와 하인을 묘사한다.

                                         

그림의 오른 쪽 선비는 이른 봄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나섰으리라.

                                         

부드러운 곡선과 <파마준>으로 묘사된 언덕과 중경의 산봉우리,

 

한림(寒林), 원경의 눈덮인 산봉우리는

 

패교심매도(覇橋尋梅圖)와 공통되는 양식이다.

 

 

 

선유도(船遊圖)

현재 심 사정의 <선유도(船遊圖)>는 몇 안 되는 <기년작> 중의 하나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갑신 신추사(甲申新秋寫)>라는

 

      <간기(刊記)>의 <갑신(甲申)>은 기원후 <1764 년>에 해당하므로

 

      현재 심 사정의 <57 세> 때 그림으로 비교적 <만년작>임을 알 수 있다.

 

      <바다>에는 <폭풍>이 이는 듯 <험한 파도>가 소용돌이치고

 

      <하늘>에는 세찬 <비구름>의 굽이치는 <먹구름>이 덮여 잇는데

 

       이 <작은 배>는 이상하리 만치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왼쪽 위에는 두 선비가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파도를 감상하면서

 

       뱃전에 기대어 있고 그 반대편 끝에서 노 젓는 사공이

 

       힘에 겨운 듯 몸을 기울려 애써 <용(勇)>을 쓰고 있다.

 

       실로 운치 넘치는 <문대 풍류(文代 風流)>의

 

       선유(船遊)를 호탕한 필치로 그린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는 여름 장마철의 <산간>에 <비>오는 경치를 묘사하였는데,

                                                       화면의 중앙에 흐르는 <시냇물> 위에 <돌다리>가 가로놓여 있고,

                                                       오른쪽 근경에 <담묵의 버들>과 초묵(焦墨)으로

                                                       둥지와 가지를 치고 총총히 잎새를 묘사한

                                                       몇 그루 나무 사이로 <우장>을 쓴 두 행인이 보인다.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

왼쪽의 그림은 현재 심 사정이 <키 큰소나무> 아래에서

<한양 도성>을 바라보며 그린 작품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바위>와 <파도>를 그린 것으로

                        굽이치는 물살과 물보라를 자세히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비단에 그려진 이 그림은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서부터

먼 거리의 산까지,

꽤 큰 화면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 크기는 1.5 m가 넘는 대작이다. 

 

 

 

 

 

 

  

파교심매도(破橋尋梅圖) (1766)

파교심매도(破橋尋梅圖)는 <(唐)나라> 시인 <맹 호연(孟 浩然)>이

 파교를 건너 설산에 들어가

                              매화를 찾아 다녔다는 고사를 소재로 한다.

 

 

 

방심 석전 산수도(放心石田 山水圖) (1758)

 웅장한 산과 절벽을 그려내는 중국화가의 화법을 모방하였다고 하지만

현재 심 사정은 이 작품을 그리면서 배운 데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더 크게 발전시켰다

 

 

 

명경대(明鏡臺) (1750)

금강산 여행 후 심사정이 그린 여러 <금강산 도> 중의 하나인

위의 작품을 그의 스승인 <정 선>의 <금강산 도>와 비교할 수 있다.

높은 명경대 봉우리와 그 곁을 힘차게 흐르고 있는 만폭동을

아래의 선비들이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다

  

 

괴석 초충도(怪石草蟲圖) (1747)
바위 같지 않게 생긴 괴상한 모양의 바위 위에 메뚜기가 있고,

그 곁에 피어 있는 들꽃을 비단 위에 채색화로 그려내었다

 

 

 

 딱따구리 (1747)
현재는 풍경화 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이나 곤충의 그림도 많이 그렸다.

이 그림도 높이가 <30 cm>를 넘지 않는 작은 그림이지만

먹의 농담과 색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큰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격조가 느끼게 한다

 

 

 

연지유압(蓮池油鴨) (1768)
화려한 연꽃과 한 쌍의 논병아리를 그린 이 작품은

중국화의 화려한 장식성을 많이 모방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시원하고

 대담한 구도가 여느 한국화 같지 않게 독특하다.

 

 

 

 

하마선인도(蝦?仙人圖) (1765) ]
하마(蝦?)란 두꺼비의 한자어이며 <하마 선인>은 두꺼비를 가진 신선이라는 뜻으로,

이 그림은 신선도의 일종이다.

우리가 아는 신선과는 모습이 좀 다르지만.

전설에 의하면 <유 해(劉 海)>라는 신선은 세 발 달린 두꺼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꺼비는 그를 세상 어디든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붓이 아닌 손으로 그려낸 <지두화>이다

 

 

 

                                    맹호도(猛虎圖) (1774) 
             맹호도(猛虎圖)에 씌어진 <화제(畵題)>와 <낙관(落款)>을 보면

                 기원후 <1774 년>에 <현재>가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1774 년>은 <현재>가 세상(世上)을 떠난 다음이므로

                          그의 작품이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후세의 사람이 대신 글을 써주고,

          낙관을 찍어주었을 가능성 또한 높아서 <현재>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빛나는 눈빛과 꼿꼿이 세운 털이 호랑이의 힘과 행동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