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법과 사회] 박근혜 이재용 '몰아치기 재판' 문제 있다

산야초 2017. 6. 21. 08:49

[법과 사회] 박근혜 이재용 '몰아치기 재판' 문제 있다

입력 : 2017.06.21 03:12

형사 재판 많아야 주 2회인데 4회는 변호인·판사에게도 부담
구속 時限 정한 법의 취지는 '피고인 권리 보호' 아니었나

최원규 논설위원
최원규 논설위원

요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보면 거의 체력전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재판하는데 가끔 '심야 재판'도 한다. 지난달 31일 재판은 이튿날 새벽 2시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역대 최장 재판 기록인 18시간을 갈아치울 판이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이 부회장은 종종 하품을 하고, 배석 판사들도 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심야 재판에 지친 어느 증인은 증언을 오락가락하다 재판장에게 질책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도 비슷하다. 재판부는 주 3회 하던 재판을 지난 7일부터 주 4회로 늘렸다. 변호인이 "고령의 연약한 여자인 박 전 대통령 체력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반대했지만 재판부는 "심리할 내용과 증인이 많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벌써부터 간혹 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통 형사 재판은 많아야 주 1~2회 정도다. 주 4회 재판은 변호인이나 판사에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변론 준비하기도 빠듯하고 재판 끝나고 수사·재판 기록 읽기도 벅찰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 경우 수사기록만 12만 쪽에 달한다. 판사나 변호인이 그걸 다 읽고 재판하는 건지 의문이라는 법조인도 많다.

재판을 이렇게 몰아치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1심 구속 재판 시한 내에 재판을 끝내기 위해서다. 형사소송법(92조)은 1심에서 피고인을 구속해 재판할 수 있는 기간을 최장 6개월로 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0월 16일, 이 부회장은 8월 27일이 그 시한이다. 그때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두 사람을 풀어주고 재판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고 서두르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엔 적잖은 문제가 있다. 구속 재판 시한을 정한 법의 취지는 판결 선고 이전에 피고인 구속이 장기화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재판이 길어지면 피고인을 풀어주고 재판하라는 것이지 그때까지 재판을 끝내라는 규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법원의 관행은 후자 쪽이었다. 구속 재판 시한 전에 선고하려고 피고인에게 변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는 일이 많았다. 피고인을 위한 규정인데 오히려 피고인 방어권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두 사건 재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물론 도주할 우려가 있는 피고인이라면 재판을 서둘 필요도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두 사람에 대한 조사도 이미 할 만큼 다 한 상태여서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 그런데도 '몰아치기 재판'을 하는 건 두 사람을 풀어줄 경우 일각에서 나올 수 있는 비판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사실이라면 법 취지나 불구속 재판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뇌물수수와 공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18가지 혐의를 통째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 혐의가 사실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재판 지연 전략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재판부로선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원칙대로 재판을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도주 우려가 없는 만큼 절차에 맞춰 재판하다가 구속 시한을 넘기면 일단 풀어준 뒤 시간을 갖고 재판하면 된다. 그 결과 유죄가 맞는다면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하면 된다. 그것이 진실 발견에도 도움이 되고 법 취지에도 맞는다. 또 그래야 설령 나중에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당사자들 불만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을 배려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라고 특혜도 불이익도 받아선 안 되는 만큼 재판은 법 취지에 맞게 하자는 것이다. 그 원칙을 세우는 것은 다른 수많은 구속 피고인들 권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 하려면 두 사람도 재판을 지연하려는 꼼수를 쓸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0/20170620036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