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례의 역사
오늘날 모든 나라 군대 예절은 경례로 시작한다. 경례는 상관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호 간에 대한 경의와 우호, 혹은 비(非)적대 의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경례는 기본적으로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오른손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반적으로 하는 경례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최초로 경례를 도입한 로마 제국
가장 일찍부터 경례를 한 국가로 알려진 나라는 로마 제국이다. 고대 로마의 경우 공직자를 만나는 모든 일반인은 먼저 한 손을 앞으로 뻗어 보였는데, 이는 암살이 빈번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기를 숨기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자세였다.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듯이 로마 제국의 경례는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을 아래로 한 후 손가락까지 쭉 펴고 있는 형태다. 사실 20세기 이후에도 이 경례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던 군대가 있는데, 바로 ‘제3제국’을 표방했던 나치 독일이다. 나치 독일이 이 경례 방식을 베낀 이유는 로마 제국 전통과 위엄을 차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실 로마의 이러한 경례 방식은 그 어느 문헌이나 미술품, 작품에도 묘사되어 있는 것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도 이러한 ‘로마식’ 경례를 한때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통칭 ‘벨라미 경례(Bellamy salute)’라고 부르는 이 경례는 19세기 말에 ‘국기의 대한 경례(pledge of allegiance)’를 의무화하면서 그 내용을 작성한 소설가 프랜시스 벨라미(Francis Bellamy, 1886~1972)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랜시스 벨라미에 따르면, ‘국기에 대한 경례’로 벨라미 경례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유스 컴패니언(Youth Companion) 지의 편집장이던 제임스 업햄(James Upham)인데, 그가 자신이 쓴 ‘국기에 대한 경례’ 문구를 듣던 중 즉흥적으로 이 경례를 제안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 경례 방식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사용했으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과 나치 독일이 같은 경례법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자 이 경례를 폐지했다. 대신 국기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경례 방식은 오늘날과 같이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는 방법으로 대체되었다. 애당초 굳이 미국이 왜 이런 ‘로마식’ 경례를 도입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스스로를 ‘신(新) 로마 제국’으로 여기며 독수리 문장까지 차용했던 미국이 고대 로마와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다는 흥미로운 설도 존재한다.
그 밖에 특이한 경례 방식으로는 1928년부터 1939년까지 단기간 존속했던 알바니아 조그(Zog) 왕조의 조그식 경례(Zogist salute)도 유명하다. 알바니아 군에서 사용했던 이 경례는 오른팔을 직각으로 꺾어 쭉 편 손이 왼쪽 가슴에 닿게 하고, 손바닥은 아래로 향하는 경례 방식이다. 이 경례는 조그 1세(Zog I)의 경호경찰들이 먼저 사용하다가 왕립 알바니아 군에까지 퍼졌다. 훗날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이 ‘조그 경례’가 체제 저항의 상징으로 쓰였다. 특이하게도 ‘조그 경례’는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 Rashtriya Swayamsevak Sangh)’도 차용했다.
현대식 경례의 기원, 프랑스와 영국
오늘날과 같은 한 손 경례의 유례에 대한 대표적인 가설은 중세 프랑스 기사 기원설이다. 이 기원설의 요지는 갑옷을 둘러 입고 투구까지 쓴 기사는 무장 상태에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기사들이 마주치게 될 경우 적의가 없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투구를 손으로 들어 얼굴을 보인 것이 한 손 경례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 행동에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눈을 마주침으로써 “너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기선제압의 의미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 기원설은 구체적인 문헌상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은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군대를 위한 통일된 경례법이 존재했다기보다는 ‘신사도’와 결합된 인사 예절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오늘날의 경례와 비슷하게 왼손을 올렸다는 기록도 있고, 칼 끝을 비스듬히 아래로 향한 채 칼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모자에 대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 경례의 원형인 한 손 경례가 등장한 것은 대략 1700년대로 추정된다. 이전까지 영국 군인들은 상관과 마주치거나 보고해야 할 때 한 손으로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면서 인사를 했으나, 1745년에 발행된 영국군 훈령 편람에 따르면 모든 병사들은 “장교들과 마주칠 시 재빨리 모자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도록 규정했다. 갑작스럽게 왜 이런 규정이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번 장교와 마주칠 때마다 모자를 벗거나 작업 중에 일일이 모자를 벗는 행위가 번거로워 행동을 단순화시킨 경례 규정을 제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단, 영국군의 경례 방식은 오늘날 우리 국군이나 미군 등과 다르게 손바닥이 상대방에게 향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음’을 보이는 최초의 경례 취지를 담은 의미로 해석된다.
공식적으로 이 ‘한 손 경례’를 도입한 것은 영국 콜드스트림(Coldstream) 근위연대였으며, 곧 타 연대까지 같은 경례법을 도입하면서 ‘한 손 경례’가 영국군의 공식적인 경례법으로 정착되었다. 영국 육군은 18세기부터 모자에 손만 올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방식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바닥이 상대방을 향하게 편 후 모자에 대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이는 군장류의 변화에도 기인한다. 18세기 이후부터 화력이 큰 중화기가 등장하면서 군 장비 전체에 대한 변화가 왔고, 모자 또한 가벼운 천 모자에서 머리 보호를 위한 두터운 모자나 방탄모로 서서히 진화해갔다. 특히 턱 끈까지 있어 벗었다 풀었다 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졌기 때문에 모자는 벗지 않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오늘날 경례 모습을 완성한 영국 왕립 해군
오늘날 국군이나 미군처럼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 경례 방식은 영국 육군보다는 왕립 해군(RN, The Royal Navy)의 경례 방식에서 유래했다. 근대 이전의 수병은 뱃일의 특성상 손에 방수처리를 위한 타르나 기름이 묻기 일쑤였는데, 이때 상관에게 손바닥을 보이게 하여 경례를 하다 보면 새카매진 손바닥을 상관에게 보여야 한다. 물론 서로 사정은 잘 알고 있지만 미관상으로도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 더러워진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행동 자체가 왠지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수병들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더러워진 손바닥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경례를 도입했으며, 장교는 흰색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이 경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왕립 해군에서 미 해군에 전파되었고, 미 해군이 도입한 경례는 미 육군과 육군항공대(전후 미 공군으로 독립)로 전파되었다.
영국 왕립 해군 경례 방식과 흡사하지만 약간 다른 경례 방식을 사용하는 군대들도 있다. 덴마크 육군의 경우 영국 왕립 해군 경례 방식과 비슷하나 손목만 90도를 꺾어 지면과 평행이 되는 경례 방식을 사용하며, 폴란드군은 모자나 방탄모를 착용하고 있을 경우 영국 육군처럼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게 하는 경례를 하나 검지와 중지만으로 경례하는 ‘두 손가락 경례’를 한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 Defense Forces) 같은 경우는 의전 목적이 아닐 때엔 통상적인 일상에서 경례를 주고받지 않는다.
우리 군에서는 경례를 할 때 통일된 구호를 붙이는 것이 기본적이지만, 경례에 구호를 붙이는 것이 반드시 일반적이지는 않다. 단지 경례가 의전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서 여러 사람이 같은 타이밍에 경례를 해야 하는 목적, 그리고 구호를 통해 부대 기풍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구호를 붙인다. 국군의 경우 “충성”, “통일”, “필승”, “단결” 등이 일반적인 구호지만 사단 단위 이상의 제대에서는 “선봉”, “승리”, “이기자”, “백골”처럼 고유의 부대 명칭이나 별칭을 경례 구호로 쓰는 경우가 있고, 미군의 경우는 전투부대에 한해 부대 별명이나 슬로건을 경례 구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미 제2사단의 “Second to None”, 미 제18공정군단의 “All the way”(상급자는 Airborne으로 받는다), 미 제82공정사단의 “All Americans”, 레인저의 “Rangers Lead the way” 등이 있다. 이 중 재미있는 것은 제82공정사단의 “All Americans”인데, 그 유래는 1917년 부대 창설 당시 미국 내의 전 48개 주 출신이 한 명씩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전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별칭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경례에 구호를 붙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군의 무기와 전투 방식을 반영해온 ‘경례’
군대의 경례는 앞서 말했듯이 상대방의 계급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적대 의사가 없음을 표현한다. HBO의 유명한 외화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The Band of Brothers)>(2001)에서 리처드 윈터스(Richard Winters) 소령이 말했듯, 경례는 “계급에 대해 하는 것이지, 사람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규율과 질서가 있는 조직에 속해 있음을 자각하고 있으며, 이를 따르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경례는 시대와 문화, 복제가 변천함에 따라 변화해왔고, 무기를 소지하거나 소지 않은 경우, 실내와 실외, 다수 인원이 함께할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제정되었다. 지금도 계속 장비와 조직이 변화하고 있고, 무기의 형태 및 모양, 개인화기의 사용 및 휴대 방법, 각 군이 사용 및 탑승하는 무기 종류 등이 변화함에 따라 경례 방식 또한 계속해서 변화해나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미래의 경례 모습은 또 어떻게 변화해갈지 흥미진진하다.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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