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보고만 받았는데 공모자?… 박 前대통령 유죄 근거 보니

산야초 2018. 4. 11. 12:13

보고만 받았는데 공모자?… 박 前대통령 유죄 근거 보니

[Law&Life] 블랙리스트 보고만 받았는데 공모자?

입력 : 2018.04.11 03:00

법원의 박 前대통령 유죄 근거
"보고 받고 추가 지시 안했다면 공모로 볼 수 없어" 지적 나와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관심을 끌었던 내용 중 하나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박 전 대통령이 관여한 혐의를 인정하느냐였다. 앞서 이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공모(共謀) 여부에 대한 판단이 '1심 불인정' '2심 인정'으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사건 재판부는 공모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 핵심 근거는 박 전 대통령이 '문제 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 방안'과 같은 여러 보고서를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보고서엔 '3000여개 문제 단체, 8000여명의 좌파 인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보고받고도 "중단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안과 관련한 박 전 대통령의 언급도 공모를 인정하는 근거가 됐다. 2013년 12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송년 만찬 행사에서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한 것, 2015년 1월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건전 콘텐츠 관리를 잘하라" "영화 등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고 한 것 등이다.

하지만 이 정도 내용으로 공모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함께 범죄를 모의하는 '공모'는 엄격한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그 점에서 보면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모를 확실하게 인정하려면 박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추가 지시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거의 없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실제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인 조현권 변호사는 "관련 기록을 봐도 서면 보고 이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추가 지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보고를 받았다는 걸 공모 증거로 판단한 것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조 변호사는 "문제가 되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1시간30분 동안 10개 부처가 총 40~50개 주제를 보고했다"며 "대략 내용을 듣기도 바쁜 시간인데 그때 보고를 받았다고 공모로 판단한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가 판결문 범죄일람표에 문화·예 술계 인사 지원 배제 행위 344건을 적고,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책임을 대부분 인정한 것도 논란거리다. 상식적으로 이런 행위를 박 전 대통령이 일일이 보고받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너무 폭넓게 인정한 것 같다"며 "결국 이 사건 공모 여부는 대법원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1/2018041100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