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생각 /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1기 최순애 작사 / 박태준 작곡
뜸뿍뜸뿍 뜸북새 논에서 울고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하모니카와 기타
동요 작가 최순애가 12살의 어린 소녀 시절 지은 ''오빠생각''은 일제 강점기에 나온 글이다. ''고양의 봄''으로 유명한 이원수씨의 아내이기도 하다. 이 노랬말을 지을 당시(1925)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억압이 심하던 때이다. 그때 당시의 시대상황이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고향을 지키며 한가로이 살 수 있는 때가 아니니, 젊은이들은 서울로, 동경으로, 간도로, 만주로, 어디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나라의 독립도 쟁취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학도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더러는 전사하기도 했으니 소식이 끊어지기도 했다. 노랫말을 음미하며 불러보면 참 가슴이 아려지는 노래다. <오빠 생각>은 최순애 본인의 경험을 담은 노래로, 서울에 가는 오빠에게 비단구두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서 나뭇잎이 떨어져도 서울 간 오빠는 소식이 없어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썼다고 한다. 잡지에서 이 시를 본 박태준은 그 사연이 마음에 닿아 작곡을 해서 발표를 했는데, 부를만한 노래가 많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애틋한 사연과 함께 이 노래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8분의 6박자의 노랫가락에 나타난 애상조의 멜로디 당시의 어린이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동요로서 오늘날에도 흘러간 노래로 애창되고 있다. |
작사가 : 최순애(崔順愛, 1914~1998) 경기도 수원 출신.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버지 최경우와 오빠 최영주가 소파 방정환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빠 생각>으로 문단에 나와 윤석중, 이원수, 서덕출과 함께 ''기쁨''의 동인으로 활약하여 동요 <그림자>, <우산모자> 등을 발표했다. 1936년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와 결혼했다. 이후 꾸준히 동요를 발표했는데 동시집을 내려고 준비한 원고가 6·25 전쟁 중에 타버려서 남아있는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아호는 금호(琴胡), 작곡가 겸 합창지휘자, 경북 대구 출생.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대구 계성중학, 평양 숭실전문학교(1921년)를 졸업하고, 경남 마산 창신학교, 대구 계성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동요 <오빠 생각>, <맴맴>, 가곡 <동무 생각>(일명 <사우思友>) 등을 지었고, 1929년에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 1931년에 동요곡집 <양양 범벅궁>을 발간하였다. 1932년 미국에 건너가 터스칼럼 대학, 웨스트민스터 음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1938년까지 숭실 전문학교 교수를 지냈고 1939년 가곡집 <물새 발자욱>을 발간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오라토리오합창단을 창설하여 1973년까지 이끌었다. 1947년 <박태준 동요곡집>(음악사) 등을 발간하였고, 1946년 경성여의전 교수를 거쳐 1948년 연세대로 옮겨와 1974년까지 26년간 교수로 있었다. 1955년에는 연세대 종교음악과를 창설하고, 1964년에는 음악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초대학장이 되었고, 1966년 정년퇴직 후 1973년까지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1952년에 미국 우스터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57년 서울시 음악문화상과 1960년 예술원 음악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대통령장), 1970년에 국민훈장무궁화장을 받았다. 역서로 <화성학>, <초등 화성학>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