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Why] 손님 줄어드는데도 매장 키운… 속초의 60년 된 책방

산야초 2018. 6. 29. 23:25

[Why] 손님 줄어드는데도 매장 키운… 속초의 60년 된 책방

    입력 : 2016.10.08 03:00

    3代째 내려오는 동아서점

    - 속초 독서문화의 구심점
    문화 갈증 채워주는 역할, 인터넷 서점에 밀려 고전… 2代 아버지, 막내에게 SOS

    - "서점 기능에 충실하자"
    손님 30~40%가 관광객… 그래도 책 찾아 읽는 재미, 그걸 위해 공간 넓게 꾸며

    "동네 서점이라고 다 작아야 합니까?"

    지난 4일 강원 속초시에 있는 동아서점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은은한 향이 퍼졌다.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소파가 마련돼 서점보다 카페처럼 느껴졌다. 그 분위기가 60년 된 서점 같지 않아 "생각보다 크고 깔끔하다"고 하자 김일수(65) 대표가 발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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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비(非)독서의 계절이에요. 날씨 좋아 다들 놀러 나가느라 책을 안 읽거든요.” 40년 가까이 책방 주인으로 살아온 김일수(가운데) 대표가 말했다. 그의 아내 최선희(오른쪽)씨도 묵묵히 그 시간을 함께했다. 왼쪽은 3대째 서점 일을 하고 있는 영건씨./김지호 기자
    1956년 고(故) 김종록씨가 문을 연 이 서점은 50년 넘게 속초시청 근처에 있다가 지난해 1월 교동 신시가지로 자리를 옮겼다. 2대인 김일수씨가 대표를 맡고 그 아들인 영건(29)씨가 매장 관리를 도맡으며 함께 일하고 있다. 간판 밑에 작게 '개점 1956'이라고 쓴 것 외에는 오래된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문고본 책 진열장에 '포켓몬 문고'라고 쓰고 '몬'자를 X자로 지운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포켓몬 잡으러 속초에 오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것이다.

    실제로 동아서점은 최근 속초 관광객들 사이에서 새로운 여행 코스로 뜨고 있다. 손님 중 30~40%가 관광객이어서 지난 7~8월 휴가 성수기에 서점도 가장 바빴다. 포켓몬 때문에 속초에 왔던 젊은이들은 SNS에 동아서점을 방문한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이 서점이 이렇게 주목받은 것은 지난 60년 사이 처음이다.

    옛 동아서점은 1층과 지하 1층을 합쳐 66㎡(약 20평)짜리 공간이었다. 문구류와 함께 참고서를 들여놓은 '동아문구사'로 시작했다. 창업주 김종록씨 몸이 좋지 않게 되자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김일수 대표가 짐을 싸서 속초로 왔다. 잠깐 휴학하고 일을 돕는다는 것이 평생 서점 일을 하게 됐다. 1978년이었다. 서점에서 번 돈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 셋도 키웠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서점이 생기며 위기가 왔다. 하루에 책 10권도 팔지 못하던 날이 허다했다. 이후 10년 동안 줄곧 내리막길만 걸었으니 변변한 단골 하나 없었다. 버티고 버티던 그는 2년 전 서울에 있는 막내아들을 찾아갔다.

    "아버지 청춘도 내 청춘도 다 서점에 있는데 문 닫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까지만 해보기로 했어요. 큰아들은 미국 가 있고 둘째 아들은 잠깐 일 시켜보니 쾌활한 성격이 서점과 영 안 맞더라고요. 책 좋아하는 막내에게 '아버지랑 같이 서점 안 해볼래?' 물으니 보름 뒤에 답을 주데요. 사실 침체기가 계속되니까 기가 죽어 있었는데 젊은 놈이 선뜻 돕겠다니 초심으로 돌아가 어떻게든 서점을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식이지만 어찌나 기특하고 고맙던지요."(김일수)

    아들 영건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공연기획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운 서울살이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어요. 20대의 많은 날을 맘 둘 곳 없이 살았죠. 그래도 막상 떠나려니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며칠을 뒤척이다가 '해보자, 대신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그때는 책방에서 일하면 여유롭고 낭만적일 거라는 기대감도 없진 않았죠."(김영건)

    2014년 9월 영건씨는 재계약을 앞두고 퇴사한 후 고향으로 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때부터 새로 만들 서점에 모든 걸 걸었다. 일단 주차장이 있는 넓은 자리를 구했다.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손님 대부분이 자가용을 타고 서점에 오는데 이전 자리는 너무 비좁았다. "인터넷으로 세계 유명 서점들이 어떤지 둘러봤어요. 진열이 빽빽하지 않고 편안히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꾸몄더라고요. 서점 기능에 충실한 서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래된 서점이 관광지 역할을 하면서도 책은 못 파는 경우가 많잖아요. 손님들이 우리 서점 와서 모르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면 그게 매출로 이어질 거란 생각에 공간을 개방적으로 꾸몄죠."(김영건) 실제로 동아서점을 찾은 손님들은 창가 의자에 앉아 한참 책을 읽다가 사 가곤 했다. 이곳에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해 책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동아서점에서 매달 독서 모임을 여는 박성진 시인은 "동아서점이 속초 독서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문화 시설이 부족한 데서 오는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고 했다.

    "가업을 잇는다는 거창한 생각보단 이제껏 해온 밥벌이니까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일단은 버텨서 살아남아야죠. 젊었을 적엔 참고서 팔아 먹고살았는데 학생 수가 줄어드니 별 돈벌이가 안 되더라고요. 아들이 낸 아이디어에 웬만하면 따랐어요. 서점 운영하는 방법은 제가 가르치면 되니까요."(김일수) 창업주 김종록씨는 아들과 손자가 새로 연 서점을 보고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김 대표는 "손자까지 당신 일 물려받는 거 보고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셨다"고 했다.

    서점 운영은 영건씨 생각처럼 한가하진 않았다. 책 한 권 볼 짬도 안 날 때가 잦았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추리기 위해 독서 관련 팟캐스트와 TV 프로그램, 일간지 책 추천 코너를 모두 챙겨본다고 한다. 처음 1년간 하루 12시간씩 꼬박 일하면서 서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했다고 했다.

    "대형 서점이 아니니까 출판사에서 홍보물도 잘 안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손 글씨로 책 소개 문구를 썼는데 그런 부분이 정감 가서 좋다는 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서점 일 하다 보니 미래를 가장 빨리 읽어내는 게 책이에요. 이를테면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반농반X의 삶', '사는 게 뭐라고' 같은 책을 함께 진열하니 잘 팔리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은 대안적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은 걸 알 수 있죠. 무엇보다 이제 책이 5만 권이나 되니 서점을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김영건) 그는 단골손님이었던 이수현(26)씨와 최근 결혼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그의 삶도 서점에서 막 싹을 틔우고 있었다.

    1970년대 속초 중앙동 동아서점 앞에 선 창업주 고(故) 김종록씨
    1970년대 속초 중앙동 동아서점 앞에 선 창업주 고(故) 김종록씨./김영건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