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풍속화를 잘 그린 화가로 김홍도와 신윤복을 꼽는다. 김홍도가 신윤복보다 13년 정도 나이가 많다. 김홍도의 그림이 신윤복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김홍도는 도화서의 인정받은 화원으로 평생을 권력의 주변에 머물렀다. 신윤복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화원이었으나, 속화를 그린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 이후에는 아마도 춘화와 같은 속화를 그리며 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두 풍속화를 잘 그린 사람 중에서 누구의 그림을 더 좋아하나요?
숙제 안 해 온 꼬맹이에게 회초리를 들었나 보다. 숙제 검사를 끝낸 친구들은 고소해 하지만 아직 숙제검사 안 한 애는 겁에 질렸다. 나이든 접장의 자신에게인 듯 애들에게 인 듯 측은해 하는 표정이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한다. 기와 잇는 그림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꼬집어 냈다. 수직을 재는 사람은 한 눈을 감고 기둥의 수직을 유지하기 위해 무지 애쓰고 있다. 진흙을 뭉쳐서 지붕으로 올리는 사람과 끌어 올리는 사람들, 기와를 던지고 그것을 받는 사람들, 모두 일에 푹 빠져버렸다. 김홍도는 일하는 사람들이 일에 몰두하는 모습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잘 그려냈다. 신윤복의 그림은 남녀간의 애정 관계를 많이 다루고 있다. 상당히 관능적이다. 그림 역시 얇고 에로틱한 선과 색이 여자에 대한 남자의 감정을 잘 담고 있다.
다음 그림은 좀더 신랄하다. 양반의 별장쯤 되는 집의 뒤뜰인가 보다. 역시 세 남자가 기생 셋을 데리고 조금은 음탕하게 성희롱해가며 노는 장면이다. 룸살롱의 18세기 후반 모드일까. 왼쪽 남자는 조금 심하다. 손이 여자의 속살을 만지는 듯하다. 대단히 밝히는 남자인가 보다. 오른쪽 남자는 파트너 기생의 가야금 연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중간 남자는 자신의 짝이 맘에 없는지, 왼쪽 쌍의 짓거리에 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파트너 기생은 화가 난 얼굴로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고 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대단히 관능적이다. 그림 내용만이 아니라 가느다란 선과 색 역시 대단히 '에로틱'하다. 돈 많은 한량들이 기생들과 어울려 방탕하게 남성을 발산하는 그림이 많다. 김홍도 이전에도 풍속화 같은 그림이 있었다. 18세기 후반은 양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서민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하던 시기였다. 풍요로운 삶을 가능케 하는 노동도 좋게 보기 시작했다. 일하는 장면과 서민들의 살아가는 장면 역시 아름답게 인식했다.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은 것이 화가의 본능이 아닐까.
조금 나이가 든 일꾼들은 지주의 아니꼬운 태도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한 친구는 화가 치밀어 올랐나 보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애꿎은 보릿단만 내치고 있다. 화가가 무슨 계급의식을 조장하기 위해서 그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조금은 과장되게 표현했을 뿐이다.
여자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자신들이 마부가 되어 시중을 든다. 술 한잔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갓도 망건도 내팽개쳤다. 기생들 머리에 예쁜 진달래를 꽂아 주었다. 멋쩍어진 마부가 내팽개친 갓과 채찍을 들고 기가 차다는 듯이 뒤따라오고 있다. 김홍도 역시 노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장면을 그렸다. 무동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피리 둘·대금·해금·소고·장구로 짜인 삼현육각 악사들의 음악에 맞춰 한 미소년이 춤추고 있다. 저 무동의 춤사위는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우리 문화의 상징처럼 되었다. 춤사위로 봐서 음악은 대 풍류쯤 되고 장단은 조금 빠른 자진모리 정도 되는 것 같다. 음악에 열중하는 악사와 춤추는 무동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었다. 음악이 막 들리고 춤동작 하나하나에 희열이 묻어나온다. 악사와 춤꾼이 먼저 무아지경이 되었고, 뒤이어 청중도 하나씩 하나씩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줄도 모르고 있다. 환갑 같은 경사 날에 한바탕 벌인 춤판이었을까? 장날 장사꾼들이 벌인 사람들 꼬일 목적으로 벌인 한바탕이었을까?
음악은 굿거리를 지나 자진모리 정도 도달했나 보다. 모두 춤판에 빠진 듯 보인다. 그러나 남녀 간 애정은 종잡을 수 없는 법. 뒤쪽에 앉아있는 나이 좀 든 기생은 애송이 남자 짝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대신 건너편에 있는 장년의 멋쟁이가 좋아졌다. 긴 담뱃대로 슬금슬금 농지거리를 건다. 이를 알아차린 애송이가 화가 잔뜩 났다.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별 수가 있겠는가? 모두가 지금은 춤판에 빠져 있어야 할 때인데….
우물가의 다른 아낙네는 저 남녀 둘이 벌이고 있는 행각에 빙그레 속으로 웃음 짓고 관조하고 있다. 물을 길어 막 집으로 가려던 한 아낙네는 화가 잔뜩 났다. 아마도 젊은 아낙네와 친척관계인 듯하다. 남자의 수작을 받아들이고 있는 젊은 아낙네에게 집에 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한 자세다. 김홍도의 남녀관계는 그러나 관능적이지 않다. 그냥 저런 일이 있고난 다음 남녀는 헤어졌고, 곧 남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 같다.
옷과 얼굴의 색과 버선코의 아련한 선까지 이런 애틋한 사랑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밤은 깊고 깊어 삼경이나 되었는데, 두 사람의 맘은 두 사람만이 알리라' 저런 사랑 해보지 않은 사람이 신윤복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시에 유행했던 여인네들 훔쳐보는 그림도 김홍도와 신윤복은 큰 차이가 있다. 김홍도는 빨래하는 여인들을 양반이 줏대 없이 훔쳐보고 있다. 양반에 대한 야유 같은 느낌도 든다. 여인들은 빨래에 열중하느라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있다. 아이를 옆에 낀 여인은 바위위에서 머리손질하고 있다. 저런 여인네들을 뭐 볼게 있다고 덜떨어진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열심히 훔쳐보고 있다. 참 안된 양반이다. http://cafe.daum.net/jaekyunghome
이 그림을 '단오'라 해서 빨간 치마 입은 여인에게 아무리 초점을 맞추려 해도 자연히 초점은 아래 목욕하는 여인에게로 갈 뿐이다. 내가 저 꼬맹이 위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 본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이렇게 다르다. 김홍도는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강조하기 위하여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기도 했다. 그림에 이야기들을 항상 준비해 두었다. 이념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을 모두 소중하게 여겼다.
아들이 책 읽으며 내는 저 소리는 글 읽는 소리가 아니라 발악이었을 것이다. 이런 김홍도의 풍속그림은 푸근하다. 정이 항상 담뿍 담겨있다. 사람을 사랑하되 인류애의 심정으로 인간적인 정으로 사랑한다면 김홍도의 그림을 좋아하리라.
드러누운 노송에서도 싹이 돋고 있다. 암수 두 마리 개가 짝짓기를 하고 있고, 세 마리 참새 역시 짝짓기에 홀딱 빠졌다. 이를 본 새댁 역시 환희를 내지르고 싶었다. 이를 눈치 챈 하녀인 듯한 소녀가 허리춤을 힘껏 꼬집어 환희 표현을 방지하고 있다. '봄에 오르는 물'이 어떤 물인지 이 그림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신윤복의 그림은 자꾸만 위험(?)해지고 있다. 점점 야한 강도가 심해져야 그림을 사가는 사람이 생겼나 보다. 이쯤에서 신윤복은 도화서에서도 쫓겨나고 말았을까. 신윤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춘화(포르노그림)가 남아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 누구의 풍속화를 더 좋아하세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두 화가의 그림들을 지금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다. 김홍도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당시 새롭게 변화해가던 인간에 대한 인식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양반과 당시 졸부들의 돈 쓰며 노는 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사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남녀 간의 애정, 욕정은 모두 비슷하다는 느낌도 진솔하게 지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더구나 <스캔들>이라는 영화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둘 다 좋지만, 기생의 그림을 통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인상을 표현해 준 신윤복이 조금 더 좋다. |
조선후기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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