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 Concerto in A minor, Op.53 드보르자크 / 바이올린 협주곡 가단조 Op.53 Antonín Dvorák 1841∼1904 Riccardo ChaillyCond Rundfunk-Sinfonieorchester Berlin Chung Kyung-Wha, Violin |
드보르자크와 같이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가 동시에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는데 힘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두번째 피아노 5중주의 공통적인 특징은 흥미롭게도 방법은 달랐으나 모두 개작의 결과로 잉태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곡가로서 원숙의 경지에 올랐을 때에도 드보르자크는 한편으로 출판업자들의 요청에 의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의 풍부함을 더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작업한 작품의 개작에 적극적이었다.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도 개작의 방법이 취해졌다. 드보르자크는 이 곡을 슬라브 춤곡의 첫번째 세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빠르게 얻고 있을 때인 1879년의 여름동안 작곡했다. 그는 브람스의 우정어린 소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던 독일의 출판업자를 소개 받았으며, 아울러 광범위한 음악세계의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이들 가운데 한명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브람스의 친구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이다. 드보르자크는 1879년 7월말 요제프 요아힘을 방문할 동안 협주곡에 대해 논의했고, 이당시 요제프 요아힘은 드보르작이 꼼꼼하게 작업했던 무수한 개작품을 추천했다. 심지어 작곡가가 협주곡의 음악적인 구조의 모든 양상을 다듬은 이런 광범위한 변경조차도 출판업자인 프리츠 심록의 조언자인 로버트 켈러(Robert Keller)에게는 불충분했으며, 그는 느린악장으로 바로 진행되는 것 보다는 첫번째 악장에 새로운 종지부를 원했다. 드보르자크가 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는 이미 지나갔고, 변화를 꾀하기를 거부했는데 적어도 첫번째 악장과 두번째 악장을 이어주는 패시지가 이 협주곡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아마도 작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프리츠 심록은 작곡가의 판단을 받아들였고, 1883년 그 작품은 최종적으로 출판되었다. 아마도 요제프 요아힘은 로버트 켈러와 모종의 합의를 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가 협주곡의 헌정자였음에도 결코 대중앞에서 이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작품은 1883년 드보르자크의 친구인 체코의 바이올리니스트 Frantisek ondricek이 초연했다. 드보르자크의 기준에 따르더라도 이 협주곡은 풍부한 서정성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첫번째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힘찬 합주에 화답하는 바이올린의 씁쓸하면서 달콤한 선율로 대담하게 시작한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간의 주고 받음은 이 악장의 주요부분으로 이끌어나가는데, 이곳에서 바이올린은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킨다. 자그마한 카덴차는 느린악장으로 절묘하게 이어지기 시작하고, 이 부분의 절묘한 선율은 폭풍우같이 몰아치는 단조의 중심부를 이루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중단된다. 16년 뒤에 작곡될 첼로 협주곡의 느린악장이 바로 예견되는 부분이다. 결말부는 한해전에 작곡된 슬라브 춤곡의 세계와 유사하다. 체코의 furiant의 교차운율로 수놓아진 주제부를 가진 매력적인 선율은 상쾌한 종결을 짓기 전 다채로운 에피소드의 틀을 제공한다. 드보르작의 작품세계 보헤미아 최대의 작곡가이면서 민족주의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드보르작은 슈베르트처럼 음악적 천분을 타고난 개성이 강한 작곡가이다. 더욱이 아름답고 재능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부인을 만나 안락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훌륭한 작곡가로서 많은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라 하겠다. 그는 완성곡만도 206편에 이르는 바, 작곡의 모든 분야에 걸쳐 고르게 작품을 남겼다. 그의 오페라는 그가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하고픈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모짜르트, 베르디, 푸치니 등의 오페라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는데 이것은 극적 구성력의 부족에서 온 것임을 후세의 평론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오페라 중 60세를 바라보며 완성한 「루살카」만은 오늘날까지도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와 더불어 체코를 대표하는 오페라로 자주 상연되고 있다. 드보르작은 절대음악 분야인 교향곡과 실내악 분야에서는 확실한 성공을 거둔 작곡가이다. 총 9곡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제8번 G장조, 제9번 e단조(신세계로부터)는 드보르작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5편의 교향시와 다악장 형식으로 된 현악 4중주곡을 비롯해 32곡의 실내악곡을 남긴 바 19세기 후반에 브람스에서 이어지는 실내악의 대가로 꼽히고 있다. 관현악 작품만도 「슬라브 춤곡집/Slovansketance」제1집 op.46과 제2집 op.72 등을 비롯해 20여편에 가까운 곡을 남기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는 피아노 협주곡 g단조 op.33, 바이올린협주곡 a단조 op.53, 그리고 미국에 있을 때 작곡한 유명한 첼로협주곡 b단조 op.104를 비롯해 모두 7편의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노 곡으로는 연탄곡 스코틀랜드춤곡집 op.41과 보헤미아의 숲에서 op.68과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8 Humoresky」op.101을 비롯해 10여편의 곡을 남기고 있다. 성악곡 분야는 라틴어 전례문에 의해 작곡된 교회음악 「스타바트마테르」op.58, 미사곡 op.86, 레퀴엠 op.89, 테 데움 op.103 등이 있고 그의 출세작의 하나인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을 비롯해 많은 합창곡과 무반주 합창곡 등이 있으며 2중창곡인 모라바 이중장 op.26을 비롯 많은 이중창곡을 남겼고, 유명한 「집시의 노래/Gypsy Melodies」op.55, 「황혼의 노래/Evening Songs」op.3등 수십 편의 예술성 높은 가곡을 남겼다. 드보르작의 초기 작품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영향이, 그리고 차츰 바그너와 스메타나의 영향이 보이나 끝까지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곡가는 바그너라 할 수 있겠다. 브람스로부터는 음악 전체의 구성과 주제 전개법을, 바그너로부터는 참신한 화성법을 영향 받았으며, 그 위에 체코 특유의 민속음악 어법을 가미하여 보헤미아 음악이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더욱이 미국에서 체득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소박한 민요의 선율과 보헤미아적인 어법의 복합사용으로 이국적이고도 변화감이 풍부한 곡을 썼으며 이로써 국민주의적 음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그는 민요의 쓰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 놓았다. “작곡가들이 자기가 속한 민족의 민요정신을 작품 속에 반영하는 것은 그들의 임무다. 그러나 민요의 선율을 그대로 통째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신을 곡에 반영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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