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6년 한 해에만 3월과 7월, 9월에 걸쳐 연달아 찾은 곳이 있다.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의 탄도미사일 기지다.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미국에게 신고하지 않고(undeclared) 가동 중이라고 콕 집어 지목한 그 미사일 기지다.
김정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6ㆍ12 정상회담 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미사일 시험장 폐기를 약속했지만 북한 전역에 퍼져있는 미사일 기지는 여전히 가동 중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큰 사기극(great deception)’에 빠져 있다는 게 CSIS 보고서와 이를 보도한 미국 언론 보도의 핵심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삭간몰에 애정을 쏟았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와 남북 관계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로 냉각기에 접어든 뒤에 그의 애정은 표면화됐다. 김 위원장은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7일 동창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자 박 전 대통령은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바로 다음달, 김 위원장이 맞대응을 위해 향한 곳이 삭간몰이다. 김 위원장은 3월11일 삭간몰 미사일 기지를 직접 찾아 탄도미사일 2발의 발사훈련을 직접 참관한 뒤, “핵 공격 능력을 높이기 위한 시험들을 계속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같은 날 북한은 남북간의 모든 경제협력 관련 합의는 무효이며,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남측 자산을 몰수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3월 방문 당시 김 위원장이 삭간몰 미사일 기지 현장에서 썼던 책상 위엔 ‘전략군 화력 타격 계획’이라는 지도가 놓였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참관 소식을 전하며 이 지도도 공개했는데, 황주군부터 동해상 일본 근처까지 탄도미사일 비행 궤적이 2줄로 그려져 있었다. 한국과 일본을 모두 도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7월에도 삭간몰 기지를 찾아 전략군 화성포병부대의 훈련을 참관했다. 이 부대의 주요 임무는 주한미군기지 타격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미사일의) 타격력이 언제 봐도 정확하고 치밀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7월 훈련에선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으며, 이 중 2발은 스커드-C계열로 500~600㎞를 비행했다. 나머지 1발은 노동급 준ㆍ중거리 미사일로 추정됐다. 삭간몰 기지는 단거리탄도미사일(SCBM) 및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전문 기지인 셈이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은 아니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3일 브리핑에서 “(CSIS 보고서에)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며 “삭간몰 미사일 기지는 단거리용으로, (미국을 겨냥한) ICBM과는 무관하다”라고 말한 배경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7월 실험 결과를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전하면서 “이번 훈련은 미제의 핵전쟁장비들이 투입되는 남조선 작전지대 안의 항구ㆍ비행장을 선제타격하는 것으로 모의했다”며 “탄도로케트(미사일)에 장착한 핵탄두폭발조종장치의 동작 특성을 검열했다”고 주장했다. ICBM 도발의 핵심 기술인 핵탄두 탑재와 관련한 핵심 기술을 점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9월6일에도 삭간몰을 찾았고, 사흘 뒤인 9월9일엔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 위원장이 삭간몰 기지에서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환히 웃는 사진 등은 노동신문 1~2면을 장식했다. 당시 북한이 공개한 사진엔 한반도와 일본 일부 지역을 타격 목표로 한 지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 CSIS는 왜 삭간몰에 주목했을까. 삭간몰은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해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2016년 도발에선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이 주로 등장했지만 중거리 미사일도 정보 당국에 탐지가 됐다. 북한은 통상 전방에서부터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미사일 순으로 기지를 배치한다. 도로 등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의 사정상 미사일 사거리에 따라 기지를 배치하기 때문이다.
CSIS는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 전역에 20여곳의 미사일 기지가 있으며 이 중 13곳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미사일 기지 숫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3년 말 “전국을 미사일로 수림(樹林)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역을 미사일 기지로 뒤덮으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한ㆍ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보유량이 파악한 것보다 더 많다고 예측해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