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1일 오전 6시 경북 경주시 감포항. 이날 열린 어판장에는 100명이 넘는 경매사와 상인이 모였다. 감포항은 동해 남쪽 바다 최대의 잡어 어판장이다. 손민호 기자
참가자미 최대 어장 경주 바다
전국 3위 안에 드는 한우 고장
젊음의 열기 뜨거운 황리단길
경주 사람의 사랑방 ‘도솔식당’
스님이 즐기는 탕수육 ‘탕수이’
오늘의 경주를 보고 왔다. 경주의 산과 바다, 강과 들에서 거둔 산물로 오늘을 사는 사람을 만나고 왔다. 다른 도시에선 깊이 들어가야 세월의 흔적을 마주하지만, 경주에선 깊이 들어갈수록 오늘을 조우한다. 경주에도 사람이 산다.

참가자미회. 식감이 졸깃하고 고기 맛이 달다. 손민호 기자

한창 경매가 진행 중인 감포항 어판장. 포항, 울산, 대구 등 외지에서도 상인들이 몰려왔다. 손민호 기자

참가자미는 도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두 녀석 모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있다. 다른 점이라면 참가자미 주둥이가 쥐처럼 뾰족하다는 사실. 사진 아래에 있는 녀석이 참가자미다. 손민호 기자
“참가자미는 수심 150m에서 살아. 사는 바다가 정해져 있어. 감포 앞바다에 몰려 있지. 물론 나만 아는 포인트도 있고. 여름에 알 낳고 나면 살이 딴딴해져요. 가을부터 맛있지.”
참가자미는 도다리랑 비슷하게 생겼다. 대신 주둥이가 쥐처럼 뾰족하다. 도다리는 50㎝ 넘는 녀석도 숱하지만, 참가자미는 30㎝ 정도밖에 안 큰다. 1993년 문을 연 ‘명성회센타’에서 참가자미회(3인분 6만원)를 먹었다. 졸깃한 살이 달았다. 매운탕에서도 단맛이 우러났다.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과 이태원 경리단길을 합한 신조어다. 젊음의 거리라지만, 한옥이 많은 경주여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민호 기자

경주의 핫 스트리트 황리단길. 기와 지붕 얹은 카페와 식당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외국인도 자주 눈에 띈다. 손민호 기자
누가 그리고 언제 맨 처음 황리단길이라고 이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2년쯤 전만 해도 한옥 게스트하우스 ‘황남관’에서 내남 네거리까지 약 1.5㎞ 거리의 왕복 2차선 도로를 황리단길이라 일렀다는데, 도로 양옆 골목으로 상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경계가 모호해졌다. 점집 골목으로 알려졌던 3∼4년 전의 낡은 거리를 기억한다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2∼3년 뒤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상상도 안 된다. 금·토요일 저녁에는 자동차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이 도로를 메운다.

황리단길의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인 카페 '아덴'. 기와집 3채를 헐어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말이면 5000명이 찾는 명소다. 손민호 기자

경주 문화예술인의 사랑방 '도솔마을'의 주인 무심화. 본명은 강시금씨지만, 도솔마을 단골은 무심화라고 부른다. 손민호 기자
고청의 빈소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던 여인 강시금(66)씨가 있었다. 그녀를 지켜본 김윤근(75) 현 경주문화원장이 밥장사를 권했다. 고청을 따르던 인사들이 돈도 모아 줬다. 고(故) 조필제 화가, 이임수 전 동국대 교수, 법명 스님, 김준철 목사, 정성혜 신부, 이태희 화가 등 종교와 분야를 뛰어넘은 후원 모임이 꾸려졌다. 식당 이름 ‘도솔마을’도, 그녀의 예명 ‘무심화(無心花)’도 후원 인사들이 지어줬다. 이후로 도솔마을은 경주의 사랑방이 되었다.
도솔마을에는 수많은 그림과 글씨가 걸려 있다. 모두 단골이 남긴 것이다. 서너 해 전까지는 별난 이름의 술이 있었다. 이를테면 고청주. 생전의 고청이 고량주를 좋아해 붙인 이름이다. 법명주는 사이다였다. 법명 스님이 즐겨 마시던 음료다. 지금은 관광객 손님이 대부분이라 메뉴판에서 옛날 이름을 지웠다. 도솔마을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의 매출 모두를 기부한다. 월 300만원꼴이라고 한다. 10월 마지막 날에는 음악회도 연다.

도솔마을의 상차림. 기본 밥상에 가자미회무침을 추가했다. 손민호 기자

한우
경주의 한우 사육 규모는 현재 6만4533두에 이른다. 경주시가 육성하는 ‘1+ 등급’ 이상의 고급 브랜드 ‘천년한우’는 전체 두수의 60%에 이른다. 양도 많고 질도 좋다. 그러나 경주에서 한우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우 단지도 경주시 곳곳에 조성돼 있다. 천북면·산내면·외동읍 등 경주시 외곽에 ‘불고기단지’라는 이름으로 한우 단지가 들어서 있다. 단지 이름에서도 오해가 빚어진다. 숯불구이 집인데, 불고기가 먼저 떠올라서다.
천북면 화산1리 이장이자 93년 한우단지가 조성될 때부터 자리를 지킨 ‘화산숯불’의 문성천(52) 대표는 “한때 27곳이었던 단지 내 고깃집이 지금은 10곳 정도로 줄었다”고 털어놨다. 단지 분위기는 휑해도 고기 맛은 빼어나다. ‘1+ 등급’ 이상 암소 한우 갈비만 쓴다는 갈빗살구이(100g 1만6000원)가 주메뉴다.

경주는 버섯의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건천읍이 버섯으로 유명하다. 건천 광명협동조합의 강인숙 대표가 재배 중인 백송고를 들어 보이고 있다. 손민호 기자
고속철도 신경주역이 있는 건천읍이 경주시에서도 버섯 산지로 유명하다. 버섯 농가 대부분이 모여 있다. 여기에서 경북 생산량의 90%,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양송이가 재배된다. 현재 경주의 대표 버섯은 양송이·새송이·느타리버섯 등이다.
건천의 버섯 농가 5곳이 결성한 광명협동조합의 강인숙(53) 이사장은 “조합에서 버섯으로 장아찌·잼·차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광명협동조합은 송이 맛이 나는 표고 종류 ‘백송고’를 주로 생산한다.

무열왕릉 어귀에 있는 사찰음식 전문점 '연화 바루'에서 만든 버섯 탕수육 '탕수이'. 사찰음식의 주요 재료가 버섯이다. 손민호 기자
경주=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