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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형 주방은 절대 안돼…'11'자형이 좋아"

산야초 2019. 2. 17. 00:15

"'ㄱ'자형 주방은 절대 안돼…'11'자형이 좋아"

    입력 : 2018.03.25 06:31 | 수정 : 2018.03.25 08:43

    집짓기는 평생의 꿈이다. 하지만 ‘집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땅집고는 예비 건축주들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개설한 ‘제1기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의 주요 강의 내용을 엮은 건축 지침서 ‘실패하지 않는 내집짓기’(감씨)를 최근 출간했다. 건축계 드림팀으로 불리는 5인의 멘토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건축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패하지 않는 내집짓기] 집짓기의 출발, 무엇을 해야 할까?

    충남 공주시에 있는 쌍달리하우스 전경. 유현준 교수는 건축주와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박영채

    “가자미는 눈 두개가 한쪽면에 돌아가 있어요.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물고기를 피해서 바닥에 밀착해 다니다보니 몸의 형태가 납작해지고 눈이 한쪽으로 돌아간 거죠.”

    스타 건축가로 불리는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실패하지 않는 내집짓기’를 통해 집짓기의 출발점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결국 좋은 건축물은 대지의 조건을 잘 이해하고, 각종 제한된 여건 속에서 어떻게 최고의 형태를 뽑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지를 볼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유 교수는 크게 4가지를 강조했다. ▲대지의 용도 ▲건폐율과 용적률 ▲연면적 ▲사선(斜線) 제한이다.

    집을 짓는다면 먼저 대지 용도에 따라 계획이 달라진다. 용도에 따라 건폐율(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 비율)과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연면적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건폐율과 용적률은 건축에서 기본 중 기본”이라며 “몇 평으로 몇 층까지 지을 수 있는 지 등 건물 배치 전략을 포함해 디자인의 절반이 결정된다”고 했다.

    연면적도 중요하다. 이 때 필로티나 지하층은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주변 건물의 일조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선제한 규정도 건물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건물마다 지니고 있는 기능을 충족하기 위한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유 교수는 방 크기, 복도의 폭, 문의 높이, 화장실의 위치 등은 사실상 사람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다.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주택 '한옥 3.0' 내부 모습. 전통 한옥의 특징을 살려 방과 방 사이가 다른 큰 공간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박영채

    그러면 저마다 삶의 방식과 여건이 다른데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공간이 만들어질까. 유 교수는 오랜시간 머무는 공간과 잠깐 지나가는 공간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일반 주택의 경우 대략 현관, 화장실, 침실, 거실, 부엌으로 구성돼 있다. 현관처럼 오래 쓰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어느 정도의 면적을 할당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보통 현관 폭은 1.3m정도면 2명이 교행할 수 있다. 3명이 지나가려면 1.6m는 돼야 한다. 한꺼번에 가족 여러 명이 현관에 몰린다면 2.15m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화장실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있다. 화장실의 변기가 놓여 있는 방이 있고, 세면대는 복도 쪽에, 샤워하는 방도 따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세 명이 동시에 각각 다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벽만 보고 요리해야 하는 'ㄱ'자형 주방 대신 '11'자형으로 만든 캥거루하우스 주방. /이태경 기자

    유 교수는 부엌의 경우 ‘ㄱ’자를 절대 만들지 말라고 강조한다. ‘ㄱ’자는 일할 때 거실에서 다 보이고 벽만 보면서 요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부엌은 ‘11’자형을 추천했다. 앞에는 설거지하는 개수대가 있어 거실과 식탁쪽을 보고, 뒤쪽 가스레인지 같은 것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대지와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옥 3.0’과 ‘쌍달리 하우스’의 시공 사례를 들었다.

    ‘한옥 3.0’은 전통 한옥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방과 방 사이가 외부 공간이나 다른 큰 공간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는 “가족끼리 서로 소통하고,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면서 “건축 재료가 아닌 공간 구성을 만드는 데 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달리하우스 내부 모습. 자연경관을 잘 받아들이는 큰 창과 슬라이딩 도어를 적절히 활용했다. /ⓒ박영채

    쌍달리 하우스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건축주의 특별한 주문이 많았다. 건축주가 미리 그려 온 평면도에는 풍수지리적인 디테일이 빼곡했다. 대지의 중간에 바위가 있는데 식당은 꼭 바위 앞에 놔달라고 하고, 거실은 골짜기를 바라봐야 한다는 식이었다.

    유 교수는 공간의 관계도 건축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맨 마지막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썼다. 좋은 자연경관을 담아내기 위해 슬라이딩 도어로 할 것인지, 스윙 도어로 할 것인지가 큰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개 아파트는 모든 문이 스윙 도어로 돼 있어 닫혀있는 느낌에 좁아 보인다. 쌍달리 하우스에는 화장실에서 옷방으로, 옷방에서 안방으로 가는 공간에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돼 개방감을 더했다.

    한옥 3.0 전경. 마당을 향하는 계단을 올라갈 때 새로운 느낌을 받도록 콘크리트 게이트를 만들었다. /ⓒ박영채

    유 교수는 ‘과정이 있는 공간’이라는 특별한 팁도 제시했다. 어느 정도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관계를 맺게끔 컨트롤하는 공간 구조를 뜻한다.

    “회장님 집무실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항상 비서실을 거쳐 그 방을 가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한옥 3.0의 마당은 도로보다 높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갈 때 새로운 느낌을 받도록 게이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공간을 디자인할 때 그 공간에 머무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곳으로 가기까지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동선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바람직한 시각적 관계는 뺑뺑 돌아서 가는 형태”라면서 “더 넓게 느껴지고 더 멀리까지 보이게 하려면 내 공간은 작더라도 다른 공간을 빌려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