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5.01 14:50
200년만에 일반 공개된 ‘비밀의 정원’
"성락원 관람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 예매 신청 쇄도
관람객들 "아름답다는 말밖에 안 나와" 감탄
200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검은색 철문을 열자, 울창한 소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솔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계곡물 소리가 귓가에 흘렀다.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최근 ‘예매 열풍’이 불고 있는 서울시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비밀의 정원’ 성락원(城樂園)을 30일 찾았다. 성락원은 200여년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 23일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을 받았다. 성락원은 전남 담양 소쇄원(瀟灑園), 전남 보길도 부용동(芙蓉洞)과 함께 '국내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힌다. 일반 공개가 결정된 이후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예매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이메일 예매 신청만도 1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오는 6월 11일까지 주3일(월·화·토) 140명씩만 관람객을 받아 "성락원 관람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베일 벗은 성락원…"감탄이 절로"
성락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앞뜰이 보인다. 성락원은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뉜다. 앞뜰은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두 골짜기가 합치는 곳. ‘같은 하늘 아래 흐르는 두 물줄기’라는 뜻에서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는 글자가 계곡 바위에 새겨졌다.
"성락원 관람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 예매 신청 쇄도
관람객들 "아름답다는 말밖에 안 나와" 감탄
200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검은색 철문을 열자, 울창한 소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솔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계곡물 소리가 귓가에 흘렀다.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최근 ‘예매 열풍’이 불고 있는 서울시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비밀의 정원’ 성락원(城樂園)을 30일 찾았다. 성락원은 200여년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 23일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을 받았다. 성락원은 전남 담양 소쇄원(瀟灑園), 전남 보길도 부용동(芙蓉洞)과 함께 '국내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힌다. 일반 공개가 결정된 이후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예매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이메일 예매 신청만도 1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오는 6월 11일까지 주3일(월·화·토) 140명씩만 관람객을 받아 "성락원 관람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베일 벗은 성락원…"감탄이 절로"
성락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앞뜰이 보인다. 성락원은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뉜다. 앞뜰은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두 골짜기가 합치는 곳. ‘같은 하늘 아래 흐르는 두 물줄기’라는 뜻에서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는 글자가 계곡 바위에 새겨졌다.
앞뜰에선 안뜰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전통 정원(庭園) 양식에 따라 정문에서 안뜰을 볼 수 없게끔 용두가산(龍頭假山·용 머리 모양의 가짜 언덕)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줄기를 따라 50여 걸음,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그제야 안뜰이 나타난다. 울창한 나무들이 연못 ‘영벽지’를 감싸고 있어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관람객들이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너무 아름답다"며 탄성을 질렀다. 과거 추사 김정희가 영벽지를 찾아 바위 표면에 장빙가(檣氷家·고드름 매달린 집)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물줄기를 따라 50여 걸음,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그제야 안뜰이 나타난다. 울창한 나무들이 연못 ‘영벽지’를 감싸고 있어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관람객들이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너무 아름답다"며 탄성을 질렀다. 과거 추사 김정희가 영벽지를 찾아 바위 표면에 장빙가(檣氷家·고드름 매달린 집)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안뜰에서 우측으로 난 돌담길을 따라 150여 걸음 올라가면 바깥뜰과 정자 송석정(松石亭)이 있다. 조선 선비들이 연회를 즐긴 곳이다. 지금은 한국가구박물관 전통공예품도 전시돼 있다. 바깥뜰에서 안뜰을 내려다보면 영벽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남산타워도 보인다. 성락원이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비밀의 정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풍경이다.
이날 성락원을 찾은 관람객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관람객 이효열(87)씨는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안 나온다"며 "여러 관광지를 가봤지만 여기가 제일"이라고 했다. 관람객 김병권(63)씨는 "이 광경을 못 보고 그냥 돌아갔다면 얼마나 원통할 뻔 했나"고 했고, 또 다른 관람객은 "영벽지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을 조선시대 선비들이 부럽다"고 했다.
이날 성락원을 찾은 관람객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관람객 이효열(87)씨는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안 나온다"며 "여러 관광지를 가봤지만 여기가 제일"이라고 했다. 관람객 김병권(63)씨는 "이 광경을 못 보고 그냥 돌아갔다면 얼마나 원통할 뻔 했나"고 했고, 또 다른 관람객은 "영벽지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을 조선시대 선비들이 부럽다"고 했다.
예매 경쟁을 뚫고 왔다는 기쁨도 뺄 수 없다. 어머니(87)와 함께 성락원을 찾은 김지나(51)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예약 전화를 계속 걸었는데 단 한 통도 받지 않았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보냈는데 ‘관람객으로 선정됐다’고 안내 전화가 와서 너무 기뻤다"고 했다. 성락원 관람은 예약을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성락원 관계자는 "지금도 하루종일 예약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메일로 온 예약 신청은 1만 건에 가까워 읽지도 못한다"고 했다.
◇쪼개진 필지…일부는 경매에 넘겨져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이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했던 몇 안 되는 별서정원(別墅庭園·별장에 딸린 정원)이기도 하다.
◇쪼개진 필지…일부는 경매에 넘겨져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전통 정원이다.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했던 몇 안 되는 별서정원(別墅庭園·별장에 딸린 정원)이기도 하다.
성락원은 조선 정조 시절인 1790년대 황지사가 처음 조성했다. 19세기 철종 시절엔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정원으로 썼고, 일제강점기에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장으로 썼다. 이후 1950년 심상응 5대손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성락원을 다시 사들였다. 현재도 심 회장 후손 등 개인이 소유한 정원이다. 관리는 한국가구박물관이 하고 있는데,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 관장이 심상준 회장의 며느리기 때문이다. 심 회장은 정 관장에게 "성락 원을 대중에게 공개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성락원 부지는 주로 심 회장 후손들이 필지를 나눠 소유하고 있지만, 일부 후손이 보유했던 필지는 경매로 넘어가 외부인 소유가 됐다. 지금도 일부 토지는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락원은 도심에 남아 있는 정원으로는 드물게 풍경이 잘 보존돼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됐다. 2008년 명승 제35호로 조정됐다.
성락원 부지는 주로 심 회장 후손들이 필지를 나눠 소유하고 있지만, 일부 후손이 보유했던 필지는 경매로 넘어가 외부인 소유가 됐다. 지금도 일부 토지는 경매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락원은 도심에 남아 있는 정원으로는 드물게 풍경이 잘 보존돼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됐다. 2008년 명승 제35호로 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