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능호관 이인상의 설송도

산야초 2019. 5. 15. 00:30


능호관 이인상의 설송도

 

▲ 이인상, 설송도.  조선 18세기, 117.2 x 52.9cm 국립중앙박물관

 

 

눈이 많이 내렸다.

생활에 불편은 많았지만 눈다운 눈이 내렸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세상엔 눈꽃보다 아름다운 꽃은 없다고 한다.

 

고궁으로 눈꽃 구경 갔다가 백설을 머리에 인 소나무를 보니 올해(2010년)로

탄신 300주년을 맞는 능호관(凌壺觀)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설송도

雪松圖>가 절로 떠올랐다.

 

바위 위에 솟아 있는 두 그루 노송이 눈에 덮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한 그루는

낙락장송으로 곧게 뻗어 올라가고 한 그루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단순한 소재지만 화면 상하좌우를 대담하게 생략하여 소나무의 늠름한 기상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동양화에서 설경을 그릴 때 쓰는 방식대로 여백 전체를 엷은 먹빛으로 채워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점 속기(俗氣)없는 고아(古雅)한 그림이다.

 

능호관의 설송도는 당대부터 이름 높았다.

연암 박지원의<불이당기 不移堂記>에는 이런 이야기 하나가 들어 있다.

 

어느 날 이공보가 능호관에게 잣나무 한 폭을 그려달라고 청하자

얼마 뒤<눈이 내리네 雪賦)>라는 시를 전서체로 써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부탁한 그림은 좀처럼 보내오지 않아 독촉했더니 능호관은 이미 주지

않았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공보가 "그때 준 것은 글씨였지 그림이 아니었네" 라고 하자,

능호관은 웃으며 "그 글씨 속에 그림이 다 들어 있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문인화만이 지닌 높은 차원의 미학이 들어있다.

능호관은 스스로 말하기를 외형적인 형태보다 내면적 진실성을 중시하여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품격(品格)을 담아내는데 무게를 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간 해서는 능호관 그림의 진수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당대의 안목들은 우리에게 그의 예술에 감추어진 비밀을 말해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그의 그림에서 진실로 주목할 것은 문기(文氣)라고 했다.

영조 때 문인인 김재로는 능호관의 그림의 묘처(妙處)는 농밀함이 아니라 담백함

에 있고, 기교의 빼어남이 아니라 꾸밈없는 필치에 있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오직 아는 자만이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