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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옆… "여기서 회의하면 피곤한 줄 몰라요"

산야초 2019. 10. 30. 23:13

덕수궁 돌담길 옆… "여기서 회의하면 피곤한 줄 몰라요"

입력 : 2019.10.30 00:09

[땅집GO]
- 모임공간 '상연재'
모든 회의실에서 고궁 한눈에… 2석부터 40석까지 다양한 규모
대여비는 다른업체 70% 수준… 예약 가득차 확장오픈 계획중

"와, 덕수궁 옆에 이런 분위기 좋은 모임 공간이 있었나?"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 입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영국 대사관 쪽으로 3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5월 문을 연 모임 공간 '상연재(相緣齋)'. 조선 초 황족과 귀족 자제의 교육기관인 수학원(修學院) 터에 지은 성공회빌딩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덕수궁 쪽으로 창문을 낸 상연재 회의실.
덕수궁 쪽으로 창문을 낸 상연재 회의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나는 모임 공간이어서 고객들의 회의 피로도를 덜어준다. /상연재 제공
상연재 내부로 들어가 미팅룸 문을 여는 순간,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수백년 된 고목과 돌담에 둘러싸인 고궁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쪽엔 일제강점기 로마네스크양식을 처음 도입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보였다.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 일대에서 영업 중인 공간 대여 업체들이 고층 빌딩에 빽빽하게 입점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상연재는 최근 서울시청과 공공기관, 광화문 직장인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모임 공간 자리를 꿰찼다.

상연재를 만든 건 17년 경력 기획·연출가 박명희 대표다. 그는 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제작 총괄 등 굵직한 행사에 참여한 전문가다.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좋은 장소, 좋은 콘텐츠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른 박 대표는 상연재 터를 보자마자 무릎을 쳤다. "모임 공간의 성공을 좌우하는 접근성과 분위기, 배후 모임 수요 등 삼박자가 딱 맞는 곳이죠. 2층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공간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내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모임 공간 론칭이다. 브랜드명을 서로 상(相), 인연 연(緣) 자를 합해 지었다. 다양한 사람이 만나 가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박 대표의 비전을 담았다.

상연재
막상 문을 열었지만 주위의 시선은 차가웠다. 공간 대여업 종사자들은 "1년도 못 버티고 폐업할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박 대표 역시 최근 경기 불황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상연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깊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문을 연 지 5개월 만에 매출이 한 달 임차료의 2배 이상으로 올랐다. 도심 한복판,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지닌 모임 공간의 희소성을 이 일대 직장인들도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상연재에서 회의나 미팅을 시작하고 업무 피로도가 줄었다'라며 단골이 된 고객이 꽤 있다.

상연재의 또 다른 경쟁력은 고객 맞춤형 전략이다. 모임 성격에 따라 고객에게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 추천이 가능하다. 총 9개 회의실이 있다. 2~8석 규모 미팅룸 4개, 10~15석 중형 3개, 30~40석 중대형 2개 등이다. 기존 광화문 업무지구에 있는 비즈니스센터가 40~50명이 들어갈 만한 대형 공간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공간 대여료도 경쟁 업체의 70% 수준이다.

상연재를 찾는 주요 수요층은 크게 둘로 나뉜다.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는 서울시청과 각종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관계자들이 각종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면서 모이는 일이 잦다. 오후 6시가 되면 각종 강연이나 스터디 모임이 열린다. 고정 예약 고객으로 등록한 모임도 꽤 많다. 요즘엔 적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회의실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불어났다.

상연재는 조만간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박 대표는 "다양한 분야의 강연자들과 해당 정보를 얻고자 하는 수요층을 매칭하는 서비스를 기획해, 상연재를 서울의 역사와 정취를 담은 아카데미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