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5.13 09:37
봄꽃 군락지 불갑산 동백골과 연실봉 야생화 산행
전남 영광을 대표하는 관광지 불갑산佛甲山(516m)은 상사화가 피는 가을철 많은 탐방객으로 붐빈다. 천년고찰 불갑사 앞 공원에 상사화를 심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에 이곳은 초록색으로 물든 수더분한 화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공 조성한 상사화가 없어도 불갑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야생화 명산이기 때문이다. 4월부터 많은 봄꽃이 피는데, 벌깨덩굴이나 앵초 같은 평범한 야생화부터, 한라새둥지란과 변산바람꽃처럼 희귀한 꽃도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입장하기 전에 발열체크 하겠습니다.”
불갑사 입구 통제소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봄꽃이 피며 영광군을 찾는 탐방객이 늘어나자 안전을 위해 내려진 조치였다. 평일이지만 공원에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집에만 머무는 생활에 지쳐 봄바람을 쐬러 나온 가족들이 많아 보였다. 실내보다는 야외활동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지나 걸어 들어가니 먼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맞았다. 그 아래 펼쳐진 상사화 단지는 온통 초록빛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풀 속에 숨어 있었다. 본격적인 봄꽃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인 산행 전에 먼저 불갑사를 돌아봤다. 압도적인 크기의 사천왕상이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7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입상들로, 1876년 설두대사가 고창 흥덕 연기사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설두대사 앞에 사천왕이 나타나 “불갑사로 옮겨 지붕을 씌워 주면 가람과 삼보三寶를 지키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해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 지은 듯한 절집들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소박한 모습이었다. 부드러운 불갑산 줄기에 둘러싸인 안정된 분위기의 사찰로 수행에 적합한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봄꽃 탐사 뒤 정상에서 바다 조망
절 옆의 저수지에 닿으니 갈참나무 신록의 희미한 그늘이 물 위에 어른거렸다. 커다란 황금색 잉어와 작은 물고기들도 인기척을 느낀 듯 물가로 몰려들었다. 정말 여유로운 오후였다. 호숫가 화단에서 자그마한 야생화들을 만난 뒤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저수지 뒤편 동백골 중단의 갈림길에서 불갑산 정상으로 뻗은 왼쪽 비탈길로 방향을 잡았다. 제법 가파른 구간이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커다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불갑산 숲은 결코 답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나무들 사이로 자유롭게 지나가며 시원하게 땀을 식혀 줬다.
목포 산악인 임연택씨는 “봄에는 불갑산을 처음 와봤는데 야생화가 정말 많네요”라며 “상사화 피는 가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덤불 속에 숨어 피는 소박한 꽃들을 찾으며 야생화 산행을 즐겼다.
정상에 닿자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졌다. 꾸준히 비탈길을 걸어 오른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연실봉蓮實峰’ 표지석이 있는 전망데크 앞에 서자 멀리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겹겹이 쌓인 나지막한 산등성들이 너머로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그 뒤에 거짓말처럼 바다가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서해가 있어 놀랐다.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은 산이 연꽃의 열매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 산들이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정상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불갑산을 명산으로 꼽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상에서 따뜻한 햇볕을 즐기며 잠시 숨을 돌렸다. 자연과 교감하며 세상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발아래 숨어 있는 야생화를 찾으며 걷다 보니 시간이 제법 많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하산 길은 주능선을 타고 구수재로 이동해 불갑사로 내려서는 비교적 짧은 코스로 잡았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뚝 떨어져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살던 불갑산
능선을 타고 걷다 보니 순박해 보이는 불갑산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릉 곳곳에 숨은 거친 암릉은 매력적이었다. 물론 등반장비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진 않았다. 하지만 초보자나 노약자는 조심해야 할 구간이 적지 않았다. 다행히 ‘안전한 길’이라는 우회로 안내판이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절 아래 공원뿐만 아니라 주능선 산길 주변에도 상사화 군락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불갑산에 가을철 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을이면 고도에 따라 시기를 달리하며 피어나는 꽃무릇의 화려함이 기대됐다.
능선상의 평지 구수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내려서니 부드러운 계곡길이 불갑사까지 이어졌다. 적당한 각도의 비탈길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불갑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답게 넓고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졌다.
계곡 중간에 조성한 인공폭포에 호랑이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불갑산은 실제로 호랑이가 살던 곳이었다. 1908년 영광군의 한 농부가 덫에 빠진 호랑이를 사로잡은 것을 일본인이 사들여 박제했다가, 당시 일본인 학교였던 전남 목포의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했다. 지금도 그곳에 보관 중인 불갑산 호랑이 박제는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산 호랑이로 알려져 있다.
불갑사로 돌아와 먼지를 털어내고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허전한 광장에 도착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봄꽃을 보며 산에서 자유롭게 하루를 보낸 것이 위로가 된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발적 격리생활에 움츠러든 가슴이 확실히 편안해졌다. 역시 야외활동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다.
산행 길잡이
불갑산 야생화 산행을 하려면 불갑사 뒤편의 동백골로 산을 올라야 한다. 절에서 구수재로 이어진 동백골에 가장 야생화가 많이 핀다. 구수재에서 정상을 거쳐 다시 저수지 쪽으로 하산해도 좋고, 주능선을 타고 암릉을 넘으며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다.
불갑사주차장 기점의 원점회귀 코스가 야생화 산행에 적합하다. 암릉 구간에는 계단이나 난간 같은 시설물이 있어 조심하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이정표가 많고 등산로가 뚜렷해 손쉽게 산행이 가능하다.
불갑사 기점 코스로는 동백골~해불암~정상~해불암~동백골~ 불갑사(4.5km, 약 1시간 30분), 불갑사~동백골~구수재~ 연실봉~해불암~동백골~불갑사(약 4.5km, 2시간 30분), 불갑사~동백골~구수재~용봉~도솔봉~수도암(또는 불갑사)~주차장(4.2km, 2시간 30분), 수도암~도솔봉~ 구수재~연실봉~덫고개~불갑사(약 6.4km, 3시간 30분) 등이 있다.
명소
백수해안도로
영광을 대표하는 낙조명소다. 2005년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전국에서 9번째로 아름다운 도로에 꼽혔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갓봉 줄기를 따라 바닷가의 급경사지대에 길이 조성됐다. 바닷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로 동해안에 버금가는 멋진 풍경이 전개된다. 영광 백수읍 백암리에서 대신리를 거쳐 모래미해안까지 이어지는 실질적인 해안도로 구간의 길이는 8㎞ 정도다. 주요 지점에 주차장과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어 낙조를 감상하기 좋다.
교통
영광에 들어서면 불갑사 방면의 이정표를 수시로 만날 수 있다. 영광IC에서 약 18km 거리로 자가용으로 25분이면 닿는다.
영광읍내에서 영광버스터미널을 거쳐 불갑사로 가는 버스가 하루 8회(06:35, 09:00, 10:20, 11:20, 14:30, 12:20, 17:40, 19:20) 운행한다. 불갑사공원 입구에서 회차해 영광읍내로 돌아간다. 영광읍내에서 택시를 타면 2만 원 정도 나온다.
문의 영광택시 061-351-2229.
숙식(지역번호 061)
불갑사공원에 위치한 영광힐링컨벤션타운(353-4476)은 콘도식 숙소로 시설이 깔끔하다. 15평형, 24평형, 33평형 세 종류의 숙소를 운영하며, 이용료는 8만~37만 원으로 비수기와 성수기 요금 차이가 크다. 불갑사 입구에 식당이 여럿 있다. 동해가든(353-9779), 민속정(353-5507), 보리향기(353-3325), 산수정(353-3883) 등이며 보리밥(8,000원), 제육쌈밥(1만 원), 돼지고기김치전골, 닭백숙, 낙지볶음 등이 주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