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30) 불고기
내 맘대로 고른 불고기 맛집 best 4
글 : 최선희 객원기자
지금은 흔해졌지만, 어릴 적 불고기는 잔치나 명절,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짭조름한 간장과 달큰한 양념이 잘 어우러진 야들야들한 고기를 한입 가득 넣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어린 시절의 불고기가 오롯이 먹는 즐거움을 줬다면,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지금은 효율성 면에서 단연 최고의 식재료다. 불고기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일품요리가 되지만 약간의 변형을 더하면 다양한 식단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고기감을 넉넉히 구입해 한번에 양념한 뒤,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한동안 반찬 걱정에서 해방이다.
비빔밥 고명으로, 김밥 속재료로, 덮밥으로 색다른 한 끼를 만들 수 있고,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냉장고 속 채소와 떡, 불린 당면 등을 넣고 불고기전골로 만들면 찬바람 날 때 그만한 별미가 없다. 외국 음식과도 잘 어울려 타코, 월남쌈, 샌드위치, 피자 토핑으로도 훌륭하다. 이처럼 활용 범위가 넓고, 자극적이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불고기의 가장 큰 매력. 김치와 함께 불고기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데는 이런 특성이 한몫했다.
특히 3년 전 tvN에서 방송한 〈윤식당〉은 불고기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장면을 생생히 보여줬다.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의 작은 섬에서, 전문 요리사가 아닌 배우 윤여정이 셰프로 변신한 윤식당의 메인 메뉴는 불고기라이스, 불고기누들, 불고기버거였다. 섬의 특성상 음식점을 찾은 손님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휴양객들. 국적도, 나이도, 문화적 배경도 모두 달랐지만 한결같이 불고기 맛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조리법은 또 얼마나 간단한지. 윤식당에서 선보인 기본양념, 일명 ‘마더소스’는 물·간장·양파·사과나 배·다진 마늘·설탕·후추를 한번에 넣고 휘리릭 갈면 끝이다. 얇게 썬 고기를 볶다가 이 소스를 넣고 조금만 더 익히면 불고기 한 접시가 뚝딱 만들어진다.
문헌에 따르면 불고기의 역사는 고구려 시대, 고기를 양념해 불에 구워 먹었다는 ‘맥적’을 그 기원으로 본다. 전통을 잇는다는 측면에서는 불고기의 대명사처럼 된 국물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보다는 석쇠에 굽는 ‘언양불고기’나 ‘광양불고기’가 어쩌면 더 가깝다.
하지만 불고기는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부드러운 소고기와 단짠 양념의 조화, 그 맛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불고기는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식객》에 나온 그 집! 설탕 無! 無
사리원불고기
서울 강남구 남부순환로 2712 / 02-573-2202
© 네이버블로그 - gairi00 |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소개된 국내 대표 불고깃집. 배·파인애플·사과·레몬·샐러리·오렌지·키위·배즙 등 열두 가지 과일과 채소로 만든 특제 소스가 유명하다. 고향이 황해도 사리원인 창업주 고 구분임 여사가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남편을 위해 설탕을 넣지 않은 불고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현재 손자인 나성윤 씨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사리원불고기는 보통의 불고기와 달리, 배즙과 다진 마늘로 양념한 등심을 불판에 구워 간장 육수에 살짝 담갔다가 소스에 찍어 먹는다. 고기 본연의 맛과 달콤한 소스가 더없이 조화롭다. 질 좋은 고기와 신선한 채소는 기본. 간장과 된장도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것을 사용하고 소금은 전북 부안의 곰소염전 것만 쓴다. 한식당 최초로 와인을 판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40년 전통의 ‘서울식 불고기’ 맛집
보건옥
서울 중구 창경궁로8길 12 / 02-2275-3743
© 네이버블로그 - cozy95 |
을지로 방산시장 인근에 자리 잡은 보건옥은 대표적인 서울식 불고기 맛집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던 김계수·고옥자 씨 부부가 40년 전, 불고기 전문점으로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육질 부드러운 한우에 간장·다진 마늘·참기름·설탕 등을 넣어 양념하는데 미리 재워두지 않고 주문 즉시 버무리는 것이 특징. 고기 색이 검게 변하지 않고 본연의 맛을 살려주어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난다. 다른 불고기 음식점들과 달리 육수로 설렁탕 국물을 사용하고, 당면 대신 소면을 넣어주는 것도 특색 있다. 삶은 소면을 불고기 간이 밴 육수에 담가 보건옥의 대표 반찬인 쪽파김치와 함께 먹는 것이 마지막까지 맛있게 즐기는 비결. 육수를 붓기 편하게 전골냄비를 쓰지만, 손님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가운데가 뚫려 있는 옛날식 불판을 내어준다.
지글지글 숯불에 구워 먹는 석쇠불고기
언양기와집불고기
울산 울주군 언양읍 헌양길 86 / 052-262-4884
© 네이버블로그 - frmee |
언양식 불고기는 떡갈비에 가깝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언양 근방에 파견되었던 건설 노동자들이 맛보고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양념을 최소화해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굽기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 칼로 다진 고기를 석쇠에 얹어 펴고, 센 불에서 겉을 재빨리 익힌 후 중불에서 천천히 속까지 익힌다. 고기가 익기 시작하면 육즙이 떨어지는데 이때 올라오는 숯불 향이 고기에 배어들면서 풍미를 높여준다. 언양기와집불고기는 언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석지기 기와집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4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한다. 최상급 한우암소를 사용한 석쇠불고기가 대표 메뉴. 달달한 겨자소스에 찍어 먹어도 좋고, 쌈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참숯 향과 육즙 가득, 사르르 녹는 맛
삼대광양불고기집
전남 광양시 광양읍 서천1길 52 / 061-763-9250
© 네이버블로그 - sarang2012g |
흔히 불고기를 볶는다고 표현하지만 광양식 불고기는 굽는다. 국물이 있는 서울식과는 완전히 다르고, 다져서 석쇠에 굽는 언양식과도 차이가 있다. 1930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삼대광양불고기는 광양식 불고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한우와 호주산 두 가지 고기를 쓰는데, 육질이 부드러운 등심을 골라 고기 사이에 있는 힘줄과 기름을 제거하고, 칼끝으로 자근자근 두드린다. 손님상에 내가기 직전 간장·설탕·깨소금·파·마늘 등 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고기를 재빨리 구워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석쇠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참숯 향과 육즙을 가득 머금은 고기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최선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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