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우리 땅 걷기] 인왕산에서 북악산까지… 천만 수도 한복판, 그림 같은
[나홀로 우리 땅 걷기] 인왕산에서 북악산까지… 천만 수도 한복판, 그림 같은 ‘비밀의 숲’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1.18 09:48
이미지 크게보기곡장은 한양도성, 북악산 그리고 서울도심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북악산 최고의 전망대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블루로 인한 활동 제약이 계속돼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상대적으로 밀접 접촉 우려가 적은 환경에서 일상생활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전은 야외에서 걷는 것이다. 특히 나무와 풀을 보며 숲이 가득한 산길을 산책하듯 걷는 운동이야말로 요즘처럼 답답한 일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치유법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걷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찾아진다. 꾸준히 걸으면 체력도 향상되고 면역력도 증강된다.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해 자주 걷는 곳은 인왕산과 북악산을 연계한 코스이다. 능선을 따라 축조된 한양도성 길에서는 서울의 멋진 조망이 펼쳐지며, 도심 속에서 자연의 공기를 맛볼 수 있어서 걷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왕산에서 북악산에 이르는 지역은 예부터 도성 내에서도 가장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주변에는 권문세가의 집이나 별장, 명승지가 있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도 인왕산 아래에서 살면서 인왕산 주변으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이미지 크게보기등산객들이 인왕산 한양도성길로 접어들기 위해 해골바위 앞을 지나고 있다.
북악산, 2010년 이어 두 번째 개방
인왕산과 북악산 모두 청와대를 경호하는 군사적인 이유로 일정기간 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던 지역이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일명 1.21사태 이후부터 통제되었다가 인왕산은 1993년에, 북악산은 2010년과 2020년 두 번에 걸쳐 개방된 지역이어서 역사적으로도 무척 의미가 있다. 또한 출발지점이나 종료지점의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고 경로 선택의 폭이 넓어서 자신의 체력과 상황에 따라 코스 선택이 가능하다.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인왕산 자락길을 지나서 정상을 찍는 코스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무난한 코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성곽만 따라 오르는 계단길이라 조금은 지루해질 수 있어서 인왕정에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인왕정을 시작으로 해골바위를 거쳐서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는 자락길은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따스한 길이다. 인왕정에서 해골바위까지는 모두 데크길. 경사도는 조금 있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고 안전하다.
해골바위에는 엄청난 낙서 흔적들이 있다. 유난히 크고 진하게 남겨진 이름들. 자연과는 어우러지지 않는 이런 흔적들을 남기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해골바위 위로 오르니 아래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멋진 곡선으로 흐르는 성곽, 남산까지 펼쳐진 시내 조망이 바위와 잘 어우러진다. 해골바위 아래엔 인왕산의 명물 선禪바위가 있다. 2개의 거대한 바위는 풍화작용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지만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뒤를 돌아서면 인왕산 방향으로는 얼굴바위와 모자바위가 보인다. 해골바위에 있는 낙서를 보고 그냥 지나쳤으면 이 멋진 조망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해골바위에서 내려와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가끔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속인들을 마주쳐서 엄청 놀랐던 적도 있었다.
자락길에서 한양도성길로 들어서니 하늘에서 두꺼비가 왕방울 두 눈으로 날 바라본다. 도성길로 들어서면 경사가 급해진다. 인왕산 정상 직전에 조망 좋은 바위로 오른다. 이곳은 나만의 조망터. 미니어처처럼 펼쳐진 서울 도심을 뚫고 쭈욱 뻗어나간 도성길이 남산으로 연결된다.
인왕산 정상의 삿갓바위에 오르면 동서남북 360도로 탁 트인 서울 도심의 전경은 조금 전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다. 잠실 롯데월드부터 남산, 안산, 북한산까지 서울을 둘러싼 모든 산들이 보인다. 노을과 야경까지 아름다운 인왕산은 언제부터인가 20~30대 젊은이들에겐 핫한 산으로 불린다. 특히 밤에 일몰과 야간산행을 즐기러 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북한산이 기차바위능선을 감싸 안고 보현봉과 문수봉, 나한봉, 승가봉, 비봉, 향로봉이 줄지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차바위는 여름에 자주 찾는 피서코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기차바위에 오르면 에어컨 바람보다 더 강력하고 시원한 바람이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린다. 기차바위는 멀리서 인사만 나누고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가 잠시 자락길로 들어선다. 폭신한 오솔길이 인왕산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자락길에서 인왕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항상 위쪽에서만 바라보던 인왕산이었는데 반대편에서 바라보니 저렇게 멋진 바위 위에 올라 있는 산이었구나.
이미지 크게보기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은 높이를 더할수록 더 멋진 조망이 열린다.
최고의 조망, 곡장전망대
다시 도성길로 올라오니 부부소나무가 반긴다. 부부소나무는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서로 이어져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연리지 뿌리의 상당 부분이 지면 위로 올라와 있다. 많이 고통스러울 텐데. 부부소나무가 더욱 건강해지고 사랑은 더욱 깊어지길 바란다.
창의문에서 52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산 루트로 들어서는 길은 찾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이곳저곳에 안내 글이 많이 붙어 있다. 그 덕분에 쉽게 1번 출입구를 통해 수십 년 동안 닫혀 있던 길에 들어섰다. 가벼운 산책길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나무 데크길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군사시설이 종종 보인다.
3번 출입구인 청운대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고 곡장전망대로 오르는 청운대의 웅장한 성벽엔 한양도성 축조 시기별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이곳부터 곡장까지는 한양도성을 따라 약 300m.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길이 쉽지는 않다. 곡장에 서는 순간 ‘와’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역시 북악산 최고 전망대이다. 북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보다 시야가 트여서 부암동, 평창동, 북한산이 파노라마 풍경으로 펼쳐진다. 정면으로는 경복궁과 세종대로, 남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론 굽이진 한양도성이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질주한다. 한양도성과 북악산 그리고 서울도심이 함께 보이는 멋진 풍경이다. 이곳을 방문한 탐방객 모두 감탄사를 쏟아낸다. 곡장이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
4번 출입구는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고 새로 개방한 북측 지역의 3km 탐방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하산길은 북악스카이웨이 도로를 건너 산책길을 따라서 숙정문 또는 부암동으로 내려가거나 한양도성길을 따라서 창의문으로 원점회귀할 수도 있다. 서울의 비무장지대라 불릴 정도로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북악하늘길로 향하기 위해서 숙정문으로 발길을 옮긴다.
북악하늘길은 2010년에 개방된 걷기 편한 산책로. 총 4개의 코스가 있다. 일명 ‘김신조 루트’라 불리는 2코스가 깊은 계곡과 숲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가을철의 북악하늘길은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린다.
이미지 크게보기지난 11월 1일에 52년 만에 개방된 북악산 북측지역의 탐방코스로 들어서는 1번 출입구의 모습.
서울 한복판에 이런 숲길이
숙정문안내소 이정표를 따라서 오르다가 성북천 발원지로 들어선다. 여기부터가 북악하늘길. 나무도 꽤 울창하고 인적도 거의 없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해서 초보자에겐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성북천 발원지로 들어가는 수고해水鼓蟹다리. ‘가제가 물에서 물장구치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뜻을 알고 나니 다리가 더 정겹게 느껴진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봄의 소리.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맑은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성북천 발원지에서 직진을 하면 1코스, 우측으로 가면 2산책로이다. 2산책로로 올랐다가 1산책로로 돌아오기로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김신조 사건 때 총격으로 인해 총알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호경암.
서마루부터는 전망대와 쉼터가 곳곳에 있어서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특히 계곡마루는 산으로 둘러싸여서 쉬어가기 참 좋은 곳이다. 등산객 몇 분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신다. 신선까지는 아니어도 유유자적 바람소리를 벗 삼아 벗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들이 참 정겹다. 계곡마루를 지나면 남마루. 이곳에 서면 남산 뷰가 정말 멋지다. 올라온 수고로움을 잠시 위로하며 쉬어간다.
호경암에 이르니 김신조 사건 때 총격이 일어났던 바위에는 총알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경암은 북악하늘길 최고의 전망대이다. 길에서는 호경암으로 오르는 이정표나 표식이 전혀 없어서 대부분 이곳으로 올라오지 않고 그대로 직진한다.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족두리봉부터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보현봉까지 걸으려면 종일 걸릴 텐데 눈으로 조망하니 더욱 즐겁다. 북한산 능선을 걷는 상상을 한다. 홀로 온 등산객들의 인증 사진을 한 장씩 찍어드렸다. 맘에 드신다고 활짝 웃으시니 내 마음도 활짝 웃는다.
이미지 크게보기풍화작용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 선바위는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교에서 북악팔각정까지는 스카이웨이산책로를 걷는다. 북악팔각정 앞의 작은 철문으로 들어서면 다시 북악하늘길이다. 계곡마루를 지나서 다시 성북천 발원지까지는 북악하늘길 1산책로이다. 2산책로처럼 여유로운 길이다. 오던 길과 조금 다르게 숙정문을 지나 도성길을 따라서 말바위쉼터까지 간다. 말바위쉼터 조망터에서 북악산과 인왕산을 다시 조망하다가 정릉 옆으로 흐르는 내부순환도로로 눈길이 간다. 차들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쌩쌩 달린다. 무척이나 바빠 보인다.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는 차들. 하늘에 계신 분은 지구에 사는 우리들이 보이기나 할까? 산에 오르면 내가 참 미미한 존재임이 느껴진다. 성북천 발원지를 거쳐서 와룡공원, 감사원에 도착해서 오늘의 걷기를 끝낸다.
하루 종일 남산을 바라보며 숨바꼭질하듯 걸었다.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정말 멋진 서울에 살고 있음을 다시 느꼈다. 쉬엄쉬엄 사진 찍어가며 나 홀로 산책을 즐긴 시간, 도시 속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다. 좋은 길을 걸으니 보석을 얻은 것 같은 감동이 스며들었다. 도심에서 이런 숲길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선물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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