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서 ‘치즈빵’, 양재서 ‘판타지아 蘭’··· 큐레이터가 골라준다, 내 취향을
[아무튼, 주말] ‘선택장애’위한
서울 근교의 큐레이션 공간
입력 2021.01.23 00:00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 커피 한잔 마실 때조차 ‘샷’을 추가할지 말지, 크림을 올릴지 말지, 은연중에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다. 선택의 공해에 지쳐서일까.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가 대세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큐레이터(curator)가 작품을 기획하고 설명해주듯 좋은 콘텐츠와 정보를 엄선(嚴選)해주는 일을 말한다. 우연히 들른 여행지, 북적이는 쇼핑 공간, 봄을 기다리는 꽃 시장에 숨어 있는 큐레이션 공간을 찾았다.
경기도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는 카페와 베이커리, 서점, 편집숍, 식료품관이 한데 있는 복합 공간이다. 각 공간에선 전문 큐레이터가 큐레이션한 메뉴, 제품, 책 등을 선보인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 내 서점. 자연과 마주한 창을 보며 혼자서 오롯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자연 속 브런치 서점... ‘살롱 드 이터널저니’
서울 도심에서 1시간 거리, 경기도 가평 복합 리조트 ‘아난티 코드’ 내 살롱 드 이터널저니(031-580-3370)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하는 아난티의 세 번째 ‘이터널 저니’다. 2017년 ‘이터널저니 부산’, 2018년 ‘이터널저니 남해’에 이어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회원제로만 운영하는 리조트 객실과 달리 살롱 드 이터널저니는 투숙과 상관없이 열린 공간으로 운영한다.
크게 서점, 편집숍, 그로서리(식료품), 카페·베이커리로 나뉜다. 베스트셀러 대신 책을 주제별로 나누어 집중 소개한 서점은 살롱 드 이터널저니에 방점을 찍는 공간. 주제가 묵직한 책들을 선별해놓아 방문객들이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여행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중 ‘이터널저니의 시선’은 지금의 사회 현상에 눈높이를 맞춘 책들을 힘주어 소개한 코너다. ‘규칙 없음’ ‘돈의 역사’ ‘멀티 팩터’ 등이 신축년 새해 추천 도서로 올라와 있다. 직원은 “살롱 드 이터널저니는 의외로 남성 고객층이 많아 과학과 경영, 경제 관련 서적을 깊이 있게 큐레이션 해놓았다”고 했다. 서점 한쪽 커다란 통유리창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 산 책들을 편히 읽을 수 있다. 서점은 때로 북 토크나 전시·공연·클래스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7일부터 ‘아트 카펫' 전시도 열 예정이다.
경기도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 서점엔 '이터널저니의 시선' 코너가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 카페의 인기 브런치 중 하나인 '쿠바노 샌드위치와 샐러드'. / 박근희 기자
브런치와 디저트 맛집으로 먼저 소문난 카페·베이커리도 빼놓을 수 없는 공간. 베이커리는 쫀득한 식감의 치즈빵(9000원)이 대표 메뉴다. 일찍 다 팔려 오후 느지막하게 가면 없을 확률이 높다. 카페에서는 프랑스식 토스트와 샐러드(2만8000원)부터 미국식 쿠바노 샌드위치와 샐러드(2만8000원), 베트남식 반미 샌드위치(2만8000원), 미국식 스테이크와 프라이드 에그(4만3000원) 등 신선한 재료로 만든 브런치(1만8000~4만5000원)를 맛볼 수 있다. 편안한 소파에서 리조트 정원을 내다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옆 식료품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담한 규모지만 프리미엄 식품관처럼 꾸몄다. 리조트 투숙객들의 수요가 늘어난 ‘밀 키트(음식 재료 세트)’, 과일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술 키트’ 코너 등이 있다.
경기도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 편집숍에는 업사이클링 제품이 눈에 띈다. 에비앙 유리 생수병을 재활용해 만든 '에비앙 화병'.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친환경 소재 스니커즈와 책 '걷기의 인문학'을 나란히 전시한 '살롱 드 이터널저니'의 편집숍.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편집숍에선 매일 쓰는 비누, 로션 하나까지 ‘가치 소비’에 무게 둔 제품을 선보인다. 이곳 큐레이터는 “그저 쓰다 버리는 생필품, 옷, 향 하나도 분야별 전문가 7명이 고르고 골랐다”고 얘기한다. ‘지속 가능’한 제품을 선별했다는 편집숍에선 지구 환경을 생각한 친환경 재생 소재가 공통분모인 제품들이 많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한 친환경 원단과 자연 분해되는 원단으로 만든 수영복 등이 대표적이다. 친환경 소재 스니커즈와 나란히 ‘걷기의 인문학’ 책도 함께 추천해두었다. 서점에 있었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책이다. 여기에 도예·금속 작가와 공예가가 만든 그릇, 액세서리, 소품과 함께 아난티 코드 리조트 객실에 제공되는 객실 비품, 친환경 차량용 방향제 등 아난티 자체 상품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든 큐레이션은 한두 달 단위로 교체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
지난 11월 경기도 다산신도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점'에 문 연 북 큐레이션 서점 '부쿠 남양주점'.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경기도 다산 '부쿠 남양주점'은 브런치 카페와 함께 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쇼핑몰 속 북 큐레이션 ‘부쿠’
생각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인생 책’과 만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다산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 개장과 함께 문 연 서점 ‘부쿠’ 얘기다. ‘부쿠 다현아(다산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약칭)점’ ‘부쿠 남양주점'이라고도 하는 다산 부쿠 현대프리미엄아울렛점(031-8078-2401)은 북 큐레이션 서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북 큐레이터가 선정한 책부터 만난다. 연간 출간되는 책 8만 종 중 ‘꼭 읽어보면 좋을 책’과 많은 사랑을 받은 책 중에서 ‘지금 이 시기에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따로 집계하지 않는 게 이곳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키보다 낮은 책장들을 마치 미로를 탐험하는 듯 배치했다. 천천히 둘러보면 이따금 북 큐레이터가 깨알 같은 글씨로 직접 추천 사유를 적은 책과 마주한다. 책 분야와 장르가 다양한 것도 이곳 특징이다. 엄마들을 위한 육아서와 유·아동책도 따로 큐레이션 해놓았다.
북 큐레이션 공간인 경기도 다산 '부쿠 남양주점'에선 큐레이터가 책을 소개하는 손글씨 메모도 발견할 수 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스페이스원의 중심 ‘큐브’ 건물 꼭대기층인 4층 전체를 커피와 음료, 브런치를 선보이는 ‘애즈라이크’와 함께 쓰고 있다. 브런치는 캄파뉴 빵 위에 루콜라, 새우 등 토핑을 얹은 오픈 샌드위치 종류(1만~1만3000원)와 생연어 샐러드(1만3000원) 등 샐러드 종류(9400원~1만3000원)가 인기다. 평상처럼 편하게 등 기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간단히 노트북을 쓸 수 있는 공간 등 자리 선택 폭도 넓은 편이다. 자리마다 가림막을 설치해 ‘거리 두기’를 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
식물 큐레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양재 '심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제철 식물 엄선, ‘심다’
키우는 식물마다 미필적 고의로 죽이고 마는 ‘식물 저승사자’라면 식물 큐레이터 도움을 받을 만하다. 서울 양재동 화훼 공판장 내 심다(simda·02-579-2444)는 식물 큐레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곳. 제철 음식처럼 제철 식물을 추천하고, 집 안 환경과 인테리어, 개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반려식물을 소개한다.
식물을 들이기 전 자체 개발한 설문 30가지부터 답하는 게 시작이다. 이를 토대로 해당 계절에 비교적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선별하고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지, 관리해주는 게 이곳의 주 업무다. 지난해 여름 튼튼한 무화과를, 가을엔 크리핑로즈메리를, 겨울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로즈 등을 알렸다.
1월 주제는 ‘처음’이다. 이주연 심다 대표는 “풀의 마음, 초심(草心)으로 반려식물 키우기에 도전하는 초심자(初心者)를 위한 신년 첫 번째 식물 큐레이션”이라고 소개했다. 심다 쇼룸 겸 판매장(화훼 공판장 분화 온실 나동 111호) 입구엔 1월 주제에 따라 초심자도 부담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셀렘, 틸란드시아, 히메몬스테라, 황칠나무, 사슴박쥐란 등을 전시해 놓았다. 온시디움이라고 하는 판타지아 난도 이달의 식물로 꼽았다. 이 대표는 작년 집콕족을 위해 반려 식물의 분갈이 등을 체험해볼 수 있는 ‘식물 키트’를 만들어 펀딩에 성공하기도 했다. 동절기인 2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
마켓 큐레이션 공간 경기도 용인 '동춘175'에선 수공예 작가나 지역 명인들의 작품도 발굴해 전시, 판매한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마켓 큐레이션 공간 경기도 용인 '동춘175'에서도 '품절 대란'을 일으킨 '꽁블 커리파우더'.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마켓 제품 365일 만나는 ‘동춘175’
소상공인, 수공예 작가 등이 주축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열리던 프리마켓 형식의 ‘마켓’도 코로나로 ‘일단 멈춤’한 지 1년. 질 좋은 마켓 제품을 1년 내내 상설로 만날 수 있는 마켓 큐레이션 공간도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동춘 175(080-500-0175)는 패션 기업 세정의 오래된 물류 센터를 개조해 만든 복합 생활 쇼핑 공간. 1층 매장 한 코너를 소상공인의 인기 제품과 지역 유명 상품으로 꾸몄다.
지금 가면 부산의 전병 전문 제과점 ‘이대명과’ 전병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인기 아이템인 ‘꽁블 커리 파우더×동춘상회’ 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제품군에 따라 분류하기보다 커리파우더 곁엔 커리 레시피북과 셰프들이 추천한 소스, 조리 그릇을 함께 구성해 쇼핑하기 편리하다. 마켓 큐레이터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인기 제품이나 그동안 마켓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렸던 베스트셀러를 골라 소개하기에 구매 실패 확률도 낮은 편.
세정이 모태(母胎) 동춘상회(東春商會)를 모티프로 만든 한국형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동춘상회’가 직접 발굴한 지역 장인이나 소상공인과 협업한 제품도 눈에 띈다. 마켓 큐레이터가 직접 고른 수입 제품, 동춘상회 자체 제품도 갖춰 놓았다. 설을 앞두고 ‘가성비 높은 선물 세트’인 소백산 벌꿀 세트, 해남 무화과 세트, 금산 홍삼정과 세트 등이 인기라고 한다. 같은 제품이어도 동춘상회에선 감각적 패키지와 이야기를 입고 새로운 선물 세트로 ‘등판’ 한 덕분에 어쩐지 빈손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매장 제품들은 온라인 동춘상회(www.dongchoonmarket.com)에서도 살 수 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
[EDITOR’S PICK]
가평 ‘살롱 드 이터널저니’의 ‘치즈빵’
치즈와 타피오카를 재료로 한 브라질의 국민빵을 ‘살롱 드 이터널저니’에서 맛볼 수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색다른 식감의 치즈빵. 치즈 향이 강하나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 9000원.
‘살롱 드 이터널저니’의 ‘썸머 트뤼플 크림’
짜서 쓰는 치약처럼 생겼지만, 치약은 아니다. 핸드 크림인 것도 같지만, 식료품 코너에 있다. 서머 트뤼플과 올리브 오일, 쌀 전분, 엔초비를 사용해 만든 트뤼플 크림이다. 수프, 리소토, 파스타, 카나페 등을 요리할 때 마지막 과정에 첨가하면 송로버섯 향이 나면서 음식에 풍미를 더해준다. 4만원.
양재 ‘심다’의 ‘필로덴드론’
“반양지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는 얘기에 솔깃. 아파트에 사는 식물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사계절 식물이다. 새잎도 잘 나와 반려식물로 들인다면 키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단다. 단, 영상 15도 정도 유지되는 곳에 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아침에 미지근한 물을 충분히 준다. 6만원.
용인 ‘동춘175’의 ‘이대명과’
‘집콕’ 하면서 전국 팔도 간식을 탐닉하는 재미로 버틴다면 동춘175 마켓 주전부리 코너부터 가볼 것. 하나씩 사서 맛보고 추가 구매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김, 잣 전병 외에 열량 낮춘 간식, 맛을 아는 사람만 먹는다는 ‘정어리 통조림’도 있다. 이대명과 7000~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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