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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값 폭등하는데 땅 투기는 왜 조용할까?

산야초 2021. 2. 19. 21:34

아파트 값 폭등하는데 땅 투기는 왜 조용할까?

[김기훈의 경제TalkTalk]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입력 2021.02.19 13:58 | 수정 2021.02.19 13:58

지난 16일 오후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 전세 등 매물 정보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일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 주간 지수는 118.8을 기록해 전주(118.2)보다 0.6포인트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이 조사를 시작한 2012년 7월 이후 최고 수치다./연합뉴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최대 궁금증은 지난해의 아파트 가격 폭등세가 올해에도 이어질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하기 위해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56)을 찾았다.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과열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추격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박 위원은 이러한 결론보다도 “코로나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 동향을 정확히 예측하려면 정책의 방향성뿐 아니라,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을 좌우하는 3대 트렌드로 ①주력이 된 20~30대 M(밀레니얼)-Z 세대 ②토지-상가보다 아파트 선호 현상 ③스마트폰이 정보 흐름을 주도하는 모바일 스트라이킹(mobile striking)을 꼽았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근처 KB국민은행 자산관리자문센터 내 박 위원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6층에 위치한 센터 복도의 대형 모니터에는 서울 논현동과 영등포 지역의 300억~560억원짜리 빌딩 매물이 소개되고 있었다.

 

박 위원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세계일보와 문화일보 기자, 중앙일보 부동산 담당 기자로 15년 정도 활동한 뒤 2006년 부동산 정보 종합포털인 스피드뱅크의 부동산연구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강원대에서 부동산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이후 2011년부터 KB국민은행에 입사해 10년째 부동산 시장 분석과 고객 상담을 하고 있다.

 

26년째 부동산 연구

―부동산 연구와 인연을 맺은지 얼마나 됐나?

“1995년 부동산 담당 기자 때 처음 시작했으니 올해로 26년째이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보나?

“시중에 넘치는 유동성(자금)이 아파트 가격을 밀어 올리는 유동성 장세 성격이 강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한국은행 등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풀면서 통화량이 급팽창한 결과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도 올해까지 오르면 8년째 상승해 최장기 상승 싸이클을 타게 된다. 이렇게 길게 오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에 풀리는 미국 달러의 양을 결정하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20년 3월 3일 기자회견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유동성 장세는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하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세계 각국이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다. 이 때부터 자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작년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지면서 전세계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작년에 유동성 장세가 가속 패달을 밟았다고 볼 수 있다. 작년말 현재 한국의 통화량이 M2 기준으로 3198조원인데,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0% 정도 상승했다. 이렇게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지금 살얼음판 걷듯이 위험하다는 느낌이다.”

 

올해 아파트 가격은?

―올해에 아파트 가격이 작년보다 더 오를까?

“더 오를지 안오를지는 누구도 모른다. 긍정론자는 서울 아파트 가격의 고점이 2024년이라고 본다. 반면에 비관론자는 올해가 고점이고 이후 하강할 것이라고 본다. 전문가마다 견해 차이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아파트 가격이 머리까지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깨는 지난 듯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올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 보자. 서울 아파트 가격이 8년째 상승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 동안 어느 정도 올랐나?

 

“통계적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본격적인 상승 사이클로 접어든 때가 2014년이다. 그러니 올해까지 오른다면 8년째 상승세이다. 그동안 집값이 2~3배로 올랐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6000만원에 이른다.”

 

 

―토지는?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과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은 시행 양식이 비슷하다. 처음에는 세금을 중과해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가 나중에는 공급 확대책으로 전환했다. 유동성이 넘쳐 집값이 부풀려진 것도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특이한 것은 그 때와 달리 지금은 토지 투기가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주택 뿐 아니라 전국에 토지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노 대통령이 2005년 7월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조선일보 DB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토지 투기가 심했나?

“그 당시 기억을 되돌이켜 보면 전국적으로 유동성이 넘치면서 용인-당진-서산-세종-파주 등에서 토지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강남 재건축도 극성이었지만 토지 부문에서 더 광풍이 불었다. 그래서 정부가 토지투기지역을 지정해 양도세 중과 조치를 썼는데도 효과가 없었다. 막판에 토지를 매입 목적대로 이용해야만 하는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지정해 그 땅에 살지 않는 부재지주의 농지 매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이게 압박 요인이 되어서 땅값 폭등이 잡혔다.”

―지금은?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2월 통화량(M2)이 883조원이었다. 작년말 3198조원이니 3배나 더 늘었다. 이렇게 통화량이 늘었는데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지금은 서울 교외나 지방의 땅 투기 보도가 거의 없지 않은가? 오히려 베이비붐 세대가 경기나 강원 일대에 사놓았던 전원주택 부지가 안팔려 고생을 하고 있다.”

 

국내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코로나 이후 부동산 시장 3대 ‘뉴 노멀’①

:주택 시장 주력이 된 M-Z세대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땅 투기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공간 소비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부동산시장 핵심 수요층은 도심 지향적인 공간 소비를 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경험치에 따라 현재의 소비를 한다. 자기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공간은 안전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950~19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나 1964~1979년에 태어난 X세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자라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 논밭이나 산에 친숙했으니 돈을 번 뒤에 이처럼 친숙하고 익숙한 부동산, 즉 교외 토지를 좋아했다. 이들은 아파트도 사고 단독주택도 사고 상가도 샀다. 부동산 수요가 분산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20~30대, 즉 밀레니얼 세대(1980~1994년 출생)와 Z세대(1995~2004년 출생)는 도심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세대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부동산을 아파트와 동일시한다. 이른바 ‘도심 콘크리트 세대' ‘도심 아파트 키즈’이다. 이들에게 토지나 다세대 주택이나 단독주택은 익숙하지 않다. 반면,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매우 강해 아파트 편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맞벌이와 부부 공동육아를 중시하기 때문에 출퇴근과 생활이 편리한 도심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조선일보 DB

 

―전체 부동산 거래에서 M-Z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

“2019년 전체 서울 지역 아파트 구매자의 33%가 30대 이하였다. 2020년 하반기에는 이 비중이 41%였다. 지난해 아파트 패닉 바잉(panic buying, 마구 사들이는 현상)의 주력은 30대 이하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30대 이하가 작년에 왜 패닉 바잉했다고 보나?

“집값이 더 오르면 영원히 집을 보유하지 못할 것 같은 초조감과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에 신축 분양 아파트의 가점 청약제도가 30대 이하에게 불리하니 청약보다는 기존 아파트를 사려고 했다.”

 

30대의 아파트 패닉 바잉

―30대와 20대 이하를 좀 더 세분해 물어 보자. 30대 밀레니얼 세대들이 주택 시장에 대거 진출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6년이나 2017년쯤이라고 봐야 한다. 30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인데 2012년에 부모들이 대출을 잔뜩 끼고 집을 샀다가 집값이 하락하면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사면 망한다고 생각해서 집을 살 생각이 없었다. 대신에 운동화 수집이나 자동차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이들이 몇 년 뒤 갑자기 아파트에 욕망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들은 한창 분가하고 독립하려는 나이이다. 그러니 집이 필요하기는 하다. 문제는 심리적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점이다. 안정될 줄 알았던 집값이 계속 오르니 ‘미리 사두지 않으면 평생 집을 사지 못할 수 있다’는 초조감이 작용한 것 같다. 4~5년 뒤에 집을 사도 될 수요자들까지 불안감에 선취매를 하는 바람에 시장에 병목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아파트 시장에서 30대가 가장 큰 수요층으로 부상한 셈인데, 시장 흐름이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노원구 아파트 가격이 21% 넘게 올랐다. 서울 구별로 보면 상승률이 가장 높다. 30대들의 주택 구입 열풍이 빚은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중저가 아파트를 많이 찾은데다 세금 부담이나 대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임대차 3법 시행에 따른 전세난도 한몫했다.”

 

학원가가 밀집한 서울 노원구 아파트 가격이 젊은층 수요가 몰리며 최근 서울 지역 아파트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사진은 최근 15억7000만원에 거래된 전용면적 115㎡ 노원구 청구라이프 아파트./연합뉴스

 

―10대와 20대의 아파트 거래량은?

“20대 이하가 작년 10월 서울 전체 거래량의 5.4%를 차지했다. 10~20대는 여전히 부모 슬하에 있지 않나? 이들 명의로 집을 이처럼 많이 사들였다는 것은 불안심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부모들이 걱정이 돼서 미리 사준 것이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 시장 3대 ‘뉴 노멀’②

:토지보다 아파트 선호

―부동산 시장의 주력 세대가 된 30대 이하, 즉 M-Z세대의 특징은?

“다른 세대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높고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 인터넷과 함께 자라서 정보 습득력이 좋다. 집단보다는 개인주의 가치에 충실하다. 그러다 보니 재테크 아이큐가 높다.

 

나는 이들을 ‘게임 세대’라고 본다. 아파트 투자도 머니 게임처럼 한다. 그러니 규격화되고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부동산, 즉 아파트를 선호한다. 토지나 상가는 개발 가치나 유동인구 흐름 등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만큼 연구를 안해도 TV 홈쇼핑에서 상품을 사듯이 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접근 용이성 때문에 아파트는 초보자도 쉽게 뛰어들 수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확대된 것도 아파트 선호 현상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1960년대 중반~1970년대에 태어난 X세대는 외벌이가 주류였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결혼해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러니 부부가 퇴근 후에 아이를 봐야 한다. 퇴근 후에 빨리 집에 와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기능주의적 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가 편하다. 더구나 단독 주택은 관리도 어렵지 않은가?

 

2017년 통계를 보니 20대 여성 취업률이 59%, 남성이 55%였다. 20대 여성 취업률이 남성보다 더 높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자기 정체성과 자기 발전을 중요시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도심의 새 아파트를 인생의 로망으로 생각한다. 1970년대에 젊은이들의 로망은 정원이 딸린 빨간 지붕의 양옥 주택이었다. 지금은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사는 것이 젊은이들의 꿈이다. 욕망의 코드가 다른 것이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은 도심 아파트 선호도를 높이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사진은 여성 검사들의 임용식 모습./조선일보 DB

 

―재건축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는 것도 이러한 욕구 변화와 관련이 되나?

“M-Z세대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욜로(You Only Live Once)에 가까울 만큼 현재주의적 소비 경향이 강하다. 미래의 투자가치보다는 현재의 소비욕구 충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전에 X세대들은 낡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다가 나중에 재건축으로 재산이 불어나는 재테크 방식을 선호했다. 몸이 고달파도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몸테크’이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이러한 방식의 재테크에 익숙하지 않다. 새 아파트를 선호한다. 지방에서는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오래된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 가격이 더 많이 올랐다. 새 아파트에 올인하는 구조라고나 할까? M-Z세대는 X세대나 베이비붐 세대보다 세대 숫자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아파트를 유독 좋아해 아파트 가격만 오르고 있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 시장 3대 ‘뉴 노멀’③

:모바일 스트라이킹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등장한 M-Z세대의 특징과 이로 인해 생긴 아파트 선호 현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다. 이제 세번째 트렌드인 스마트폰의 위력에 대해 물어볼 차례이다.

 

―부동산 시장에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비자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는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만 해도 PC 인터넷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부동산 시장 흐름이 전광석화처럼 빨라졌다. 축구선수인 손흥민을 모바일 스트라이커라고 한다. 기동력있는 공격수라는 말이다. 시속 43.3km로 빨리 뛰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이런 비유를 쓴다면 부동산 시장에도 모바일 스트라이킹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프로축구선수 손흥민은 빠른 경기 진행 속도 때문에 모바일 시대의 스피드를 상징한다./토트넘 구단 SNS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있나?

“어느 지역의 집값이 싸다, 어느 지역의 집값이 오른다고 하더라 하는 정보가 온라인 카페나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유포되면서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달아오른다. 군집행동이 유난히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 과거 시장보다 지능이 높아졌다. 집단지성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아이큐가 106이면 시장의 아이큐는 3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시장은 때로 공포와 광기를 반복하는 변동성이 있지만, 과거와 달리 정보의 접근성이 확대되고 고학력 졸업자들이 많아지면서 시장이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AI(인공지능)처럼 자체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하는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실린 일부 글은 전문가들의 연구보고서를 뺨칠 수준이다. 그것을 보면서 2~3개월만 연구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 세상이 왔다.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전문가 전당’이 무너졌다. ‘발품’이 아니라 ‘손품’만 조금 들이면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빠른 부동산 시장 동향과 매물 정보를 제공해 모바일 시대 새로운 부동산 거래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는 '직방'의 앱 화면.

 

―부동산 가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마트폰이 삶의 일부가 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가 되면서 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기존 오프라인 상권이 급속히 위축될 전망이다. 은퇴자들은 은퇴 후 작은 상가를 사서 월세를 따바따박 받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노후 구상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하면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시장이 발빠르게 움직이므로 정책의 발표와 시행간의 시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시장이 불안할 때는 정책도 매우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부와 시장간의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보내는 신호를 시장이 굴절시키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려면 상호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취임 초기에 세금 중과를 통해 부동산 수요 억제책을 쓰다가 부동산 가격이 여전히 오르자 최근 공급 확대책을 내놓은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18일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주사기 생산시설을 방문해 발언하는 모습./연합뉴스

 

―지난번에 발표한 ‘2·4 공급대책’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전국적으로 83만가구, 서울 32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하에 2025년까지 부지를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시장에 공급을 늘릴테니 집을 사지 말라는 신호를 강하게 보낸 셈이다. 계획대로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되려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한다.”

 

코로나 사태와 아파트 가격

―앞으로 주택시장의 추세는?

“M-Z세대의 공간소비 욕망코드를 감안할 때 아파트가 대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값은 찜질방과 수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 즉 커뮤니티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국 중칭에 가 봤는데 온통 아파트 뿐이었다. 서울보다 중칭이 더 아파트 공화국 같았다.”

 

―코로나 사태가 아파트 선호 현상을 더 부추겼나?

“코로나 사태 때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았던 단어가 집이다. 아파트는 이 안에서 홈오피스, 홈인테리어, 홈술, 홈카페가 모두 이뤄진다. 또 주변 편의시설로 찜질방, 헬스장,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것이 모두 가능한 콘크리트 성(concrete castle)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밖에 없다.

 

아파트는 또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에게 간단한 가치저장 수단이다. 가사노동의 동선을 짧게 만드는 압축 공간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모든 기능을 갖춘 고급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재택 근무 확산으로 주택, 특히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더 증가시켰다. 사진은 지난 18일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코로나 검사가 진행중인 모습./뉴시스

 

―마치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 값으로 사람들의 삶을 줄세우기 하는 아파트 계급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가 종교처럼 되어 버렸다. 아파트교(敎) 신도들이 너무 많다. 큰 문제이다.”

 

지금이라도 아파트 사야 하나?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가 대세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 같다. 다만 가격이 지금 너무 올랐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주거패턴의 대세가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거품 가격에 사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효과적인 매수 전략을 추천하면?

“올해 전세난이 진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중저가 아파트는 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다만 단기 급등했던 지역은 조심해야 한다. 고가 아파트는 양도세 인상을 피하려는 다주택자 매물이, 쏟아질 정도는 아니더라도, 3~4월에 나올 것이다. 실수요자만 급매물 중심으로 관심을 갖는 게 좋다.

 

지금 집을 사는 사람은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감내하겠다는 마음의 완충 장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퇴직자들은 빚 내서 무리하게 집을 사서는 안된다. 향후 15년 이상 직장생활할 사람들이라면 빚을 갚을 소득이 있으니 중저가 아파트쪽을 노려볼 만하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의 아파트는 어떤 거래 추이를 보일까?

“지방은 인구가 줄고 지역경제도 튼실하지 않아서 집값이 오르겠냐는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 지방은 지역마다 가격 상승이 울퉁불퉁한데, 대구-부산-대전-울산-세종 등지의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가 10억~15억원씩 가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는 단독주택의 부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학군 좋고 조망이 좋은 지역의 새 아파트촌이 신흥 부촌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정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초슬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지방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로 거론되는 부산 수영구의 삼익비치타운. 가격이 15억원에 육박한다./네이버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변화하는 트렌드를 잘 따라가면서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정보전달 속도가 워낙 빨라서 트렌드를 빨리 포착하고 따라가는 기민성이 자산관리의 핵심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시계가 4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박 위원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 할 시간이다. 박 위원은 인터뷰 중간에 간간히 폭등한 아파트 가격의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 환경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뀔 때 생길 영향을 마지막 질문으로 골랐다.

 

―인터뷰를 처음 시작할 때 지금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로 시장 유동성 증가에 따른 결과라고 했다. 만약 미국에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생기면서 금리 정상화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 부동산 가격이 어떤 영향을 받을까?

 

“나는 올해 집값 상승세를 상고하저로 본다. 상반기에는 소폭 상승하고 하반기에는 그 상승세가 더 둔화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본 이유는 연말로 갈수록 금리 정상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이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금리 정상화가 현실화되면 금융시장에 작은 발작과 경련들이 일어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는 안올리더라도 시장 금리는 올라갈 수 있다. 유동성 세례를 받은 부동산 시장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리 상승은 부동산 가격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부동산 시장의 주력이 된 30대, 특히 영혼까지 끌어들여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크게 보면 지금 부동산 시장은 과열(overshooting) 상태이다. 30대들은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번도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우하향, 즉 폭락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끌’ ‘용대리(용감한 대리)’ 같은 맹목적인 매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하우스 푸어를 경험해 본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M-Z세대가 물가에 내놓은 송아지처럼 겁이 난다.

 

풍수지리에 산고곡심(山高谷深)이라는 말이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뜻이다. 집값은 항상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릴 때도 있다. 하반기, 적어도 내년으로 갈수록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 기성세대가 겪은 하우스 푸어나 깡통 주택이 사회 이슈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을지로 사무실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코로나 사태 이후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기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