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16) 콩국수
내 맘대로 고른 콩국수 맛집 best 4
글 : 김효정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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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후회되는 건 엄마랑 여행 한 번 못 가본 거야. 너는 어머니랑 둘이서 훌쩍 여행을 다녀와 보렴.”
그리고 바로 찾아온 겨울, 엄마랑 여행을 떠났다. 도시에서 가장 비싸다는 고급 호텔에 값나가는 맛집의 코스 요리까지 대접 받은 엄마는 마냥 행복해했다. 그리고 엄마는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남편이 교대하듯 내 곁으로 와 남은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국제공항에서 처음 유치원을 보내는 부모마냥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엄마를 배웅하는데 마침 공항 환송구가 유리로 돼 있어 마지막까지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알려준 대로 표를 건네 출국 게이트로 들어서고, 짐 검사를 하고, 면세점 가득한 곳으로 이동하는 엄마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키 작은 엄마의 머리카락을 좇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뒤통수를 배웅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어차피 한국에서 금세 또 만날 건데 왜 그리 울음이 나는지, 한 외국인이 다가와 “가족과 헤어졌느냐”며 손수건을 건네줄 정도였다.
엄마와의 여행을 마치고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건 시어머니 댁이었다. 여행 다녀오라는 얘기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눈물 젖은 여행이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되레 눈물을 흘렸다. 두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한참을 침묵했다.
광고덕후 이야기 대신 두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어떤 ‘덕질’의 원형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맛난 것만 찾아다니는 미식 덕후로 이 음식, 저 음식 찬양했지만 사실 내 미식의 원형에는 ‘콩’이 있다.
엄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매일 아침 삶은 콩을 우유와 함께 갈아 두유를 만들어 식탁 위에 올리곤 했다. 콩 비린내가 싫어 안 먹으려는 자식들을 쫓아다니며 콩이 몸에 좋다고 한 잔만 마시라고 투닥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시어머니는 여름만 되면 콩을 삶아 콩국물을 만들곤 했다. 엄마 콩국수 아니면 입맛에 안 맞는다는 아들, 며느리 주겠노라며 콩 한 자루를 사서 일일이 콩 껍질을 깠다.
이제는 두 분 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콩 삶는 일도 힘들뿐더러 매번 삶아달라고 말하기도 뭐한 상황이라 우리 부부는 여름이면 늘 ‘콩국물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두 분의 콩국물 스타일은 조금 다른데, 엄마의 것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맛자랑’과 흡사한 맛이고 시어머니의 것은 서울 중구 ‘진주회관’의 맛과 비슷하다. 간혹 갈증이 깊어질 때면 두 곳을 찾아 급한 대로 후루룩 국수를 먹곤 하지만, 사실 가장 맛있는 건 두 어머니의 콩국물이다. 그건 확실하다. 어느 맛집도 두 어머니의 콩국물을 따라올 곳이 없다.
진주회관
이보다 더 고소하고 진득할 수 없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26 / 02-753-5388
별다른 고명 없이 콩국물에 국수 면이 달랑 얹어져 나온다. 슴슴하게 간이 돼 있는 콩국물은 젓가락에 묻어 나올 정도로 진득하다. 고소한 맛에 간이 짭짤한 것이 조화롭다. 강원도에서 직접 재배한 황태를 우린 육수에 갈아 냈다는 콩국물은 다른 세 곳과 비교하면 농도가 가장 짙다. 면은 쫄깃하다. 땅콩가루를 섞어 만들었다는데 쫄깃함이 남다르다. 굵기도 소면에 비해 굵어 식감이 좋다. 콩국물을 잔뜩 묻혀 후루룩 먹으면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포만감이 만족스럽다. 곁들여 나오는 김치가 제일 맛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김치도 맛있다. 다만 좀 비싸다. 8월 현재 콩국수 한 그릇에 1만 2000원이다.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에 후다닥 먹고 자리를 떠야 한다. 맛을 즐기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님에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건, 그야말로 맛 때문이다. 이만큼 진하고 고소한 콩국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피양콩할마니
‘빕 구르망’에 꼽힌 맛집, 푸짐한 반찬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로81길 30 / 02-508-0476
《미쉐린 가이드》에서 저렴하지만 가볼 만한 맛집 ‘빕 구르망’으로 꼽힌 음식점이다. 원래 콩국수보다 두부와 콩비지로 이름이 알려진 곳인데 여름에는 콩국수 맛집으로 더 유명하다. 콩국수를 시켜도 마치 콩비지찌개를 먹을 때처럼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지는데, 게장이 나오기도 한다. 콩국물은 묽은 듯 진하다. 진주회관이나 맛자랑에 비하면 묽지만 콩을 갈아 낸 입자가 면에 충분히 묻어 나올 정도로 진한 농도다. 고소한 맛이 유독 강한데 깨를 갈아 넣은 듯한 향과 맛이 난다. 소면은 투명하고 쫄깃하다. 기계로 여러 번 반죽해서 쫄깃함이 강하다. 실내는 좁고 허름하지만, 구석구석 식탁이 놓여 있어 보기보다 좌석이 많다. 평양에서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관록만큼이나 낡은 풍경들이 정겹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 식사 시간이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다.
맛자랑
생크림처럼 부드러워라~ 백태 반, 왕태 반!
서울 강남구 도곡로87길 7 / 02-563-9646
콩국물의 부드러운 질감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곳 콩국물이 생크림 혹은 두유 같다고 하는데 맛 또한 그렇다. 맷돌 기계로 곱게 갈아 냈다는데 백태와 왕태를 반반씩 섞어 고소하지만 순한 맛이다. 진주회관과 달리 설탕을 섞어 달달한 맛이 강하다. 경상도 쪽 콩국수가 짭짤하면서 고소하다면, 전라도는 달달하면서 고소한 맛이라고 한다. 그릇의 색감도 다채롭다. 토마토를 고명으로 올리는데, 의외로 콩국물과 잘 어울린다. 면은 메밀면을 사용한다. 메밀 함량이 높지는 않아 쫄깃한 맛이 강하다. 부드러운 콩국물과 고소한 메밀면이 조화롭다. 김치는 살짝 익은 겉절이 느낌이라 입가심을 하기에 좋다. 발렛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도 좋다. 깔끔한 실내에 테이블 간격도 넓어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은 편이다. 콩국수 외에 비빔국수, 칼국수도 있다.
아차산할아버지손두부
옛 콩국수 맛을 단돈 5000원에
서울 광진구 자양로 328 / 02-447-6540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모시고 시골 장터에서 먹던 옛 콩국수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아차산할아버지 가게를 추천한다. 이곳에서는 5000원이면 먹을 수 있다. 원래는 손두부집으로 유명하다. 아차산 등산길 끝자락에 있어 주말이면 막걸리에 두부 한 접시 먹으려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콩국수는 전통적이다. 묽은 콩국물에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면 역시 평범한 소면이고, 달걀과 오이가 고명으로 올라오는 별다를 것 없는 콩국수인데, 맛있다. 편하게 먹기 좋은 데다가 100% 콩만 사용해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가격에 이 정도 질의 콩국수를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왕 손두부집에 갔으니 옆 테이블 등산객들처럼 모두부 한 판을 시켜도 좋다. 두부 한 모에 5000원이다. 갓 만들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에 직접 만든 새우젓 소스를 얹어 먹으면 속도 한결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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