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동안 오트밀 먹고 하루 3시간 자며 366km 걸었다 - 조선일보 (chosun.com)
5일동안 오트밀 먹고 하루 3시간 자며 366km 걸었다
하이커 이하늘씨가 7월 19일 오전 미국 존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JMT) 전 구간(366km)을 124시간 14분만에 완주한 가운데, 미국에 있는 이하늘씨에게 궁금한 내용에 관해 질문하고 답변을 얻었다.
출발 일시와 종료 일시는?
2022년 7월 14일 아침 6시 15분에 휘트니 포탈(whitney portal) 에서 시작해 7월 19일 오전 10시 29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요세미티밸리 내 해피 아일(Happy isles) 에서 종료, 124시간 14분만에 완주했다. 엄연히 말하자면 JMT는 마운트 휘트니부터 해피아일까지인데 마운트 휘트니에 오르기 위한 트레일헤드(초입부)인 휘트니포탈부터 시작해야했다. JMT만 따진다면 7월 14일 아침 11시 30분 시작, 7월 19일 아침 10시 29분에 종료하여 118시간 59분이 걸렸다.
왜 이런 도전을 하게 됐나
미국의 3대 장거리트레일인 PCT, CDT, AT를 걸으며 만난 하이커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FKT(Fastest Known Time)라는 문화였다. 이는 특정 트레일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완주하는 기록문화로 속도경쟁은 아니다. 장거리하이킹 문화와는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하이킹 문화라고 여겼다.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다른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PCT(Pacific Crest Trail)중에서도 정말 좋아하고 많은 추억이 있는 존 뮤어 트레일 구간에서 이런 경험을 언젠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무지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간 보급 없이 출발 때 가져간 식량만으로 한 번에 종주를 마쳤나. 남편 양희종 씨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무지원’은 말그대로 트레일 위에서 어떤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트레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필요한 식량을 비롯한 모든 짐을 가지고 가야했다. 현재 FKT를 관리하고 FKT문화 조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미국 FKT사이트에서는 무지원(unsupported)방식에 대한 정의에서는 자연에서 흐르는 물 이외에는 모든 짐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으로, 물이나 음료수를 사먹는 것 혹은 공짜 물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받는 것도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 내용을 지켰다. 남편은 저의 든든한 지원 역할을 해주었다. 제가 트레일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트레일 퍼밋 발급과 전반적인 스케쥴의 행정적인 부분을 맡았다. 도전 전 약 2주동안 존뮤어 트레일 300km 구간(휘트니 포탈-레즈 메도우)을 함께 답사하며 트레이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도전을 시작하고는 존 뮤어 트레일의 대부분 구간에서는 통신신호가 없었다. 저는 휴대용 위성통신장치를 소지하고 다녔는데 기기가 알려주는 제 위치를 계속 파악하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했다. 가장 가까운 트레일 헤드로 옮겨다니며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이를 SNS을 통해 실시간 중계하기도 했다.
운행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 하루 운행 길이(km)는 어떻게 되나
운행을 시작하고 종료하는 시간은 매일 달랐지만 평균적으로 새벽 3시에 시작해 밤 11시정도에 마무리했다. 매일 하이킹 하는 거리도 달랐지만 매일 평균 65km정도씩 이동했다.
하루에 잠은 몇 시간 잤나
평균적으로 3시간 가량 잤다.
가져간 장비의 종류와 총 무게는 어떻게 되나
경량침낭, 슬리핑패드, 텐트, 하이킹폴, 전자제품(헤드램프, 고프로, 여분배터리 및 휴대용충전기 등), 보온의류, 정수필터 등 최대한 간단히 꾸리려 노력했다. 존뮤어 트레일 구간은 곰통(bear canister)을 필수로 지참하고 다녀야하고, 식량을 비롯한 냄새나는 모든 물품들을 곰통에 보관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요, 곰통의 무게와 식량의 무게가 전체 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곰통은 크기 및 무게가 다양한데 저의 경우 800g짜리를 사용했다. 트레일을 출발하기 전 모든 것을 패킹한 채 측정했을 때의 무게는 21파운드(약 9kg)였다.
텐트를 가져가서 야영하는 방식으로 종주를 했나
짐을 패킹하면서 끝까지 고민했던 것이 텐트였다. 짐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려 노력했는데 일반적인 장거리하이킹 때처럼 텐트에서 생활할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했지만 보다 나은 수면을 위해 텐트를 챙겼다. 이는 결국 신의 한수가 됐다. 내내 날씨가 좋을 거라는 일기예보와 다르게 매일 오후 스톰이 몰려와 비를 피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밤에 잘 때는 텐트를 설치했지만 잠시 낮잠을 잘때는 텐트없이 자기도 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했나? 세끼 구성은 어떻게
식사는 모두 비화식으로 계획했다. 화기자체를 챙기지 않았다. 화기 및 조리도구 등의 무게를 줄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음식을 가열 및 조리해서 먹는데 시간을 사용하기 보다는 걷는 시간을 더 확보해야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오버나이트오트밀(오트밀믹스를 미리 물에 불려두는 방법)에 땅콩버터를 같이 먹었는데 이때는 일부러 풍경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계곡물에 다리 아이싱을 하면서 먹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 외 끼니는 대부분 간단한 에너지바나 리커버리파우더 등을 먹었고 4시간 간격으로 에너지원을 보충하는 것으로 사전 식단을 준비해갔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방식을 사용했나
전체 구간에서 에너지를 고루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주가 진행될 수록 힘이 들 것이 분명하기에 초반 에너지가 넘칠 때 오버페이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치거나 (소위 말해) 퍼지지않고 꾸준히 적절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몸의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더불어 전체 시간에서 결국 하이킹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휴식과 수면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회복에 필요한 만큼만 자려고 노력했고 하이킹 도중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휴식하려고 애썼다. 식단과 짐패킹 방식 역시 이에 맞춰 준비했다. 패스트패킹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패킹 무게를 줄여 좀더 길게, 빠르게 하이킹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신경썼다. 평소 일반적인 장거리하이킹 때 챙겼던 것이어도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패킹에서 제외했고, 의약품, 휴지, 배터리 등도 정말 필수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챙겼다. 또한 가벼운 침낭, 비자립 및 타프형식의 텐트 등 필요한 물품들에서도 무게의 효율성을 위해 고민했다. 짐패킹에서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한 식량의 경우도 효율적으로 챙기려 많이 노력했는데 칼로리와 성분 등을 비교해 무게 대비 효율적인 아이템을 준비하려고 했다. 동시에 식량에서는 ‘킥아이템’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정말 힘들 때 먹고 힘낼 수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마치 뽀빠이에게 시금치같은 아이템이랄까. 이는 무게 대비 효율이나 에너지 효율은 조금 떨어져도 심적 만족도를 높여줘 조금 더 나아가게끔 만들어줬다.
운행 기록, GPS 파일은 무엇으로 생성했나
가민 스마트워치를 사용해서 트레일 시작점부터 끝지점까지 GPS기록을 할 수 있었다.
평균 속도와 페이스는 어떻게 되나
평균 12:22/km로 하이킹했다고 분석된다.
이번 도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수가 가장 어려웠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내내 날씨가 좋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7월의 시에라는 매일 오후가 되면 스톰이 몰려왔다. 단지 소나기정도면 감수하고 계속 하이킹을 이어갔겠지만 폭우가 내리기도 하고 엄지 손톱만한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다. 하루에 목표했던 거리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아쉬워하면서 텐트를 설치해 비를 피해야했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시에라의 엄청난 모기떼도 힘들었다. 무더위도 꽤나 극성이었는데 타들어갈 듯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다가 새벽과 밤에는 기온이 제법 떨어지니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귀를 잘 기울어야 했다.
어떻게 훈련했나
매일 꾸준히 러닝과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체력을 키웠다. 결국은 지구력 싸움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러닝이나 트레일러닝훈련을 할 때 페이스를 높여 훈련하기 보다는 지구력을 키우기위한 장거리훈련을 자주 했다. ‘청광종주’, ‘성남누비길’ 등에서 주기적으로 장거리하이킹과 패스트패킹 훈련을 진행했다. 이런 훈련시간을 통해 체력적인 부분을 키우는 것 외에도 존뮤어 트레일 위에서 식단으로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비화식으로 구성해도 괜찮은지 등을 미리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기록의 의미는 뭔가
이번 기록은 JMT의 FKT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도전 자체는 단지 124시간 14분 58초라는 숫자를 넘어서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3-4년 전, 존 뮤어 트레일을 홀로, 무지원으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는데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더불어 이번 도전을 하면서 1차 목표로는 완주, 2차 목표로는 125시간내에 완주라는 소소한 개인 목표를 세웠었는데 제가 세운 목표들을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 자체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인 하이커로써 세계 무대를 향해 도전 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기록을 통해 앞으로 많은 한국인 하이커들이 세계의 다양한 트레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이번 도전은 트레일러닝이라고 봐도 될까 아니면 패스트 패킹인가. 둘 중 어느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이라고 하면 될까. 또 앞서 말한 방식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또 자신을 트레일러너라고 굳이 언급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
트레일러너라고 굳이 언급을 안 하기보다는 제가 주로 하고 있는 것이 장거리하이킹, 패스트패킹이기 때문에 저 스스로를 ‘장거리하이커’라고 이야기한다. 이전의 두 차례 ‘고솔로백두대간’ 때도 그랬고 이번 ‘고솔로JMT’도 트레일 위에서 대부분 조금은 빠르게 꾸준히 하이킹을 한 것이지 산 위에서 달리기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장거리하이킹 혹은 패스트패킹을 하는 장거리하이커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동시에 저는 산에서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하는 트레일러너이기도 하다. 아직 트레일러너로써의 도전을 마주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 트레일러너다운 도전을 한다면 그때는 스스로를 트레일러너라고 소개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할 계획인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할 계획인가.
세상은 넓고 재미난 것은 많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게 된다. 아직까지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자신을 깨우고 스스로를 이겨내는 도전거리를 찾고 도전하지 않을까싶다. 3~4년전, 고솔로JMT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2~3번정도 JMT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다. 이번에 125시간이라면 단 1시간이라도 점차 조금씩 저 스스로의 기록을 깨고 나가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 과거의 나를 이겨내고 성장해나가는 것이랄까? 또 남편 양희종과 함께 ‘두두부부’로서의 도전도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장거리하이킹을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많이 가지곤 하는데 한국 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트레일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통해 영감받고 도전을 이어가듯 다른 누군가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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