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비를 얹은 댓잎국수에서 겨울 대숲의 바람 소리를 들었다
[아무튼, 주말]
[양세욱의 호모 코쿠엔스]
전남 담양 ‘담양앞집’
전남 담양에는 대나무가 지천이다. 죽녹원이나 대나무골테마공원 같은 관광지를 품 들여 찾지 않아도 사방에서 대숲을 만날 수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겨울 대숲에서 마른 댓잎들이 맨살을 비벼 대는 소리는 숫돌에 칼 가는 소리를 닮았다.
한국대나무박물관도 죽향(竹鄕) 담양에 있다. 대숲 사이로 길게 뻗은 박물관 야외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왕대, 오죽, 금죽, 천죽, 분죽, 수죽, 맹종죽, 포대죽, 해장죽, 백협죽, 한산죽, 금양옥죽, 화포계죽 같은 세계 여러 대나무 품종들을 만날 수 있다. ‘담양앞집’은 한국대나무박물관 건너에 있다. 박물관 바로 앞이라 식당 이름이 담양앞집이다. 2004년에 ‘박물관앞집’으로 시작했다가 몇 해 전 새로 단장하면서 지금의 상호로 변경했다.
대나무를 활용한 죽통밥, 죽순 요리만큼이나 흔한 담양 음식이 떡갈비다. 떡갈비는 소나 돼지 갈빗살을 저미고 각종 채소와 양념을 더해 구워낸 음식이다. 모양과 식감이 떡을 닮아 떡갈비다. 잡고기를 섞지 않고 참숯 향이 진하게 배야 제대로 된 떡갈비다. 궁중음식으로 출발한 떡갈비는 낙향한 양반들에 의해 담양으로 전해졌다. 소쇄원,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환벽당처럼 담양에 산재한 숱한 누와 정이 일러주듯, 담양은 이름난 별서이자 유배지였다. 담양앞집의 한돈떡갈비(2인 2만3000원), 한우떡갈비(3만7000원), 반반떡갈비(3만1000원)에서는 숯불 향이 진동한다.
담양 읍내를 흐르는 영산강 제방을 따라 조성된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을 거닐어보지 않았다면 담양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1번 나무 음나무부터 177번 나무 팽나무까지 아름드리 노거수가 양편에 늘어선 호젓한 산책로는 국수거리로 이어진다. 멸치국수와 비빔국수에 이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국수가 댓잎 가루를 섞어 뽑은 댓잎국수다. 담양앞집의 댓잎비빔국수, 앞집평양냉면, 죽순비빔국수는 메밀과 댓잎 가루를 섞어 직접 뽑아낸 국수를 쓴다.
담양앞집의 대표 메뉴인 매운떡갈비국수(1만7000원)는 댓잎국수 위에 숯불 떡갈비 세 조각과 죽순 나물, 지단을 고명으로 얹고, 버섯, 오이, 연근, 무, 파 같은 야채와 들깻가루, 김가루 등 각종 양념을 더해 비벼 먹는 국수다. 고추기름으로 맵기를 조절하고, 다시마식초로 감칠맛을 가미할 수 있다. 담양을 대표하는 세 가지 음식인 댓잎 국수, 숯불 떡갈비, 죽순 나물이 이 한 그릇에 모두 모였다.
골고루 비벼진 국수와 떡갈비를 한입에 넣으면 메밀, 댓잎, 들깨가 입안에서 고소함의 향연을 펼치고, 어느새 포만감이 밀려온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탄수화물 과잉 걱정에 고민을 거듭하다가도 매번 국수의 치명적인 유혹에 무너지고 마는 스스로가 원망스럽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다. 과하지 않은 양념으로 슴슴하게 조리하여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도 담양앞집의 미덕이다. 이 매운떡갈비국수 한 그릇으로 담양의 맛을 대충 알겠노라고 허풍을 떨어도 반박이 쉽지 않다.
담양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죽순바삭만두’를 위한 위는 따로 남겨두어야 한다. 봄날 담양에서 채취한 햇죽순과 떡갈비, 새우를 넣은 춘권을 댓잎과 메밀가루를 섞어 뽑아낸 댓잎메밀면으로 둘둘 말아 튀겨낸 바삭한 만두다. 담양 한우로 우려낸 진한 곰탕에 밥과 댓잎메밀면을 말아 먹는 ‘탕반면’, 한우 육회를 푸짐하게 얹고 죽순, 아보카도, 연어알 등과 함께 비벼 먹는 육회비빔밥인 ‘담양육반’도 훌륭한 선택이다. 반주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댓잎과 솔잎으로 담근 약주인 대잎술이나 죽도도가에서 주조한 대대포막걸리, 담주브로이의 수제맥주를 곁들여도 좋다. 모두 담양에 있는 술도가들이 빚어낸 개성 넘치는 술이다.
위장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까지 달래고 싶다면 음악 카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을 찾을 일이다. 방송사 아나운서인 디제이가 손님들의 신청곡을 받아 LP로 음악을 들려주는 ‘담양LP음악충전소’, 실내에 파이프오르간을 갖추고 주말마다 연주를 들려주는 ‘담빛예술창고’가 담양앞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각각 청소년수련관과 곡물 창고를 새롭게 단장한 핫플이다. 물론 대숲에 멍하니 앉아 대자연의 음악에 귀를 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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