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號를 보면 인생이 보인다
현대 한국인은 대부분 태어날 때 지은 이름(名) 하나로 평생을 살아간다. 모두 자신 이름에 만족할까. 500년을 이어 온 조선의 선비들은 최소한 셋 이상의 호칭을 지니고 있었다.
풍류와 품격이 담긴 멋들어진 이름들이 많았다. 부모와 스승이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처음 만나는 이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름도 있었다.
친한 친구끼리 부르는 이름 또한 가지고 있었다. 명(名)과 자(字), 호(號)가 그것들이다.이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게 호다. 명과 자는 부모나 스승이 지어줘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어 부를 수 있었다.
명과 자가 처음부터 타고난 운명이라면 호는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이 담긴 개성적인 삶의 표현이었다. 이를테면 호는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었다
이들 선비는 세상에 초연하고자 했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을 호에 담아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 한정주는 각종 문헌을 비교해보니 삼각산 삼봉, 즉 오늘날의 북한산을 가리켜 삼봉으로 지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여유당’이라고 지었다. 몰락한 남인 출신으로 정조가 아꼈던 재사 정약용은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자 노론 수구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스스로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내걸어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숙청의 피바람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론의 칼바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신유사옥이라 불리는 정치적 탄압으로 300여명이 처형됐다. 정약용은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유배지로 쫓겨났다. 여유당은 조선 당파싸움을 드러내는 호였다.
‘다산’이라는 호는 차를 즐겨 마신 자신의 취향을 애처롭게 드러낸 것이다. 유배된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만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 다산(茶山)이다.
수많은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기에 붙혀진 별칭이다. 다산이란 호에는 큰 뜻을 펼치지 못한 정약용의 간난신고와 애환이 깃들어 있다.
율곡은 이이가 삶의 고비 때마다 몸을 의탁했던 힐링의 장소였다. 더욱이 율곡은 유일한 스승이자 어머니 신사임당이 묻혀 있는 향수의 땅이었다. 그러니 이이가 후세에 남길 자신의 첫 번째 호로 선택한 율곡의 의미는 작지 않다.
기호학파의 태두로 추앙받은 이이는 살아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어리석다고 탄식했다.그럴수록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백성을 깨우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그의 기상은 ‘남명(南冥)’이란 호에 오롯이 담겨 있다. 요사스럽고 혹세무민 학문이라고 비판받은 ‘장자’에서 따온 것이다. 출사와 사직을 되풀이했던 퇴계와 달리 남명은 오직 한 길을 가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경세사상을 개척한 인물이었다. 조선에서는 수많은 명문가들이 나왔다.
저자는 선비들의 풍류가 가득한 아름다운 시(詩)부터 작호의 근거가 되는 산문까지 꼼꼼히 챙겨보면서 이 책을 썼다. 조선시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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