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박근혜 - 시진핑 국빈 만찬의 음식 코드

산야초 2015. 10. 4. 20:45

박근혜 - 시진핑 국빈 만찬의 음식 코드

[중앙일보] 입력 2013.07.06 00:32 / 수정 2013.07.06 01:12

메인 메뉴 '흰목이버섯탕' 여성 배려
양귀비·서태후도 즐겨 먹었다는 기록


국가 정상 간의 국빈만찬을 중국에서는 궈옌(國宴·국연)이라 부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하던 6월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궈옌에선 어떤 음식이 차려졌을까. 6월 29일 산시(陝西)성 당서기와의 연회에 사용된 요리는 또 무엇일까. 중국 당국의 연회 관련 정보 공개 금지에 따라 음식의 전모는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요리 이름이 공개됐다.

 궈옌 요리는 중국 고유의 특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고려해 제공된다. 중국 전통 음식에 익숙하지 않을 외국 정상들이란 점에서 전반적으로 담백한 요리를 내놓는다. 최근 들어 퓨전에 가까운 중국 요리와 다양한 술이 선보이는 것은 시대에 따른 변화다. 이번 궈옌은 여성 대통령이 주빈(主賓)이었던 까닭에 조금 색다른 요리와 술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연회는 술로 시작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 궈옌에서의 건배주는 백주(白酒)인 마오타이주(茅台酒)였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와인도 사용된다. 이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박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건배주는 장위(張裕)란 중국 와인이었다.

청말(淸末)의 실권자 이홍장(李鴻章)의 지원을 받은 거상 장필사(張弼士)가 프랑스 보르도 지역과 위도·기후가 비슷한 옌타이(煙臺)에서 1892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중국 최초의 서양식 와인이다. 이날 식탁에는 1992년산 레드와인과 2008년산 화이트와인 두 종류의 장위가 올랐다. 레드와인은 카베르네 게르니쉬트(Cabernet Gernischt)란 유럽종을 개량한 중국 고유 품종의 포도를 사용한다. 마실 때의 느낌이 강하고 톡 쏘는 듯한 매실향이 풍부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1949년부터 공식 연회에 와인 사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국빈 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접한 8가지 요리를 재현했다. 격식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시 주석의 방침에 따라 음식의 종류는 과거보다 단출했지만 여성에 대한 배려가 담긴 메뉴 선정이었다. 흰목이버섯탕은 양귀비와 서태후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① 얇게 썬 햄이 든 흰목이버섯탕 ⑧ 야채 위에 새우를 얹은 냉채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에서 재현했다. ② 스테이크 ③ 파파야를 넣어 간 배 수프 ④ 우럭고기 데침 ⑤ 오색야채 ⑥ 뎬신(點心) ⑦ 과일은 청와대 수행팀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했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빈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한 중국 최초의 서양식 와인 ‘장위’.
 
 
 와인이 중국의 공식 연회에 사용된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연회에 쓰인 와인은 프랑스의 고급 와인이었다. 공식 연회가 끊이지 않는 중국 국가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의 고급 와인 소비량은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댜오위타이에서는 비싼 프랑스 와인 대신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찾기 위해 2000년 초반 세계 유명 와인 11종의 품평회를 열기도 했다. 이때 장위 와인이 전체 평가에서는 2위를, 가격 대비 맛과 향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2003년부터 국가 행사 때 장위 와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 고재윤(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위 와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고 해석했다.

 건배가 끝나면 본격적인 식사 순서다. 중국의 연회는 첸차이(前菜·전채)로 시작한다. 차갑고 신맛이 나는 첸차이는 식욕을 돋운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이번 궈옌의 코스는 여덟 가지다. 궈옌으로는 이례적으로 적다. 보통 큰 연회에서는 첸차이만 많게는 여섯 종류가 나온다. 이날 유일한 첸차이인 ‘야채 위에 새우를 얹은 냉채’는 이번 궈옌의 절제와 실용성을 보여준다.

‘상어 지느러미’가 빠진 까닭은

 첸차이는 오랫동안 두부가 많이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세계적인 음식 조류에 맞춰 해산물과 야채·과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첸차이로 몸과 마음이 음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이어서 본요리인 다차이(大菜·대채) 혹은 정차이(正菜·정채)가 나온다. 다차이는 보통 여덟 가지로 구성되는데 이번에 다섯 가지만 나왔다. 첸차이 다음 나오는 첫 번째 다차이는 터우차이(頭菜·두채)라 부른다. 터우차이는 연회의 중심 요리다.

 터우차이는 일반적으로 옌워(燕窩·연와·제비집), 위츠(魚翅·어시·상어 지느러미·일명 샥스핀), 하이선(海蔘·해삼)을 3대 재료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위츠를 이용한 탕을 주로 사용해 왔다. ‘위츠가 없으면 연회라 말할 수 없다(無翅不成席)’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 궈옌의 터우차이는 위츠를 이용한 탕 대신 ‘얇게 썬 햄이 든 흰목이버섯탕’이었다. ‘흰목이버섯탕’의 주재료인 인얼(銀耳·은이·흰목이버섯 말린 것)을 사용한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배려다. 인얼은 여성의 몸에 좋고 여성들이 즐겨 먹는 요리로 알려져 있다. 인얼을 이용한 요리와 관련해서는 멀리는 양귀비에서 가장 최근에는 중국 음식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서태후까지, 중국의 유명한 여성 이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둘째는 최근에 동물보호단체 등이 제기한 위츠 요리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샥스핀 요리를 파는 중화식당에 들렀던 일로 미국의 동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번처럼 중국의 궈옌에서 위츠는 당분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터우차이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대개 무색무취한 건어물인 간훠(乾貨·건화)를 이용한다. 이 재료들은 탕과 어울려야 제맛이 난다. 터우차이로 사용되는 ‘탕’에는 중국의 최고급 육수인 칭탕(淸湯·청탕)이 쓰인다. 칭탕은 닭고기만 사용하거나, 닭고기와 다른 고기를 섞어 약한 불에 오랫동안 끓여 만든 맑은 육수다. 칭탕 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육수는 상탕(上湯)이다. 장닭 5근과 돼지앞다리살 5근, 돼지뼈 5근을 넣고 물 15근을 부은 다음 거품이 나지 않도록 9시간을 끓인다. 15근의 물이 5근으로 졸아들 때까지 끓이면 맑고 진하고 향기로운 육수가 완성된다. 최고급 연회의 탕은 이 쌍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번에 사용된 흰목이버섯탕도 이 쌍탕에 인얼을 넣어 요리를 완성했을 것이다. 이번 요리는 맑고 깊은 맛의 칭탕에 쫄깃거리는 식감이 일품인 인얼과 돼지 뒷다리 허벅지살을 염장해 만든 중국식 햄인 짭잘한 훠투이(火腿·화퇴)를 넣어 맛을 냈다.

시안 연회엔 지역 특산 버섯요리 등장

 뒤이어 나온 스테이크는 퓨전화된 연회 요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색야채’와 ‘우럭고기 데침’은 소박함과 간결함이 돋보인다. 우럭고기 데침처럼 다차이의 마지막에는 생선요리가 나온다. 생선을 뜻하는 중국말 위(魚·어)와 여유롭다는 뜻의 위(余·여)는 발음이 같다. ‘위’는 여유와 여운을 의미하며 ‘연회가 거의 끝나가지만 여유를 가지고 여운을 남긴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연회의 후반에 등장하는 ‘파파야를 넣어 간 배 수프’는 단맛을 내는 음식인 톈차이(<751C>菜·첨채)다. 톈차이보다 더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판차이(飯菜·반채)다. 원래는 밥을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미 배가 부른 사람을 위해 면요리나 자오쯔(餃子·교자), 러우바오쯔(肉包子·육포자) 같은 가벼운 음식들인 뎬신(點心·점심·일명 딤섬)이 나온다. 이번에는 뎬신 3개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위의 것들이 하나씩 나왔을 수도 있다.

 중식조리협회장을 지낸 왕육성(59·‘코리아나호텔 대상해’ 오너 셰프)씨는 “공개된 메뉴대로라면 내가 아는 한 가장 간소한 궈옌이다. 격식과 허례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시진핑 주석의 성격이 요리에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29일, 자오정융(趙正永) 산시성 당서기가 시안(西安)에서 개최한 연회에 나온 음식 중 알려진 것은 여섯 가지다. 첸차이인 듯한 ‘아시아식 특선요리’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요리인지 알 수 없다. ‘모둠버섯 수프’는 다차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서남부 산시성, 윈난(雲南·운남)성 등에서는 버섯탕이 연회의 중심 음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야생버섯 냄비요리’는 산시성의 성도 시안의 명물 요리다. 동충하초·영지 같은 10여 종의 귀한 버섯과 각종 한약재에 오골계를 넣고 끓인 보양식 중의 보양식이다.

 이번 연회는 산시성의 특선 요리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한국인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햄버거’다. 왜 중국 연회에 서양 패스트푸드가 등장했을까? 아마 이건 한국식이나 영어식으로 산시성의 명물 음식 러우자모(肉夾<9943>·육협막)를 설명하면서 생긴 오해임이 분명하다. 러우자모는 구운 빵 속에 고기와 야채를 다져 넣은 중국식 햄버거다.

마지막 음식은 ‘산시 특색 수타면’이다. 산시성은 밀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름만 보고 어떤 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연소 중화민국 대만대사관 조리장을 지낸 이연복(55·중식당 ‘목란’ 오너 셰프)씨는 “중국 고유의 음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국제적 조류에 맞춘 실용적인 측면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 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