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개요 및 배경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는 1823년 빈의 악기제작자 케오르그 슈타우퍼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의 이름이다. '기타 첼로'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기타와 유사한 크기와 외형의 악기를 첼로처럼 활을 현에 문질러 연주하는 형태의 악기였다. 슈베르트는 빈센초 슈스터라는 아르페지오네 주자를 위해 소나타를 작곡하였는데, 슈스터라는 인물은 이악기를 위한 교본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르페지오네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악기가 되어버렸고,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도 슈베르트의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다.
아르페지오네는 슈베르트 당대에 애호를 받다가 후에 사라진 악기이다. 기타와 유사한 형태, 음높이를 갖고 있으며 기타처럼 반음씩 나누어지는 지판을 가지고 있지만 첼로처럼 세워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오늘날 주로 첼로로 연주되는 이 곡은 주로 첼로의 중고역을 이용하게 되므로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슈베르트의 풍요한 멜로디라인이 잘 살아 있는 느긋하면서도 아늑한 소나타이다.
악기 아르페지오네는 소형의 첼로, 바하 시대에 사용되었던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흡사한 모양을 했으며 전반적으로 오늘날의 기타를 연상시키는 악기였다. 현재에 와서는 많은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나, 이 악기는, 지금의 첼로보다 피치가 높기 대문에,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된 작품을, 오늘날의 첼로로 연주할 경우에는 높은 음부의 빠른 패세지를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또한 리듬에 변화를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곡에는 카사도의 편곡에 의한, 첼로와 관현악과의 협주곡풍의 형태나 또는 도브링거 편곡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2중주의 형태로도 연주되고 있다.
작품 구성
제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단조, 4/4박자.
정상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9마디의 피아노 전주 다음에, 감미로울 정도로 우아한 주제가 첼로로 노래된다. 이 제1주제는 곡의 주상(主想)으로서는 다루어지지 않으나, 곡의 정취로서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제2주제는 명랑하고 경쾌한 성질이다. 사실은 이 기분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첼로가 5개의 화음을 피치카토로 연주하여 제시부를 마친다. 전개부는 첼로의 피치카토와 피아노로 시작하고, 제1주제가 약간 첼로로 노래된 다음, 거의가 제2주제를 바탕으로 한 전개가 된다.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기분이 강조되고 있다. 이윽고 느릿한 첼로의 접속 악구가 있고, 재현부에 들어간다. 공식대로 제1, 제2주제의 재현이 있고, 서정적인 코다가 된다. 첼로가 호소하듯이 연주하는 이 코다는, 과연 슈베르트의 개성을 강하게 나타내어 아름다우며 인상적인 코다이다.
제 2악장 아다지오, E장조, 3/4박자, 세도막 형식.
Daniil Shafran, Violoncello Felix Gottlieb, piano
약간 자유롭게 변주곡풍으로 다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피아노의 서주가 있은 다음, 마치 슈베르트의 리이트처럼 여겨지는 애수와 동경을 지닌 주제가 육중하게 첼로로 연주된다. 첼로의 낮은 음넓이를 참으로 아름답게 연주하려고 고려한 듯한, 자유로운 변주가 계속된다. 세도막 형식을 은연중에 교묘하게 변화시킨, 슈베르트가 자주 쓴 수법이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조가 두드러지며 아름답다. 첼로와 피아노의 2중창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형용이 없을 만큼 격조가 높은 악장이다. 그런 다음, 곡은 첼로의 인상적인 접속 악구로서 그대로 끝 악장에 들어간다.
제 3악장 알레그레토, A장조, 2/4박자.
Daniil Shafran, Violoncello Felix Gottlieb, piano
제2악장의 가요풍의 특징을 그대로 론도에 옮긴 형식으로서, 갑자기 첼로로 시작되는 론도 주제는, 순조롭게 전(前) 악장의 주제와 융합되고 있다. 이것이 집요할 정도로 되풀이된 다음, 짧은 접속악구가 있고, 제2주제가 나온다. 이것은 제1악장의 제2주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명랑하고 경쾌하다. 또한 헝가리풍인 첼로의 피치카토가 그것을 더욱 강조한다. 이윽고 곡은 호탕한 곡취를 더하여, 제3주제가 제시된다. 에피소우드풍으로 사용된 이 제3주제는, 자유 분망하게 활약하여 유머러스한 곡취를 강조 한다. 그 뒤 론도 주제가 원조로 돌아와, 동기를 자유롭게 변경시킨 코다에 옮긴다. 밝고 경쾌한 곡취 뒤의 애수 같은 이 코다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모르토퐁텐의 추억]
-캔버스에 유채, 65*89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초판본 LP의 재킷에 있던 코로의 풍경화 [모르토퐁텐의 추억]
코로의 풍경화는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밝은 색조의 작품으로 예컨대 이탈리아 유학시에 그린 로마, 피렌체 풍경 따위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푸른 색조와 송진과 같은 색을 주로 하여 막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거기에 정서가 흐르는 것 같은 풍경화로서, 대단히 낭만적인 작품들이다.
후자의 작품이 이른바 코로다운 풍경화로서 크게 환영 받은 것들이다. 이 종료의 풍경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풍이 이 그림이다. 코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풍경화는 아름다운 요정들을 조심스럽게 등장시킴으로써 자연을 인간화 시킨다는 옛 고전주의의 프로그램을 새로운 형태로 이끌었다. 정확한 감각으로 한낮의 풍경을 만들었던 코로는 또한 정반대로 꿈의 풍경을 그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코로(Corot, Jean-Baptiste Camille 1796~1875)파리 출생.
처음에는 상업에 종사하였으나 1822년부터 미샤롱과 베르탱에게 사사하여 그림을 공부하였다. 1825년부터 2년간 동경하던 이탈리아에 유학, 자연과 고전작품을 스승으로 한 정확한 색가(色價)에 의한 섬세한 화풍을 발전시켜, 1827년 《나르니다리》로서 살롱에 등장하였다. 그 후는 프랑스에 살면서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을 비롯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뛰어난 풍경화를 남겼다.
《샤르트르 대성당》《회상》 등이 유명하며, 풍경화 이외에도 《진주의 여인》《푸른 옷의 여인》《샤르모아 부인상》 등이 있다. 코로의 작품은 은회색의 부드러운 채조(彩調)를쓰면서 우아한 정경을 드높여 주어, 단순한 풍경에도 시와 음악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특색이다. 동시에 착실한 관찰자로서 자연을 감싸주는 대기와 광선의 효과에도 민감하여, 빛의 처리면에서 훗날 인상파화가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아르페지오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유명한 바이올린과 기타 제조업자였던 요한 게오르크 슈타우퍼(1778~1853)가 살고 있었다.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그 당시 수타우퍼가 디자인했던 헤드스톡 부분은 20세기의 전기 기타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능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823년 오늘날 '아르페지오네'라고 알려져 있는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였고, 빈 일반 음악신문 4월 30일자에 이 악기를 소개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 악기는 기타 다로므, 혹은 기타-첼로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모양은 일반의 기타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지만. 음역은 훨씬 넓으며, 여섯 줄이 매여져 있는 것은 기타와 같으나, 현을 기러기발로 지탱하고 있는 점과 손가락이 아닌 활로 연주하는 것은 첼로와도 같다, 소리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음량도 풍부한데, 고음은 오보에에 저음은 바샛 호른의 영역까지 미치고 더블 스톱 연주까지 가능하여 특히 반음계 악구의 연주에 잘 어울린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일반 기타와 똑같이 E-A-D-G-B-E의 순으로 조율하도록 되어 있고. 바이올린 족의 밋밋한 지판 대신 24개의 금속 기러기발로 지판이 나뉘어져 있던 이 독특한 악기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악기라고 지칭한 것은 슈타우퍼의 손에 의해 태어난 이후 현역악기로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았던 기간이 고작 10여 년에 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이 악기가 개발된 직후인 1824년 슈베르트가 이 악기를 위해 소나타를 한 곡 작곡하였을 뿐, 다른 작곡가 어느 누구도 이 악기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또한 아르페지오네의 독특한 음향을 사랑하는 아주 소수의 연주자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이어져왔을 뿐이다.슈타우퍼는 낭만주의 꽃을 피웠던 19세기의 대기를 호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페지오네 15-6세기 비올족 악기들의 음향 이론을 그대로 접목시켰는데, 사실 여기에서 아르페지오네의 수명을 단축시킨 모든 문제가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까지 맹위를 떨쳤던 비올족의 현악기들과 기타 류트 등은 음량의 한계때문에 바이올린족 악기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는데, 바로크 말기인 1760년대 후반,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각지의 음악에 대해 기록을 남겼던 찻스버니도 이미 지적했듯이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 왔던 것이다.
그 후, 새로운 포르테피아노의 개발 및 개량이 한참 진행된 19세기였던 만큼 아르페지오네는 볼륨이라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반주 악기인 포르테피아노와 동등한 혹은 우월한 위치에 절대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량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 역간 목이 쉰 듯 어슴푸레하게 들리는 아르페지오네의 울림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만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매력적인 악기임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