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람만 선택해 달라.”
연출
“진실한 사람” 발언과 국무회의 사진
“이들이 내 사람” 지지 호소 효과
타이밍
유승민 상 당한 날 ‘정종섭 출마설’
대구 친유승민 여론 차단한 결과
화법
진실, 배신, 나쁜 대통령, 대전은요?
“단순해서 강렬 … 반복되면 역효과”
평이하고 친근한 단어들로 이뤄진 이 문장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발언 당사자가 박근혜 대통령이어서다.
박 대통령은 평소 간결하면서도 감성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의중을 전달해 왔다. 이번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사퇴로 ‘대구·경북(TK) 물갈이론’이 불거지자 이런 언급을 내놓았다. 당장 “물갈이론에 힘을 실은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새누리당 내에선 지난 7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부른 “배신의 정치” 발언의 후속편이라는 해석이 무성하다. 박 대통령은 정곡을 찌르는 발언뿐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과 분위기 연출 등의 3요소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낸 경우가 많다. 이른바 ‘박근혜식 시그널(신호) 정치’다. “진실한 사람 선택”도 결국은 시그널 정치의 하나다.
①타이밍=정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8일은 유 전 원내대표의 선친인 고 유수호 의원의 빈소가 차려진 날이다. 유 전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는 새누리당 20대 총선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빈소가 차려진 44시간 동안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엔 여야 정치인들이 몰렸다. 정 장관의 사퇴가 없었더라면 조문객들은 ‘유승민’이 주인공이 되는 대화를 나눴을 환경이다. 그러나 8일 오전 전격 발표된 정 장관의 사퇴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걸 막았다. 대신 빈소에선 TK 물갈이론이 확대 재생산됐다. 한 비박계 인사는 “빈소의 특성상 유 전 원내대표에게 유리한 여론이 대구 및 정치권 전역에 퍼져나갈 확률이 높았으나 정 장관의 사퇴 소식이 이를 막은 셈이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 발언을 한 10일은 공교롭게도 발인(發靷) 날이었다. 친박계 인사들조차 ‘배신의 정치 2’라고 칭한 ‘진실한 사람’ 발언은 결국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 비박계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힘을 얻었다.
②연출=11일 대부분의 조간신문에 국무회의 장면을 찍은 사진 한 장이 게재됐다. 박 대통령 왼쪽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종섭 행자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순서대로 앉은 사진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4명은 모두 20대 총선 출마가 확실시된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진실한 사람만 선택해 달라’는 발언과 이 사진이 맞물렸다. 결국 4명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지칭한 셈이 됐다. 의미심장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며 단 한 명의 대구 의원도 부르지 않은 데 대해선 “대구 의원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장면 연출엔 ‘역사’가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2012년 5월 8일 박 대통령(당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용산구 소재 한 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이곳은 이주영 원내대표 후보의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뛰어든 진영 의원의 지역구다. 이한구-남경필-이주영 의원이 3파전을 펼치던 선거 결과는 이주영-진영 조가 승리했다. 2013년 9월 베트남 순방 땐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 두 사람만 주요 대기업 경제인 수행명단에서 빠졌다. 이들은 그보다 두 달 전인 그해 7월 중국 방문 때 국빈 만찬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이들에 대한 ‘사퇴압박’이란 해석이 나왔다. 결국 이들은 그해 11월 자진해 물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2006년으로 거슬러 간다. 그해 7월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선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친박계 강재섭, 친이계 이재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투표 당일 이 의원이 한창 연설을 하던 중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빨간 재킷을 입은 박 대통령(당시 의원)이 투표하러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의원 측은 “이 장면 하나로 그날 전당대회의 추는 기울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선 결과는 강 대표의 승리였다.
대구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친박계 인사는 “현역 의원들과의 공천 경쟁이 어려운 만큼 친박세력이 벨트를 형성해 기자회견을 하는 식의 이벤트로 ‘친박’ 마케팅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③화법=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다. 수술 후 깨어나자마자 던진 한마디는 “대전은요”였다. 당시 열세이던 대전시장 선거 판세를 물은 것이다.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지지층의 결속력은 높아졌 다. 선거 막판 박 대통령은 피습 당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대전을 방문했다. 발언과 옷차림이 어우러져 “대전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 냈다.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는 시장에 당선됐다. 이듬해인 2007년 초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내 들자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갈했다. 정치권은 개헌 논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땐 경선 룰 개정을 거듭 요구하는 이명박 후보를 향해 “차라리 1000표를 얹어 드리겠다”는 말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대권과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가 친박계 후보들에 대해 ‘공천 학살’을 하자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을 남기고 지역구(대구 달성)에 칩거했다. 당시 여당은 한때 180석 이상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바람에 밀려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10일 국무회의의 ‘진실한 사람’ 발언이나 친박 장관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시그널이 전달됐다. 그 시그널은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겠다’였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박 대통령은 고비마다 시그널 정치를 구사하는 데 탁월하다”면서 “그러나 노골적인 시그널이 거듭되면 효과가 떨어진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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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정종문 기자 ide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