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여름의 맛, 열무보리비빔밥

산야초 2015. 7. 15. 14:11

여름의 맛, 열무보리비빔밥 요리 칼럼_


아삭하고 시원한 제철 상차림월간 전원속의 내집 

| 구성 이세정 사진 변종석 | 입력 2015.07.10 14:48 | 수정 2015.07.13 15:25



↑ 보리밥에 아삭하고 시원한 열무김치를 올려 고추장에 비벼먹는 여름의 맛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와 길게 이어진 가뭄으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밭작물이 보기 안쓰럽던 찰나, 잠깐 내린 비에 바깥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잘 자고 일어난 아이 얼굴처럼 해맑은 모습에 농부의 마음도 덩달아 풋풋해지고, 먹을거리를 거두는 손길이 한결 가볍습니다.

여러 가지 싱싱한 채소로 밥상이 화려해지는 여름이면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열무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아삭하고 시원한 열무김치를 구수한 보리밥에 얹어 쓱쓱 비비면 녹음방초의 싱그러운 기운도 같이 비벼지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한 그릇 달게 비우고 나면 달아났던 입맛도 돌아오고, 진득하던 무더위는 저만치 물러납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선 면역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자연치유력까지 다져주기에 좋은 음식은 노지에서 자란 제철 채소입니다. 여름 채소를 대표하는 열무는 수분이 많아서 갈증을 풀어주고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줍니다. 시력을 보호하고 기억력을 높여줄 수 있는 비타민,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칼슘, 혈압을 조절해주는 칼륨도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는 낮아서, 밥과 같이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변비와 비만을 해소하기에 그만입니다.

열무와 무는 한 종류이고 잎과 뿌리를 다 먹지만 가을무는 뿌리가 맛있고, 여름에 키우는 열무는 주로 풋풋한 잎을 먹습니다. 여름 열무는 생육기간이 짧아서 여러 번 심을 수 있는데 재배법에 따라 맛이 다르고 수확량과 저장성에도 차이가 납니다. 열무를 고추와 궁합을 맞춰 같이 키우면 두 작물 모두 자생력이 높아져 병충해에 강하고, 맛도 더 좋아집니다. 특히 고추밭에 심는 열무는 가을이면 김장무처럼 자라서 굵직한 뿌리와 무청을 푸짐하게 거둘 수 있습니다. 본래 매운 맛을 지닌 열무는 거북할 정도로 매운 내가 날 때도 있지만, 고추 그늘을 받으면서 자라면 향은 진하게 살고 먹기 좋을 만큼만 매큼합니다. 고추 역시 뿌리에 적당한 자극이 주어져 더 튼튼하게 자랍니다. 간혹 고추 심는 시기가 늦어져 열무 먼저 키울 때가 있는데, 무농약•무비료로 자연스럽게 키워도 홀로 자란 열무는 제맛이 나질 않고, 고추와 더불어 성장한 열무라야 김치를 담갔을 때 칼칼하면서 시원한 맛이 납니다.

하지 무렵에 열무를 거두면서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고추와 같이 자란 열무는 잎이 실하고 뿌리가 굵직해도 부드럽게 뽑히는데, 고추 없이 홀로 자란 열무는 뿌리는 가는데도 맵고 질긴 맛이 납니다. 순하게 잘 자란 열무가 맛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하지요.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키워서 먹어보면 그 차이에 놀랍니다.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비법은 특별할 게 없습니다. 잘 키운 열무와 단순한 양념, 여기에 정성만 더해주면 됩니다. 먼저 뿌리째 뽑아서 다듬은 열무를 숨이 살짝 죽을 정도로 소금에 절입니다. 보릿가루로 풀국을 끓이고 갈은 홍고추와 고춧가루, 멸치액젓 등 양념을 준비합니다. 아직은 밭에서 홍고추를 거둘 시기는 아니라서 해마다 제철에 거둬서 냉동 보관하는데, 겉절이나 생채양념에 이용하면 칼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단맛을 잘 살려줍니다. 열무 풋내를 없애주고 구수한 맛을 더해주는 풀국은 약간 묽게 끓여서 넉넉하게 넣으면 국물까지 시원하게 먹습니다. 따로 물김치를 담기보다 국물이 자박한 열무김치를 담그면 두루두루 먹기도 좋습니다.

대개 김치는 소금에 절여서 담그지만 열무는 절이지 않고 즉석에서 담그기도 합니다. 양념은 절일 때와 똑같이 준비하고, 절이는 대신 끓는 물에 데칩니다. 즉석김치는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잎이 조금 질겨졌을 때는 이렇게 익혀서 담근 김치가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열무는 배추와 달리 풋내가 나기 쉽습니다. 절일 때나 버무릴 때는 살살 가볍게 건드리고, 자주 뒤적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열무김치는 쌀밥보다 보리밥이 잘 어울립니다. 고혈압•동맥경화 등 혈관질환 환자에게도 좋은 음식이 열무김치인데, 보리밥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또한 열무처럼 식이섬유가 많아서 변비에 좋으며 당뇨에 약이 되기도 합니다.

맛과 영양의 궁합이 좋은 열무김치와 보리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면 그야말로 꿀맛이지요. 각각의 맛이 있는 나물비빔밥에 고추장이 끼어들면 나물 자체의 맛은 사라지고 고추장만 크게 두드러지지만, 열무비빔밥은 고추장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보리밥도 달고, 김치도 한결 맛이 납니다.

이대로도 충분하지만 고추장 대신 동아고추장장아찌를 곁들이면 보기에도 훨씬 먹음직스럽고 영양가는 한층 높아집니다. 동아는 소화기능을 개선하면서 이뇨작용을 도와주고 신장이 약한 사람에게 약이 되는 열매채소입니다. 말린 동아고지를 고추장에 버무려 숙성시킨 동아장아찌는 꼬들꼬들해서 씹히는 맛이 진하고, 육류나 생선을 곁들인 것처럼 속을 든든하게 해줍니다.

겉보기엔 수수해도 여름철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는 열무비빔밥은 매미소리가 곁들여지면 더 맛있답니다. 좋은 사람들과 오순도순 모여 감칠맛 나게 즐겨보세요.

<재료 준비>

열무김치
보리밥
엇갈이 나물무침
동아고추장 장아찌
참기름 (또는 반반 섞은 들기름과 참기름)

• 열무김치
다듬은 열무 1.5kg
굵은소금 1/2컵
고춧가루 1/2컵
갈은 홍고추 1컵
멸치액젓 2/3컵
풀국 (보릿가루 5큰술, 물 3컵)
양파 1개, 마늘, 생강

• 보리밥
구분도미 1.5컵
보리쌀 1컵

• 엇갈이 나물무침
엇갈이 200g
된장, 고추장 2/3큰술씩
대파, 참기름. 통깨

<만드는 방법>

↑ 01열무는 뿌리 부분의 흙을 칼로 살살 긁어 제거하고 잔뿌리도 떼어낸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로 썰어 깨끗하게 씻어 건진다.

↑ 02 굵은 소금을 켜켜이 고루 뿌려서 중간에 한 번 뒤적여주며 숨이 죽을 정도로 절인다. 알맞게 절여지면 물만 따라내고, 약간 짭짤할 것같으면 물에 한 번 담갔다 곧바로 건진다. 여러 번 헹구지 않는다.

↑ 03 보릿가루를 물에 풀어 풀국을 끓여 식힌다.

↑ 04 갈은 홍고추와 고춧가루, 멸치액젓을 섞어놓고 양파는 채 썬다.

↑ 05 절인 열무에 3과 4, 다진 마늘, 생강을 넣어 훌훌 버무린다. 한나절 실온에 두었다 냉장 보관한다.

↑ 06 보리밥 짓기. 보리쌀을 씻어서 물을 넉넉하게 붓고 삶아서 소쿠리에 건진다. 구분도미는 불리지 않고 씻어서 곧바로 건진다.

↑ 07 솥에 보리쌀과 구분도미를 안치고 밥물을 부어 밥을 짓는다. 뜸이 잘 들면 위아래 뒤적여 훌훌 섞는다.

↑ 08 엇갈이는 끓는 물에 데쳐서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두어 번 잘라서 훌훌 헤쳐 놓고.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 09 비비기 좋게 넓적한 그릇에 보리밥, 열무김치, 엇갈이무침, 동아고추장장아찌를 담고 참기름을 넣는다.

자운 (紫雲)
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 최근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