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교과서에서 보던 조선 풍속, 이토록 신명날 줄이야

산야초 2016. 4. 26. 21:22

교과서에서 보던 조선 풍속, 이토록 신명날 줄이야

입력 : 2016.04.26 03:00 | 수정 : 2016.04.26 05:04

- DDP 마지막 간송 소장품전…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혜원 '미인도'·단원 '마상청앵' 등 조선시대 대표작 80여점 선보여

#1. 냇가에서 그네 타고 머리 감는 여인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앞. "이름하야 '한양기생연합회 워크숍'입니다. 워크숍 날짜는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 장소는 수락산 계곡! 1부 프로그램은 창포물에 머리 감기, 2부는 그네 타기입니다. 춘향이와 이도령 만난 게 단오! 그렇다면 붉은 치마 입고 그네 타는 여인은 춘향이, 오른쪽 짐 들고 오는 건 월매겠네요."

#2. 살구나무 꽃망울 움트는 화창한 봄날, 한 남자가 병아리 잡아채 달아나는 고양이를 장죽으로 후려친다. 조선후기 풍속화의 백미로 꼽히는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 "엄마, 아빠가 공중 부양했지요? 카메라 셔터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포착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단오풍정(端午風情)’.‘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있는 이 그림은 단옷날 시냇가에서 그네 타고 머리 감는 여인을 율동감 있게 그린 그림이다.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단오풍정(端午風情)’.‘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있는 이 그림은 단옷날 시냇가에서 그네 타고 머리 감는 여인을 율동감 있게 그린 그림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의 해학 버무린 현대 버전 설명에 관람객들 포복절도한다. 교과서에서, 달력 속에서 익숙하게 보던 우리 그림이 이토록 생생하고 신명난 것이었던가.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일상·꿈 그리고 풍류'전의 풍경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4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간송미술관(1938년 설립)이 보화각을 벗어나 연 첫 외부 전시인 '간송문화전'의 마지막 소장품 전시다. 간송 관계자는 "DDP와의 계약 기간이 3년이라 7, 8부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간송소장품만으로 구성되는 전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진경산수화, 사군자, 화훼영모전에 이어 이번엔 풍속화와 도석화(道釋畵·도교와 불교의 수양 장면을 담은 그림) 80여점이 전시된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간송 전형필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모은 장르이자, 우리 고유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조선 후기 진경시대의 풍속화와 도석화로 대단원의 마무리를 삼았다"고 했다. 안견의 제자 석경(1440~?)부터 춘곡 고희동(1886~1965)까지 지난 500년을 대표하는 화가 작품들이 나왔다.

혜원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자모육아(慈母育兒)’. 오른쪽 눈물 훔치는 큰아들이 혜원이다.
혜원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자모육아(慈母育兒)’. 오른쪽 눈물 훔치는 큰아들이 혜원이다.
간송 소장 작가 중 늘 인기 1위를 놓치지 않는 신윤복의 대표작들을 입체적으로 관람할 기회다. 칼춤 추는 기생을 그린 '쌍검대무(雙劍對舞)'에선 치마폭의 율동감만 볼 게 아니라 6명의 악공(樂工)에 숨은 디테일도 눈여겨보자. 뒷모습을 그렸는데도 연주하는 품새와 악기 끝만 보여주면서 왼쪽부터 해금, 피리 둘, 대금, 장구, 북 등 삼현육각(三絃六角) 연주하는 악공임을 보여준다. 그림 속에 숨은 어린 시절 혜원의 모습도 놓치지 말자. 도화서 화원이었던 혜원의 아버지 신한평의 '자모육아(慈母育兒)'란 그림이다. 젖먹이 막냇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기고 설움에 눈물 훔치는 큰아들. 바로 신윤복이다. 혜원이 양반의 풍류를 많이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탁현규 연구관은 "상피제(相避制·친족 간 같은 관직에 종사할 수 없는 제도)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일할 수 없었던 혜원은 귀족들과 어울려 놀며 그들의 삶을 관찰했다"며 "이것이 '혜원 전신첩(傳神帖)'의 비밀"이라고 했다.

그림에 붙은 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날 꾀꼬리 울음소리에 고개 돌린 선비를 포착한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聽鶯)'엔 이인문이 제화시(題畵詩)로 춘정(春情)에 맞장구친다. 나귀 거꾸로 탄 신선 장과를 그린 '과로도기(果老倒騎)'엔 강세황이 "중국에도 이런 그림 없다(求之中華 亦不可易得)"고 호기 넘치는 평을 써놨다.

겸재 정선이 자기 얼굴을 구체적으로 그려 넣은 유일한 그림으로 알려진 '독서여가(讀書餘暇)'도 놓치지 말자. 툇마루에 앉아 부채 들고 망중한에 빠진 선비가 겸재다. 부자(父子) 화원 김희겸과 김후신이 술 취한 이를 그린 '야주취월(夜舟醉月)'과 '통음대쾌 (痛飮大快)'에선 애주(愛酒)도 유전인가 싶어, 피식 웃음 새나온다.

명작들에 눈이 즐겁지만 전시 방식이 옥에 티다. 전시실이 어두워 '미인도'의 화룡점정이랄 수 있는 미인의 하얀 버선코는 실눈 떠야 겨우 보이고, 진열장 바닥에 깔린 화첩을 보려면 유리창에 코를 박아야 한다. 8월 28일까지. 070-7774-2524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