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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북한강 강촌

산야초 2016. 5. 12. 23:26

여기 '추억역'..돌아갈 수 없어 돌아봅니다

경향신문 | 글·사진 정유미 기자 | 입력 2016.03.02. 21:03 | 수정 2016.03.03. 10:01


[경향신문]ㆍ‘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북한강 강촌


강촌은 ‘현재 진행형’이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고 젊음과 낭만이 있다. 북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흐르지만 강촌은 세월 따라 많이 변했다. 지금도 변화 중이다.경춘선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예전엔 사람들이 서울 청량리역에 모였다 하면 강촌행이 대부분이었다.MT를 떠나는 대학 동아리의 선후배들이 배낭과 라면박스를 이고 지고 열차에 올랐다. 지금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강촌에 간다. 자전거 타러 가는 사람들, 등산하러 가는 사람들, 팔짱 낀 연인들이다. 과거엔 비둘기호를 타고 대성리, 청평, 가평을 지나 힘겹게 갔다면 이제는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다. ITX 청춘열차가 달리고 지하철이 수도 없이 다닌다.

옛 강촌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지만 젊음과 낭만은 지금도 북한강을 따라 흐른다. 경춘선이 왕복 직선으로 넓어지면서 옛 강촌역 철로가 낭만열차가 오가는 관광지로 변했다.
옛 강촌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지만 젊음과 낭만은 지금도 북한강을 따라 흐른다. 경춘선이 왕복 직선으로 넓어지면서 옛 강촌역 철로가 낭만열차가 오가는 관광지로 변했다.

■강촌 & 추억


생애 처음 차를 뽑은 날 무작정 강촌으로 간 기억이 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대우차 ‘씨에로’ 1500㏄를 끌고 서울에서 무작정 달렸다. 팔당댐을 지나 대성리, 청평을 거쳐 강촌에 도착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1시간20분 거리지만 그땐 그랬다. 왕복 6차선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가 여행의 시계를 바꾼 것이다.


낭만과 젊음이 숨쉬는 강촌은 지금 몇 시쯤 되었을까. 옛날처럼 차를 몰고 또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남양주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받고 5분 만에 화도IC로 빠져나왔다. 여기서 옛 46번 국도를 만난다.


왕복 4차선인 46번 국도는 제한속도 80㎞다. 드라이브를 하는데 예전처럼 시원한 맛이 없다. 답답함의 정체는 제한속도가 아니라 아파트였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아파트들이 운전시야를 가로막았다. 산에는 나무 대신 송전탑이 거미줄처럼 늘어서 있다. 북한강은 강물이 보이지 않았다.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갈대숲 너머로 보이는 물줄기는 졸아들 대로 졸아들어서 동네 실개천 같다. 북한강 강물은 오직 내비게이션 안에서만 파랗게 흘렀다.


철길 걷어내고 간판만 남은 강촌역.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철길 걷어내고 간판만 남은 강촌역.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대성초등학교를 발견하고 나서야 건너편에 대성리역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옆 좌석에 커다란 지도를 펴놓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길을 찾던 재미도 사라졌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의 그 낯선 기쁨과 설렘, ‘친절한’ 내비게이션에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


‘낭만 가득 청평’이라고 쓰인 옥색 철교가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북한강휴게소를 지나자 지하철이 ‘휭’ 하고 지나간다. 얼마 안 있어 ITX 청춘열차가 달려간다. 24시간 편의점이 한 집 건너 있고 차를 운전하며 햄버거를 주문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경강역으로 갔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와, 강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기 시작한 곳이 바로 경강역이었다. 북한강이 부채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면 누구랄 것 없이 벌떡 일어나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곤 소리를 질러댔다. 경강역에 도착하니 레일바이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추억과 향수가 남아 있는 옛 백양리역.
추억과 향수가 남아 있는 옛 백양리역.

■강촌 & 북한강변로


경춘선이 왕복 직선으로 넓어지면서 사라진 풍경, 북한강을 따라 달리던 옛 철길이 보고 싶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경강역 부근 춘성대교 앞에서 좌회전을 하자 녹슨 철로가 우두커니 서 있다. 눈앞에 북한강이 펼쳐졌다. 자전거를 타던 젊은이들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푸른 강바람에 땀을 씻고 있었다.


경강역~백양리역~강촌역 10㎞에 이르는 북한강변로는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걷듯이 시속 10㎞로 차를 몰았다. 백양리역까지 남은 거리 4㎞. 강을 덮었던 얼음은 이미 녹고 없었다.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 시샘이라도 하듯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졌다. 북한강은 이렇듯 낭만적이다.


오래된 옛집들과 펜션이 듬성듬성한 마을 앞을 지나는데 옛 백양리역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였다. 50m 정도 올라가니 열차가 서지 않는 폐쇄된 구 백양리역이 나왔다.


강촌행 비둘기호가 이 역에 정차하면 입구 통로에 나와 심호흡을 하곤 했는데…. 철로 위 ‘서울 성북역’ 방면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기도 정겹다.


백양리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강촌역이다. 북한강을 따라가는데 저 멀리 항공모함같이 거대한 백양리역이 보였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풍경을 담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카메라를 들었다.


옛 강촌역은 이제 간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허름하고 낡은 콘크리트 벽에 영어로 ‘레일파크’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어디선가 1970~80년대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 내리는 강촌의 라이브카페엔 아직 낭만이 살아 있었다. 북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거나 걷다가 잠깐 들러 차 한잔 마시면 옛 생각 절로 나겠다.


둔중한 강촌대교 아래로 내려가봤다. 밥을 짓기 위해 자갈을 주워다가 바람을 막고 널찍한 돌 위에 삼겹살을 굽던 그 시절이 아득하다. 모터 전동차와 오토바이를 배우는 젊은이들의 헬멧이 강물에 흔들렸다.


작고 아담한 출렁다리가 보였다. 다리에는 ‘1972년 그곳에 가고 싶다’ ‘희망’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래, 돌아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수는 있지. 강촌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