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이드

●아메리카를 본 듯, 아프리카에 온 듯..'눈부신 진초록' 대구 달성

산야초 2016. 8. 24. 23:36

아메리카를 본 듯, 아프리카에 온 듯..'눈부신 진초록' 대구 달성


경향신문 | 글·사진 정유미 기자 | 입력 2016.05.18 22:06 | 수정 2016.05.19 09:55

[경향신문]ㆍ내륙도시 주변 광활한 습지

멀리서 보면 아메리카 대륙 내륙도시 대구에 ‘아메리카’ 대륙을 닮은 습지가 있다. 생태계 보고를 유흥지로 여기는 인간들의 ‘만행’ 속에서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는 자연은 안쓰럽고 경이롭다.
멀리서 보면 아메리카 대륙 내륙도시 대구에 ‘아메리카’ 대륙을 닮은 습지가 있다. 생태계 보고를 유흥지로 여기는 인간들의 ‘만행’ 속에서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는 자연은 안쓰럽고 경이롭다.

내륙도시 대구에도 습지가 있다. 대구가 고향이 아닌 이상 대구에 습지가 있다고 하면 다들 설마한다. 하지만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된 습지가 대구 달성에 있다.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초록 땅에서는 무수한 야생화들이 깜냥껏 자태를 뽐낸다. 습지는 넓디 넓어서 아프리카 초원에 들어선 듯 가슴이 탁 트인다. 아직도 올챙이, 민물가마우지 등이 흔한 이곳은 국내 최대 맹꽁이 서식지이기도 하다. 달성습지의 빛깔을 제대로 보려면 지금이 적기다. 기초자치단체가 이곳에 유람선을 띄우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생태계 보고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그 목소리에 마음 하나 얹는 심정으로 휘 둘러봤다.

■가까이서 본 생태습지

대구 달성습지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고 진천천과 대명천이 모이는 네물머리에 있다. 여름에 큰비가 오면 물이 넘치는 범람형 습지다.

몸을 한껏 부풀린 멸종위기종 맹꽁이.
몸을 한껏 부풀린 멸종위기종 맹꽁이.

“범람형 습지이기 때문에 생태계의 보물입니다. 태풍과 큰비가 오면 강이 넘치는데 진흙 속에 있던 모든 식물들이 한꺼번에 뒤집어집니다. 물이 빠지고 나면 이듬해 수생식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죠. 나무 뿌리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자연스럽게 비옥한 토양이 되는 것이지요.”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 이영숙씨(54)는 “달성습지의 조류와 식물의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 있다”며 “봄에는 생동감 넘치는 진초록의 세상을 실컷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달성습지는 크게 세 코스로 나뉜다. 쉽고 편안하게 습지에 접근할 수 있어서 아이들과 생태학습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연인 또는 친구끼리 메타세쿼이아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갈대를 벗 삼아 천천히 거닐다 단풍나무와 왕버들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풍경이 된다. 청정한 숲속에서나 볼 수 있는 딱따구리도 만날 수 있다.

검정 장화를 신고 들어가야 하는 코스는 조심스럽다. 살모사와 누룩뱀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말이다. 억새와 갈대를 따라가다 원시림처럼 늘어서 있는 뽕나무와 왕버들나무 앞에서 쉬다보면 두꺼비와 맹꽁이를 볼 수도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나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웅덩이를 탐험할 수 있는 험한 코스도 나온다. 습지 안에는 여러 개의 물길이 있는데 웅덩이가 꽤 깊다. 갖가지 생물들이 살고 있어 전문가 안내를 받으면 좋다.

식물을 먹고사는 곤충, 곤충을 먹고 자라는 파충류, 그 파충류를 잡아먹는 새가 날아다니는 자연 생태계를 직접 목격하는 일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1시간쯤 걸었을까 차츰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나무들부터 그 생김새와 생태가 달랐다. 서로 껴안고 보듬으며 오랜 세월을 지내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나뭇가지가 휘어졌는가 싶으면 곧게 뻗어 있고, 누워 있는가 싶으면 하늘을 뚫을 듯 빳빳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발 아래는 물을 머금어 푹푹 잠겼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 분명했다.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청둥오리가 한가로이 봄볕을 즐기고 있고 그 옆의 나뭇가지엔 작은 새들이 앉아 있는데 꼭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물 같다.

맹꽁이가 살고 있는 웅덩이를 만나면 순간 숨이 멎는다. 맹꽁이들이 몸을 부풀리고 뱅글뱅글 도는데 이런 진경은 난생처음이다. 이곳에선 멸종위기종인 맹꽁이가 50만마리나 산다고 한다. 달성습지가 그만큼 깨끗하다는 말이겠다.

물속에는 개구리밥, 생이가래, 노랑어리연 등이 가득하고 물 밖에는 큰고랭이, 억새와 부들, 달뿌리풀이 널려 있다. 물이 깨끗해 수달과 고라니도 살고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본 생태습지

달성습지를 멀리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가 있다. 화원동산이다. 해질 무렵이 더 아름답다고 해 대구 달성구 화원읍으로 차를 몰았다. 화원동산은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에 갈 때 행궁으로 썼는데 1928년 화원유원지로 이용하다가 1978년부터 화원동산으로 새롭게 단장했다고 한다.

습지를 따라 숲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길.
습지를 따라 숲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걷는 대신 오리 전기차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급한 마음에 팔각정 계단을 뛰어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숲과 강, 너른 하늘이 품에 안긴다.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이 만나는 달성습지는 듣던 대로 ‘아메리카’ 대륙을 닮았다.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기암괴석도 곳곳에 보였다. 조금 전에 발도장을 찍었던 달성습지가 저만치 펼쳐져 있다. 어른 키만 한 갈대숲과 나무들, 드넓은 초지와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노을이 내릴 무렵의 달성습지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살포시 얼굴이 붉어지는 강과 습지는 새색시마냥 매력적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곳에 오면 평생 인연을 맺는다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닐 성싶다.

멸종위기 맹꽁이가 서식하는 달성습지 웅덩이.
멸종위기 맹꽁이가 서식하는 달성습지 웅덩이.

습지는 겉만 보면 버려진 땅처럼 보인다. 그 안에 들어가봐야 살아있는 것들이 보인다. 대구에서 잊어버렸던 생명들, 잃어버렸던 원시의 생태를 만날 줄 진짜 몰랐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