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었다 풀어주는 직화숯불구이와 김치수제비의 이중주
[맛난 집 맛난 얘기]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진미육가>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작품 속에 내재된 긴장과 이완의 구조다. 걸작은 보통 절정을 향해 긴장감 있게 치달아 오르다가 정점을 찍고 나서 느슨하게 풀어준다. 그 순간 편안한 감동이 감상자의 가슴에 고인다. 그렇게 마음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정화가 된다. 음악이 그렇고 영화와 문학이 그렇다. 가만 보면 음식 또한 다르지 않다. 돼지 목살과 삼겹살 직화숯불구이로 고기 맛이 절정에 올랐다가 김치수제비로 시원하게 풀어주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고기·숯·화구 삼박자 갖춘 직화구이
<진미육가>의 목살과 삼겹살은 원육의 질부터 남달랐다. 경기도 포천에서 가져오는 국내산 암퇘지 육질은 최상급이었다. 주인장의 고기에 대한 집념이나 관심이 그 집 고기 수준과 직결된다는 평범한 원칙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양질의 참숯과 황동 화로와 구리 석쇠를 사용한다. 이른바 직화구이의 최상급 조건을 모두 갖췄다.
생삼겹살과 목살(150g 1만1000원)은 전남 신안산 구운 소금을 뿌려 내온다. 고기 두께가 두툼한 편이어서 볼륨감이 느껴진다. 볼륨감은 보기에 먹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고기의 육질과도 연관이 깊다. 살 속 깊숙이 육즙을 껴안고 있어서 씹을 때 한결 부드럽다. 특히, 지방이 적은 목살도 퍽퍽하지 않고 다른 집의 삼겹살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은 삼겹살보다 목살의 인기가 더 높은 편이다.
함께 내는 찬류는 가짓수도 많고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 깻잎과 갓김치와 콩나물·파 무침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와 짝을 이루는 반찬이다. 살짝 뿌린 치즈와 깐 귤이 돋보이는 샐러드는 마늘 소스로 맞을 냈다. 아삭하고 달착지근한 김치속과 절임배추는 웬만한 보쌈 집의 그것보다 낫다. 샐러드는 여성들이, 김치속과 절임배추는 남성들이 잘 먹는다.
여기에 마늘종 장아찌가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마늘종을 쪼갰다. 마늘을 잘 먹지 못하는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아주 잘 먹는다. 돼지고기 먹을 때 최고의 젓갈로 꼽는 갈치속젓도 갖추었다. 갈치속젓은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잘 달래고 어르고 마침내 오래 삭인 제 맛을 고기에 입힌다. 그리하여 고기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돼지고기와 찰떡궁합 김치 수제비, 안주 식사 해장까지
뭐니 뭐니 해도 찬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치 수제비였다. 다른 집에서는 구경조차 한 적이 없고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살다 보면 돌돔이나 낚으려고 낚싯줄을 드리웠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묵직한 다금바리가 걸릴 때가 있다. 직화 숯불에 구운 돼지 목살과 삼겹살을 맛보러 갔다가 생각지도 않은 김치수제비에 그만 맘을 빼앗겨버렸다. 직화숯불구이와 김치수제비의 조합은 또 다른 매력 거리였다.
고깃집에서는 후식으로 이런 저런 면류나 탕반 메뉴를 준비한다.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먹고 나면 느끼함이 남아 입과 뱃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냉면과 된장찌개가 많다. 막국수와 잔치국수, 갈비탕이나 육개장도 흔하다. 그런데 이 집은 그런 용도로 김치수제비를 내온다. 고기와 먹을 수 있도록 상차림을 할 때 다른 찬류와 함께 내놓는다. 콩나물에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인 뒤 여기에 수제비를 떠 넣었다. 김칫국에 수제비나 칼국수가 들어가면 밀가루 때문에 국물이 탁해지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멸치로 낸 맑은 국물은 개운하고 시원하다. 몇 번 국물을 떠먹으면 돼지고기 먹었던 기름진 입이 어느새 말끔해진다. 수제비는 표면이 매끄럽고 씹으면 쫀득하다. 수제비와 함께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잘게 썬 김치가 입맛을 돋운다. 살짝 얼큰한 국물은 칼칼해 소주 안주뿐 아니라, 해장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어린 시절, 겨우내 먹었던 김칫국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얼음판의 썰매타기나 논둑의 쥐불놀이도 시들해졌다. 그럴 무렵이면 매캐한 연기와 함께 김칫국 냄새가 온 동네에 퍼졌다. 반사적으로 침이 넘어갔고 새삼 고파진 배를 의식했다. 아이들은 각자 제 집으로 흩어져 김칫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렇게 매일 먹고도 김칫국은 질리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김칫국 맛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아왔다.
<진미육가>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433-3 (02)2216-7070
기고= 글 이정훈, 사진 임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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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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