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40년된 집 허물고 협소주택 지은 40대 부부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는 현대인이 늘면서 내가 꿈꾸던 집을 직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택을 단순한 거주가 아닌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삶에 꼭 맞는 집을 찾고 있다면 '주택의 재발견'이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입력 : 2015.11.13 09:50 | 수정 : 2015.11.18 09:44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A(여·46)씨 가족은 올 여름 용산구 이태원동 언덕길에 있는 연립주택에 둥지를 틀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동네이지만, 사람 사는 정취가 느껴져서 좋았다.
A씨 가족의 새 보금자리는 노후주택 여러 채가 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 연립주택 단지다. 1970년대 이른바 도시화로 직사각형 모양의 주택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연립주택이 많이 생겼다. A씨 가족의 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아주 오래된 정자에 기대어
빙고(憑古)하우스
쉬면서 걱정을 잊는다
총 2층으로 이뤄진 주택 1채당 건축면적은 약 14평으로 협소하다. A씨 가족은 40년도 넘은 노후주택을 허물고 지하 2평, 1층 14평, 2층 13평짜리 집을 새로 지었다. 연면적만 따지면 29평이다.
축대와 골조, 그리고 양 옆 집과 경계를 이루는 벽만 남기고 완전히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A씨 가족은 이태원이 요즘처럼 ‘핫’한 곳으로 뜨기 전인 2008년쯤 주택을 매입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이태원동 시세가 1.5배~2배 정도 뛰어, 인근 주택들은 평당 2500만~3000만원에 거래된다. 공사비는 2억원이 들었다. 설계는 건축·디자인 전문회사 노르딕브로스 디자인 커뮤니티(NBDC)가 맡았다.
바로 옆 집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기 때문에 공사 소음에 대한 걱정도 컸다. 같은 연립주택 단지 내 이웃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하고 공사에 대한 양해와 동의를 구했다.
그렇게 두 달간 공사를 진행한 끝에, 빛바랜 주택들 사이로 새하얀 집이 들어섰다. 집 이름은 ‘빙고(憑古)하우스’라고 지었다. ‘아주 오래된 정자에 기대어 쉬면서 걱정을 잊는다’는 뜻이다. 빙고하우스는 남쪽을 향하고 있어 하루 종일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집의 앞면에 1층부터 2층까지 높게 이어지는 유리창을 달아 햇빛이 하루 종일 내리쬔다.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길다란 복도를 따라, 주방과 거실까지 공간이 쭉 이어진다. 집 모양이 단순한 직사각형 형태이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서면 확 트여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조가 단순한 만큼, 가구도 단촐하다. 주방에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 넓은 ‘ㄷ’자 싱크대를 만들었다. 거실에는 네 식구가 오순도순 앉을 수 있는 식탁만 하나 두었다.
현관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다용도실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널찍한 마당은 없지만 1층에 커다란 다용도실을 만들어 수납 공간을 최대한 넓혔다.
계단은 뚫려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답답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다. 2평이 조금 넘는 지하는 천장이 낮아 허리를 조금 숙이고 내려가야 한다. 이곳에 책장과 책상을 가져다 두고 남편이 혼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설계를 맡은 신용환 NBDC 대표는 “협소주택이기 때문에 동선을 줄이되 수납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식탁, 다용도실 수납선반과 수납장, 방안 곳곳에 있는 수납공간까지 모두 더 하면 10 평 정도의 추가 수납공간을 확보한 셈”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이 조금씩 크면서 부부의 삶도 달라진다. 자녀들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 시절, 조금씩 독립성을 갖춰가는 10대,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뛰어드는 20대에 접어들 때마다 부모의 역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A씨 부부의 삶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제 10대 후반인 아이들은 곧 대학에 가고, 앞으로 10년 안에는 각자 제 할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래서 A씨 부부도 이태원 빙고하우스에 머무는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본다. 지금 40대 후반인 A씨 부부는 10년 후면 경기도 외곽지역으로 가서 마당이 있고 수풀이 우거진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빙고하우스는 설계 단계부터 앞으로 변할 가족의 생활을 고려했다. 나란히 놓여있는 고등학생 아들과 딸의 방이 그렇다. 자녀들의 방에는 침대와 옷장이 전부다. 일본의 초소형 호텔방에 들어온 느낌이다. 자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도 적다. 그래서 자녀들 방은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으로 꾸몄다.
지금은 네 식구가 사는 집이지만
신용환 NBDC 대표
10여년 뒤에는 자녀들만
살 집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겉으로 보면 딸과 아들의 방은 가운데 벽을 두고 대칭 구조다. 그러나 사실 벽처럼 보이는 것은 선반과 옷장이다. 옷장과 선반이 벽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중에 자녀들이 각각 대학에 진학하면, 방과 방 사이의 옷장, 선반만 철거해 1개의 넓은 방처럼 쓸 수 있다. 신용환 NBDC 대표는 “지금은 네 식구가 사는 집이지만 10여년 뒤에는 자녀들만 살 집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2층 자녀들 방에서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발코니가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재잘거리는 동네 아이들 목소리도 들린다. 발코니에는 건물 외벽 색깔과 같은 흰색 철조망을 설치했다. 담쟁이 넝쿨을 심을 예정이다. 넝쿨이 철조망을 따라 풍성하게 자라면 바깥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아, 사생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자녀들 방 건너편으로는 부부 침실이다. 부부 침실도 침대만 덩그러니 있다. 대부분의 생활을 1층 거실 겸 주방에서 하기 때문에 침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침실과 욕실은 미닫이 문으로 이어져있다. 열고 닫는 문 때문에 낭비하는 공간이 생기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방에 이렇게 옆으로 밀어서 여닫는 미닫이 문을 달았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는 A씨 부부는 해외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 온 다음 자가용을 사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길에 차를 끌고 올라오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주차 공간도 마땅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운전대를 잡고 시간을 보내는 대신 걷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면서 시간을 건설적으로 쓰자는 생각을 했다. 이동할 때 책을 읽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A씨는 “남편과 나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앞만 보고 많이 달려와 몇 년내 50대를 앞두고 있다”며 “이제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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