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영화로 떠나는 여행

남아공 와인 산지로 유명한 스텔렌보스.
홍콩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에는 온통 흑인과 인도인, 백인뿐이었고 동양 여자는 나 혼자였다. 그제야 아주 멀리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비행기 안에는 독특한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곱슬머리와 반들반들한 검은 피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줄루어와 인도어가 영어와 뒤섞여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요하네스버그는 하루에 120명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라는데 나는 혼자였다. 관광을 포기하고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텔에서 묵고 다음날 더반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도저히 길거리를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결정이 옳았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입증됐다. 더반의 시장터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더반 영화제에서 만난 폴란드 감독과 함께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키 큰 흑인 청년이 홀연히 나타나 백주에 감독의 비디오를 빼앗아 달아났다. 감독은 큰 덩치에 만만치 않은 기운을 가진 여성이었다. 죽어라 달아나는 그 흑인 청년을 기어이 쫓아가 실랑이 끝에 비디오를 찾았고 청년은 도망갔다. 나는 사색이 돼 그 자리에 얼어붙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는 표정으로 무심히 지나쳤다. 아프리카는 혼돈의 땅이었다.

폴란드 여성감독(그의 손에 빼앗은 비디오가 들려 있다)


디자인이 독특한 의자.
더반 영화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케이프타운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 같았다. 인도인 프로그래머에게 가이드해 줄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10년이 넘는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 디노와 그의 친구들과의 인연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디노는 별명이 다이노소어, 즉 공룡이었는데 190㎝를 넘는 장신의 백인 사내였다. 그에게는 인도나 흑인 친구들이 많았다. 남아공에 인도인이 많은 것은 사탕수수 노동자로 일한 인도인의 후예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노상의 공중전화.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는 주민.

구슬공예.

스피어 와인농장.

정상부가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

케이프타운 야경.

뛰노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