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竹抱石幽貞 閔園丁 긴 대나무가 돌을 감싸니 그윽하고 곧다 민원정 농묵의 댓잎을 계속 포개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묘사한 이 대나무는 담묵으로 처리된 바위와 어울려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그의 사군자는 근대로의 이행기를 살았던 한 불운한 지식인의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의 사실성을 뛰어넘어 대나무와 바위의 형상에 자신의 정신을 불어넣음으로써 사군자도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영익은 구한말 수구파의 대표적 인물로 자는 자상(子湘)·우흥(遇鴻), 호는 운미(芸楣)?원 정(園丁) 등을 썼으며 민태호(閔台鎬)의 아들로 민승호(閔升鎬)에의 양자이다. 고종 14년 (1877) 문과에 등제해 명성황후의 친정조카로 세도를 누렸으나 명성황후 시해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생애를 마쳤다. 시서(詩書)와 난죽(蘭竹)으로 상해 예원(藝園)을 압도하였던 당대 제일의 문인화가였다. 상해에서 민영익은 오창석(1844-1929), 포작영(1834-1911)등 당대 의 일류 문인묵객들을 초청하여 詩文집회를 베풀고 교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