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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년 시간의 박물관… 촉 규젤('너무 멋있다'는 터키어), 터키

산야초 2017. 2. 25. 00:06

10000년 시간의 박물관… 촉 규젤('너무 멋있다'는 터키어), 터키

  • 안탈리아(터키)=글·사진 어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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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으로는 계속 실패하는 순간이 있다. 가령 이번 터키 남서부 안탈리아-으스파르타 여행에서 만난 초등생 소녀 아이세(Ayse)의 수줍음을 묘사해야 하는 대목이 그랬다. 영어식 발음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아이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Isparta는 이스파르타가 아니라 으스파르타로 읽어야 한다

    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소녀의 젊은 아빠는 우리의 터키 일정을 도와줬던 메흐멧(Mehmet). 터키 여행의 마지막 밤, 메흐멧은 우리를 으스파르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잡아끌었다. 케밥과 전통술 라크로 흥건하게 취한 뒤의 즉흥 제안이었다. 지구 반 바퀴 너머 우리 조국에서는 대략 십수 년 전에 이 아름다운 전통이 '사멸'했다는 사실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물론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 밤 10시 넘어 도착한 그의 소박한 집에는 태어난 지 100일 갓 넘었다는 아이세의 남동생이 방싯거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술이 아니라 차(茶)로 타협했다. 차이(터키 홍차)를 끓여온 아이세의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했을 때, 히잡으로 머리를 가린 무슬림 젊은 엄마는 "이 아이를 축복해달라"며 보드랍게 웃었다. 그리고 차이에 설탕을 넣으라고 권했다. "달콤한 것을 먹어야 달콤한 말이 나온다"는 터키 속담을 인용하면서. 

     

    터키(Republic of Turkey)
    수도 : 앙카라(Ankara)
    GDP : 약 8,217억$(세계 17위)
    면적 : 약 783,562㎢(한반도의 약 3.5배)
    인구 : 약 8,160만명(세계 16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다. 페르시아, 아랍, 비잔틴, 오스만 문명과 서유럽 문명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나라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은데 터키인의 조상은 훈족과 투르크족(한자로 흉노, 돌궐)으로 알려져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웃에 살던 민족으로 우리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의 한나라, 수나라의 침입에 함께 대항하기도 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연합군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터키인들은 우리나라를 '칸카르데쉬'(터키어로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사갈라소스의 대리석 분수대. 피시디아 문명의 제1도시였던 사갈라소스는 그 자체가 경이였다.


    동양이며 동시에 서양인 1만년 역사의 시간박물관, 코발트블루의 푸른 해변을 700㎞나 품은 아름다운 자연, 유럽 최고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갖춘 럭셔리리조트, 그러면서도 순박함과 신뢰의 정(情)을 아직 잃지 않은 땅. 터키는 여러 얼굴을 자신 안에 품고 있었다.

    신들로 가득 찬 세계의 풍광

    우선 몇 가지 인문학적 전제부터. BC와 AD로 나뉘던 무렵의 소아시아만큼, 우리의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을 난감하게 만들었던 시공간적 배경이 또 있을까. 히타이트, 마케도니아, 팜필리아, 리디아, 헬레니즘… 영토사와 민족사가 엇갈리고 포개지며, 문명이 교차하고 운명이 뒤바뀌었던 전쟁의 땅. 차라리 요즘 젊은 독자에게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했던 영화 '트로이'나 근육질 사내들이 명멸하는 영화 '300'의 무대였다는 설명이 더 친절할지도 모르겠다.

     

    (위부터) 안탈리아의 구도심.
    이스탄불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이 지중해의 휴양도시는
    한겨울에도 기온이 섭씨 1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 고대 도시 시데(Side)의 거리 풍경.

    안탈리아 부근의 터키는 바로 그 무대였다. 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익살과 농담이 있다. 도시 A를 가도 광장과 성당의 반복이고, B를 들러도 다시 광장과 성당의 쳇바퀴라고. 안탈리아 주변의 도시에서는 그 반복의 주어가 원형극장과 아테네 신전, 그리고 목욕탕 등이다. 어느 도시를 가도 틀림없이, 예외 없이 자리하고 있다. 터키 문명 전문가인 존 개스킨의 '여행자를 위한 고전철학 가이드'(현암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큰 차이야 없겠지요. 당신도 유적 하나를 보고 나면, 결국 모든 유적을 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웃음)." 

     

    거칠게 요약하면 이 모든 문명은 헬레니즘(그리스문명)으로 압축된다. 유적들이 다 비슷한 이유도 그래서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부터 예수 탄생 직전 로마의 이집트 병합까지, 그리스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몸을 섞은 소아시아 모든 도시의 행정적·문화적 단위는 폴리스였다. 로마에서도, 아테네에서도, 안탈리아 주변의 고대 도시에서도 그 뼈대는 마찬가지. 대중의 회합, 재판, 연극, 축제, 공연이 가능한 원형 극장, 머리카락을 태워버릴 것 같은 지중해 태양의 위력을 뼈저리게 동의하게 만드는 (태양신) 아폴론 신전, 현대의 시장 개념인 아고라, 온탕과 냉탕을 고루 갖췄다는 대리석 목욕탕, 대리석으로 지은 혹은 바위산에 새긴 석관묘….


    안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략 차로 한두 시간 거리의 페르게(Perge), 아스펜도스(Aspendos), 시데(Side), 리미라(Lymyra), 사갈라소스(Sagalassos) 등 작은 도시들은 말 그대로 3000년~1만년 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간 박물관이었다. 그중에서도 해발 1500m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의 매력은 잊을 수 없다. 수많은 고대 도시 유적 중 단 하나만 봐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사글라소스를 추천하겠다.

    1500m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대 도시

    터키 최대의 휴양도시인 남부 안탈리아에서 정북 방향으로 1시간 20분을 달렸다. 100㎞를 달리는 동안 고도는 1500m가 높아졌고, 고원(高原)은 포플러나무와 침엽수림이 분할 지배 중이었다. 안탈리아에서는 수직으로 내리꽂는 지중해의 태양을 피해 다녀야 했다면, 사갈라소스는 한여름 고원의 청량함이 무엇인지를 윽박지르지 않고 알려주고 있었다.

     

    해발 1500m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
    한여름 고원의 청량함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1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등장하는 고대 도시. 히타이트, 피시디아,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 로마의 치하에서도 그들은 문명을 이어왔다고 했다. 특히 기원전 혹은 기원후 무렵의 피시디아 문명 시절이 전성기였다. 사갈라소소는 피시디아 문명의 제1 도시로 불렸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토굴(土窟)에서 밥과 잠을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라. 대리석으로 만든 원형극장과 거대한 규모의 사설 도서관, 신전, 분수대, 아고라를 건설하고 번성한 문명. 원형극장 수용 규모만 8000명. 존재 자체가 경이다. 

     

    6, 7세기의 연속된 대지진으로 땅속에 파묻혔던 사갈라소스 문명은 1990년 벨기에 루벤대학 교수팀의 발굴과 복원으로 지금 모습을 되찾았다. 아폴론 석상을 모신 대리석 분수대 옆에서 우뚝 솟아있는 자두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아직 채 익지 않은 푸른 자두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히타이트 시절에도,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도 자두는 이렇게 새콤했겠지. 1만년 전의 맛과 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간다. 신들로 가득 찬 세계의 풍광이 여기에 있다.

     

     

    지중해를 굽어보는 700㎞ 드라이브

    안탈리아 듀덴 폭포

    시간여행과 역사여행에서 돌아온다. 이제는 현대 도시의 안락과 터키의 축복받은 자연을 즐길 차례. 안탈리아는 연중 300일 이상 태양이 작열하는 곳이다. 게다가 안탈리아를 기점으로 좌우 350㎞, 합계 700㎞는 코발트블루 지중해를 한눈에 보며 달리는 해안도로. 패키지여행도 편하겠지만, 안탈리아 공항 등에서 렌터카로 해안도로 D-400을 질주해 볼 것을 소리 높여 추천한다. 

     

    지중해의 다도해라 불리는 케코바(Kekova)에서, 이문재의 시 '농담'이 절로 떠올랐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D-400을 달리다 보면 대략 20~30분마다 새로운 고대 도시를 만난다. '죽은 자들의 도시'라 불렸던 미라(Myra)에서는 바위에 집 형태의 석관 2000여기를 파 시신을 모셨고, 케코바에서는 투명한 지중해 아래로 바닷속에 가라앉은 리키아 문명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안탈리아로 귀환한다. 구도심인 칼레이치 항구(Kaeici-Yat Limani)에는 20~40인승 요트와 유람선이 즐비하다. 거창하게도 바다신의 이름을 가져온 40인승 요트 포세이돈에 올라타고 듀덴(Duden) 폭포를 향한 1시간 30분의 바다여행을 시작한다. 세일러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터키 청년이 와인과 달콤한 간식거리를 끊임없이 가져온다. 맞은편 요트 2층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던 백인 커플이 유연하게 손을 흔든다. 그 뒤로 절벽에서 바다로 40m를 떨어지는 듀덴 폭포가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절경이다. 지중해로 내리꽂는 자연의 경이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맞아. 폭포 저 뒤편으로 안탈리아 국제공항이 있었지. 축복받은 자연과 현대 도시의 만남이다.


    지중해의 다도해라 불리는 케코바

    안탈리아를 축으로 한 터키의 해변에는 500여개의 고급 리조트가 촘촘한 잎맥처럼 뻗어 있다. 우리에겐 조금 낯설지만 '올 인클루시브'(All-Inculsive) 형식. 레스토랑에서의 세 끼 식사와 바에서의 음료, 맥주, 방 안의 미니바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겨울에도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 유럽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휴양지에서, 동급 최저 수준의 경쟁력 있는 가격. 이 또한 터키의 매력이다.

    다시 아이세의 수줍은 미소를 떠올린다. 터키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인사는 '촉 규젤'이었다. "매우 예뻐요." 혹은 "아주 좋아요." 아이세와 이별하며 나눴던 인사 역시 "촉 규젤"이었다. 메흐멧 부부는 "달콤한 것을 먹어야 달콤한 말이 나온다"고 했다. 유럽의 향기와 아시아의 정이 포개진 민족,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인류 문명의 목격자. 메흐멧 부인의 강권으로 차이에 각설탕 하나를 더 넣었다. 이제 당신도, 언젠가는 터키!

     

    1. 쫄깃쫄깃한 맛이 특징인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2. 지중해식 샐러드
    3. 으스파르타 거리 풍경. 순박함과 신뢰의 정(情)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4. 리미라. 리키아의 고대 도시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5. 안탈리아 해변을 돌아보는 유람선
    6. 대중의 회합, 재판, 연극, 축제, 공연이 가능했던 원형 극장
    7. 안탈리아를 중심으로 주변 도시들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시간 박물관이다.
    8. 절벽에서 바다로 40m를 떨어지는 듀덴 폭포의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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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스타 리조트 올림포스 케이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