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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1번

산야초 2017. 5. 8. 00:08

Mozart,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467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1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Emil Gilels piano

Rudolf Barshai cond.

Moscow Chamber Orchestra 1959

 

 

영화 '엘비라 마디간'으로 유명해진 2악장

영화 <엘비라 마디간>. 1967년 작품인 이 스웨덴 영화는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불륜’을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 거기엔 여주인공 피아 데게르마르크의 청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과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아름다움이 한몫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고요한 호숫가에서 미끄러지듯 배를 타는 느낌, 풀밭에서 나비를 잡으며 뛰어다니는 엘비라 마디간의 순수한 모습은 모차르트의 이 곡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이자, 방방곡곡 유명하게 만든 성공적인 홍보 요인이기도 했다. 이제 영화가 나온 지 40년이 넘었고 점차 영화 <엘비라 마디간>과의 연관성보다는 이 곡이 피아노 협주곡의 명곡이라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점이 왔다고 하겠다.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아기자기한 대화, 아름다운 선율미가 일품이다.


모차르트가 1785년 2~3월 완성한 이 작품은 1785년에 나온 3개의 협주곡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20번 K.466>이 나온 지 불과 한 달 뒤 자신이 주최하는 예약 콘서트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독주 파트를 연주할 작품으로 작곡한 것이다. 이 곡은 기존의 협주곡 영역을 탈피해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교향악적으로 하나가 되는 내용을 지닌 충실한 편성으로 관현악법을 전개시켰다. 그 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20번>과의 구조상의 공통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주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인상은 단조에다가 어둡고 질풍노도와 같은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행진곡풍으로 시작하는 곡의 분위기, 끓어오르는 듯 희극적인 정서가 강한 피날레, 중간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아름다운 칸타빌레를 관철시키는 안단테, 곡의 무게중심이 완연하게 피아노 독주에 잡혀 있는 점을 보면, 모차르트가 전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에서 탈피하려 했던 사교계의 유흥음악 영역으로 다소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숨 막힐 듯 어둑어둑한 격정의 D단조에서 빠져나와 C장조란 맑고 투명한 조성을 고른 모차르트의 심리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의 악기를 금방 주조한 종처럼 마음먹은 대로 한껏 울려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겠다. 분명 독주자의 기교를 과시하고 있지만 결코 극단으로 빠지지 않는 균형감각과 중용이 돋보이며, 오케스트라와 독주악기가 주고받는 조화로운 모습은 협주곡의 두 가지 성격 가운데 하나인 ‘협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카덴차가 없는 것이 아쉽다. 1785년 3월 9일 빈에서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필 악보에는 1785년 2월로 나와 있다. 1785년 3월 10일 부르크 극장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초연됐는데, 성황리에 개최된 이 음악회에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참석해 그 성공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Géza Anda piano

Géza Anda cond.

Camerata Academica

1. Allegro maestoso

2. Andante

3. Allegro vivace assai

Mitzuko Uchida piano

Jeffrey Tate cond.

English Chamber Orchestra

1. Allegro maestoso

2. Andante

3. Allegro vivace assai


 

 

 

1악장 :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C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제1주제는 유니즌으로 행진곡을 연상케 하는 리듬으로 시작된다. 지속적으로 밝은 울림 가운데 총주로 제시부를 마치면 목관악기의 짧은 악구의 유도에 따른 독주 피아노가 제1주제를 제시한다. 제2주제의 선율은 2년 뒤 작곡된 <교향곡 40번 G단조 K.550>의 첫머리를 연상시키며 어두운 인상을 떨쳐내려는 듯 G장조로 돌아가 독주악기가 연주한다. <호른 협주곡 3번 K.447>과 유사한 선율이 흐르고 오케스트라의 각 성부가 충실한 에필로그를 거쳐 발전부로 들어간다. 이것은 현란한 피아노의 연주 기교 과시와 균형을 이룬다. 카덴차가 삽입되고 첫 부분 동기의 리듬에 의해 조용히 곡을 마치고 다음 악장인 안단테로 부드럽게 연결된다.


2악장 : 안단테 F장조 2/2박자, 3부 리트 형식

<엘비라 마디간>의 그 선율. 약음기를 낀 현이 노래하는 듯한 주제를 제시하며 독주가 그것을 이어받는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셋잇단음표의 박자는 중간부 짧은 3마디를 제외하면 악장 전체에서 한 번도 끊김이 없이 이어져 이색적이다. 피아노의 트릴로 제1부가 끝나면 D단조의 새로운 선율과 함께 2부로 들어간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점차 변화를 주긴 하지만 협주곡 20번에서와 같은 긴박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짧은 독주 경과부 패시지를 사이에 두고 제1부를 재현하는데, 으뜸조 3도 위의 Ab 장조로 신선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다 F장조로 돌아와 서두의 총주로 제시한 선율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나서 짧은 코다로 마친다.

 

2악장 선율이 사용된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


3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아사이 C장조 2/4박자, 발전부 없는 소나타 형식

밝고 떠들썩한 느낌을 주는 제1주제가 총주로 두 차례 반복되며 딸림화음 위의 페르마타에서 피아노 독주가 주제를 제시하면 빠른 악구의 부주제가 이어진다. 제1주제의 리듬을 사용한 패시지에서 관악기가 제2주제를 보여주고 이것은 피아노로 반복된다. 오케스트라가 경쾌한 리듬을 지속하는 가운데 독주가 막힘없는 급속한 음계로 대응하고 에필로그를 거쳐 발전부 없이 재현부로 직접 들어간다. 제1주제가 독주, 총주 순으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를 오간다. 에필로그를 거쳐 카덴차에 도달하고, 피날레에서는 피아노가 비상하듯 상승 음계로 화려하게 곡을 마무리 짓는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사랑하는 여자에게 겨눈 총. 그러나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남자. 그때 그들 앞에 나타난 한 마리 나비. 여자는 나비를 쫓아다니다 양손에 나비를 담아 올리는 순간 화면은 멈춘다. 그리고 두 발의 총성...

 

스웨덴의 보 비더버그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1967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두 가지 감명을 깊이 새겼는데, 하나는 여주인공 엘비라 마디간 역을 맡은 피아 데게르마르크(피아 디거마크로도 적던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의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다.


덴마크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엘비라는 스웨덴 순회공연 도중 군장교인 식스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식스틴은 이미 아내와 두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지만 엘비라는 사회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식스틴을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식스틴이 시비 끝에 사람을 죽이는 사고가 발생하고, 정당방위였음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 두려워 식스틴은 엘비라와 함께 도망친다.


식스틴은 탈영병이라서 취직을 못하고 엘비라 마디간이 춤을 춰서 돈을 구하지만 식스틴을 괴롭히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엘비라 마디간은 들과 산에서 열매나 풀을 뜯어서 먹는다. 풀을 뜯어 먹다가 그걸 게워내는 엘비라 마디간. 그녀가 말한다. “사랑이 빵을 주나요?” 식스틴은 탈영병 신세라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화를 낸다. 그리고 둘은 토라져 강가에서 떨어져 앉는다. 

 


이때 식스틴이 수첩의 종이를 찢어 강물에 띄워 보낸다.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던 엘비라 마디간의 시야에 하얀 메모지가 들어오고 거기에 식스틴이 쓴 ‘용서해줘!’라는 말에 둘은 화해한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너무나 유명해서 90년도 중반에 개봉한 <굿바이 마이 프랜드>라는 영화에서도 오마주로 쓰인다. 군대라는 조직과 전통적인 가족의 울타리를 깨고 사랑의 도피행을 택한 두 사람은 잠깐 동안 사랑의 기쁨을 맛보게 되지만 결국 생활의 어려움과 사회적인 냉대에 좌절하고 만다. 먹을 것조차 떨어져 굶주리던 엘비라와 식스틴은 잔디밭에서 최후의 만찬을 함께 하고는 아름다웠던 그들의 사랑을 끝낸다.

 

다른 날 태어났지만 1889년 6월 20일 한날 죽은 식스틴과 엘비라 마디간의 실제 사진. 35살과 21살의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두 사람은 영화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한 쌍이 되었다. 불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지만 사랑을 위해 끝까지 갔던 두 사람의 진심과 용기를 기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죽음을 맞이한 자리에 만든 그들의 무덤을 많이 찾고 있다.


출연 당시 17살이었던 스웨덴의 발레리나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으며 196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엘비라 마디간으로 사람들에게 남겨놓은 그녀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인지 이 영화 출연 후에 그녀는 거식증과 약물중독으로 불운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후에도 계속 영화 출연을 제의받지만 엘비라 마디간의 이미지를 간직하기 위하여 평생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하였다.


이 영화 OST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게자 안다(1921-1976)는 헝가리 출신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품 해석에서 탁월한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