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Verdi, Rigoletto)
<광대 리골레토는 운명의 장난으로 딸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캐릭터>
Verdi, Rigoletto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Giuseppe Verdi 1813-1901 Rigoletto: Ingvar Wixell Gilda: Edita Gruberova Duca di Mantova: Luciano Pavarotti Sparafucile: Victoria Vergara Maddalena: Ferruccio Furlanetto Chor der Wiener Staatsoper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Riccardo Chailly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런 노래 아시죠? 원래 이탈리아어 가사에서는 ‘깃털’이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갈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이라는 아리아는 아주 가볍고 명랑하게 들리지만,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여러 걸작 오페라 가운데서도 가장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작품 이다. 16세기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궁정 광대였던 트리불레를 주인공으로 삼아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원작 드라마 <왕의 환락>(Le Roi s'amuse)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희곡이다. 이 작품은 군주와 귀족들이 벌 받을 위험 없이 온갖 방탕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신분사회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이었다. 1832년 프랑스 초연 당일, 꼽추 광대가 왕의 암살을 계획했다는 전복적인 설정을 두고 귀족과 평민 관객의 격한 충돌을 불러온 이 연극은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상연이 금지되었다. 베르디는 위고의 희곡을 읽고 흥분한 나머지 이 작품을 꼭 오페라로 만들기로 작정하고는,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대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광대 리골레토는 운명의 장난으로 딸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캐릭터이다.
만토바 공작의 궁정 광대 리골레토는 젊은 공작의 호색적인 성격을 부추겨 궁정 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을 농락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마저 공작이 유혹해 겁탈하자 분노한 그는 자객을 시켜 공작을 죽이려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사랑하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에 대신 뛰어들고, 리골레토는 자루에 든 공작의 시신을 강에 버리려다가 그것이 공작이 아닌 자기 딸임을 알게 된다. 농락당한 딸의 명예를 위해 싸우다 리골레토에게 조롱을 당한 귀족이 그에게 퍼부은 저주가 실현된 것이다.
Leo Nucci/Nello Santi - Verdi's opera 'Rigoletto' 2006 Rigoletto: Leo Nucci Gilda: Elena Mosuc Duca di Mantova: Piotr Beczala Sparafucile: László Polgár Maddalena: Katharina Peetz Chor des Opernhauses Zürich Orchester der Oper Zürich Conductor: Nello Santi Opernhaus Zürich, 2006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의 공연입니다. 위의 '리골레토'가 영화판으로 각색한 것과 비교해 무대에서 연출되는 '리골레토'이므로 종막 후 무대인사도 있어 오페라 공연의 호흡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독일어 자막, 공연시간 2시간 7분.
검열 때문에 제목과 주인공이 달라진 오페라 그러나 오페라 무대 위에서 왕의 암살을 보여주는 일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불가능했다. 원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대본가 피아베가 미리 다 삭제했는데도, 그 무렵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은 이 대본에 ‘혁명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당연히 공연 허가는 받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베르디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어 원작의 무대를 바꾸기로 했다.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둔갑했다. 어디선가 대가 끊겨 베르디 시대에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 만토바 공작의 가문이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것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이 공작을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열관들도 별 말이 없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제목도 원래 ‘저주’(La Maledizione)라고 붙였지만 검열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의 이름을 따 ‘리골레토’로 바꿔야 했다. ‘저주’라는 제목이 훨씬 더 관객을 끌 것 같았지만 말이다.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비련의 캐릭터이다.
위고의 희곡 주인공의 이름은 ‘트리불레’이고 여기서 ‘트리불레토’라는 제목이 처음 제시되었지만 베르디는 이에 반대했다. “아니, 그건 아니오. 이름에 우스꽝스러운 면과 조롱이 섞여 있어야 합니다. 파리에 널리 퍼져 있는 표현이 생각나는데... ‘리골레’. 그래, 맞아, ‘리골레토’로 합시다.” ‘리골레’(rigoler)는 프랑스어로 ‘재미있게 놀다, 장난치다, 농담하다, 비웃다’라는 뜻이다.
위고의 원작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베르디의 오페라는 구구절절이 담아내지 못했다. 검열 당국의 감시 때문이기도 하고 오페라라는 무대예술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탁월한 극적 효과는, 긴 대사 없이도 오페라로 사회를 비판하는 극이 가능함을 충분히 보여준다. 자신의 이 희곡이 오페라로 작곡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원작자 빅토르 위고까지도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4중창을 보고 나서는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는 말로 감탄을 표했다고 한다. <리골레토>는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서정적인 선율과 가수의 목소리 기교가 핵심을 이룬 오페라)를 계승했던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끝 부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면서,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실제로 <리골레토>는 벨칸토적 선율미가 넘치는 동시에, 벨칸토 오페라에서 흔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설득력을 함께 지니고 있다.
Domingo/Zubin Mehta - Verdi's opera 'Rigoletto' 2010 Rigoletto: Placido Domingo Gilda: Julia Novikova Duca di Mantova: Vittorio Grigolo Sparafucile: Ruggero Raimondi Maddalena: Nino Surguladze Orchestra Sinfonica Nazionale della RAI Conductor: Zubin Mehta 2010.09.01
이탈리아의 고도 만토바를 배경으로 만든 2010년 영화판입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70 고희 나이로 광대 역을 맡았네요. 대단합니다!
경박한 테너, 순수한 소프라노, 극적인 바리톤
베르디의 여러 오페라가 그러하듯 <리골레토>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명의 핵심인물이 있다. 테너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베르디는 경쾌하고 표피적인 음악을 만들어 주었다(‘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여자의 마음’ 등).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인 돈 조반니의 노래들이 그러하듯, 공작의 아리아들은 유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별 깊이가 없다. ▶만토바 공작과 여주인공 질다의 무대의상. 1851년 그림
소프라노 주인공인 10대 처녀 질다의 노래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듯한 그의 삶에 걸맞게 순수하고 단조롭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로 아버지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하루밤새 성숙한 질다의 변모를 음악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벨칸토 스타일의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 Caro nome’과 격정적이고 극적인 ‘복수의 이중창 Si, vendetta’을 동시에 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젊고 매력 있는 소프라노와 테너에 가려져 바리톤 주인공 리골레토의 비중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이 격정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가창을 들려주는 배역이기 때문이다(‘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Cortigiani, vil razza dannata’).
주인공이 꼽추라는 장애를 지녔다는 설정 자체가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저항을 암시하는데,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공작과 귀족들을 향해 리골레토는 “내가 사악하다면 그건 다 너희들이 못돼먹어서다”라고 독백한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질다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니다. 질다는 꼭 첫사랑에 눈이 멀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에 절망한 나머지 어른이 되는 문턱에서 삶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깊은 우울이 이 드라마 속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도 역시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다시 ‘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면,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놓고 꼭꼭 숨겨두었다. 마침내 공연 당일, 무대에서 테너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이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반한 관객들은 오페라가 끝난 뒤 다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갔고, 이 노래는 다음날 당장 히트곡이 되었다.
Verdi's Opera aria 'La Donna e movile' from Rigoletto 베르디 / 오페라 아리아 '여자의 마음'
La donne e mobile / Pavarotti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中 제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 제3막에 나오는 아리아로 호색한 만토바 공작이 군복 차림으로 자객 스파라푸칠레의 주막에서 의기양양하게 부르는 노래이다. 변하기 쉬운 여자의 마음을 노래한 것으로 이 오페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이다. 제1막에서 청순한 아이다가 부르는 소프라노 아리아 〈그리운 이름이여(Caro nomo)〉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곡이다.
내 용
질다가 만토바 공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아차린 자객 스파라푸칠레와 막달레나 남매는 어떻게 해서든 만토바 공작의 환심을 사려 든다. 마침 만토바 공작이 민쵸 강변에 있는 스파라푸칠레의 주막에 공작이 군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스파라푸칠레에게 방과 술을 주문하는데, 스파라푸칠레가 사라지면 공작은 그 유명한 칸초네인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의기양양하게 노래한다. 자객의 누이동생인 막달레나가 곱게 화장을 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자 공작은 그녀에게 가서 포옹하려 하지만 그녀는 살짝 몸을 피해 버린다. 스파라푸칠레가 몰래 밖으로 나가고 방안에 단 둘이 있게 된 공작은 막달레나를 유혹한다.
이 때 방안의 공작과 막달레나, 집밖의 질다와 리골레토가 제각기의 감정으로 부르는 4중 〈Un di se ben rammentomi〉도 널리 알려진 곡이다. 공작은 흐뭇한듯이 잠자리에 들면서 앞서 노래한 〈여자의 마음〉을 한번 더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골레토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다가 죽게 된 딸 질다의 시체가 든 자루를 메고 갈 때에도 공작이 부르는 〈여자의 마음〉이 들려온다.
Opera Rigoletto
베르디 - 리골레토 (Rigoletto) Giuseppe Fortunino F. Verdi (1813∼1901)
작품해설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 1813년이란 해는 잊을 수 없는 해이다. 이 해 5월 22일에 독일에서는 바그너가 태어났고,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0월 10일에는 이탈리아에서 베르디가 태어났다. 오페라 역사상에서 훌륭한 금자탑을 세운 이 두 거성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주세페 베르디는 포 강이 흐르는 파르마 평야의 론콜레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파르마시는 북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동남쪽 70마일 지점에 위치하는 소도시인데, 론콜레라는 이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베르디의 집은 여인숙을 하면서 식료품과 술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을을 지나가는 많은 연예인들과 음악가들이 거쳐가곤 했다. 베르디는 어렸을때부터 이들을 통해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음악에 대한 비상한 감각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미 10세때에 선생님을 대신하여 마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베르디가 태어났을 무렵의 이탈리아는 지금처럼 통일된 국가는 아니었고 크고 작은 여러나라들이 영주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여기서 1815년경의 지도를 잠깐 소개하면 이탈리아는 북으로부터 사르디니아 왕국, 롬바르드-베네트 왕국, 파르마 공국, 모데나 공국, 류카 공국, 산마리노 공화국, 토스카나 대공국, 교회국가, 시칠리아 왕국등이 병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르디가 살던 시대는 이와같은 봉건사회가 점차 와해되면서 근대적인 통일국가가 탄생되는 격동기였다. 베르디의 생애와 그의 음악을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이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지중해에 장화모양으로 돌출한 이탈리아가 큰 물결처럼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848년 3월, 프랑스 2월혁명의 여파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실각함으로써 메테르니히 체제가 붕괴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밀라노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격심한 전투 끝에 오스트리아 군대는 철수했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밀라노의 5일전투" 이다. 이어서 베네치아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다니엘레 마닌은 공화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해방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졌고, 사르디니아 왕 알베르토를 비롯하여 대 정치가 카바르, 독립운동의 영웅 가리발디등이 잇달아 등장함으로써 드디어 1861년 통일국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베르디의 창작기를 3시기로 나눈다면 "산 보니파치오 백작 오베르토" 로부터 "스티펠리오" 까지를 제1기, "리골레토" 로부터 "돈카를로" 까지를 제2기, "아이다" 로부터 마지막의 "팔스타프" 까지를 제3기로 볼 수 있다. 베르디는 개정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26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초의 성공을 거둔 것이 이 "리골레토" 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에르나니" 등 성공작은 있었지만, 그가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구축한 것은 이 "리골레토" 였다.
"리골레토" 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빅토르 위고가 30세 때 쓴 희곡 "왕의 환락" 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왕의 환락" 은 왕의 방탕함을 다룬것으로서, 초연 때 단 하루만의 상연으로만으로도 상연금지처분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열 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베르디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있던 프란체스코 피아베가 심혈을 기울여 쓴 대본은 당국으로부터 무참히도 상연금지의 선고를 받고 말았다. 놀란 베르디와 피아베는 팔방으로 손을 쓴 결과 보안장관이었던 카를로 마르켈로가 대단한 음악애호가이자 베르디의 지지세력이었기때문에 "이름과 배역, 그리고 장면을 변경한다" 는 조건하에 상연이 허락되었다. 그래서 베르디는 불과 40일 동안에 작곡을 완성했다.
그러한 경위로 말미암아 이 오페라의 무대는 파리에서 북이탈리아의 만토바로 옮겨졌고, 인물도 프랑스와 1세가 만토바 공작, 꼽추인 트리부레가 리골레토, 그의 딸 블랑쇠가 질다, 자객 살타바타르가 스파라푸칠레로 둔갑했으며, 오페라 제목도 "저주" 로부터 "리골레토" 로 바뀌었다. 초연은 1851년 (38세) 3월 11일 베네치아의 피니체 극장에서 행해져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베르디는 극장측으로부터 파격적인 사례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 "리골레토" 에서 크게 비약했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 극적인 음악에 있다. 무미건조한 레치타티보를 갖지 않고, 일관해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실려 노래되는 이 오페라는 특히 마지막의 극적인 효과가 걸출하다. 폭풍우속의 비극, 부녀의 애절한 사별의 장면은 듣는이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속으로 휘몰아 넣는다. 스트리트필드(Streatacld-Dent)는 그의 명저 "오페라 독본" 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마지막 막은 그의 성격표현이 걸출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공작의 명랑하고 경쾌한칸쪼네, 등장인물 4명의 각각 다른 성격을 놀라울만큼 완전무결한 기고로써 그려낸 4중창, 그처절한 폭풍우장면등의 음악은, 그가 이제까지 도달치 못했던, 아니 20년후인 "아이다" 의 시대까지 두 번 다시는 도달치 못했던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원작자 위고는 이 오페라가 상연되자마자, 그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판까지 걸었으나, 결국 패소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로는 거꾸로 이 오페라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언젠가 "베르디의 음악은 희곡으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 전해 준다" 고 말하면서 유명한 4중창을 절찬했다고 전한다.
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만토바 공작이 제4막에 노래하는 유명한 "여자의 마음" 은 초연되기 3일전까지 극비에 붙여졌다. 그 때 공작 역을 맡았던 가수 미라테는 연습이 모자랄까 싶어 걱정된 나머지 베르디에게 애걸하다시피하여 가까스로 악보를 받아갔는데, 베르디는 그 때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를 절대로 사람있는 곳에서는 부르지 말아주게. 아마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온 거리에 퍼질 테니까..." 과연 그의 말대로, 이 노래는 초연되자마자 전 베네치아 시내에 퍼져서 시민들이 모두 불러댔다고 한다.
등장인물
리골레토 (Br) - 만토바 공작의 광대 질다 (S) - 리골레토의 딸 만토바 공작 (T) - 영주 스파라푸칠레 (Bs) - 자객 맛달레나 (Ms) - 스파라푸칠레의 누이동생 몬테로네 백작 (Br) 체프라노 백작 (Bs) 체프라노 백작부인 (S) 보르사 (T)- 만토바의 신하 바를로 (Br)- 만토바의 신하 죠반나 (Ms)- 질다의 하녀 그밖에 귀족, 가신, 동자, 시민 등 다수
줄거리
주역에 테너나 소프라노등 화려한 음성을 쓰지않고 텁텁한 바리톤을 기용한것으로 볼 때 드라마를 중시하는 베르디의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이 무대인 만토바는 북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동남쪽에 있는 인구 6만 정도의 도시로서, 16세기 중엽에 가장 융성했다고 한다. 어두운 비극을 암시하는듯한 짧은 전주곡으로 시작된다. 그 중심선율은 "저주의 동기" 라고 불리는 것으로, 리골레토가 몬테로네 백작의 저주의 말을 회상한때에는 항상 이 동기가 연주된다. 음악은 알레그로 콘 브리오로 바뀌고, 명랑한 기분과 함께 막이 오른다.
제 1 막
만토바 공작 저택의 호화로운 방에서 지금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 만토바 공작이 귀족 보르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타난다. 호색가이고 또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공작이 최근에 거둔 수확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내용이란 이렇다. 3개월쯤 전에 교회에서 예쁜 처녀를 보았는데 살고 있는 곳도 확인했으며 집은 변두리의 한적한 데에 있다. 그리고 밤마다 웬 남자가 오는데, 그 사나이가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빨리 손을 써서 그 아가씨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귀부인과 기사의 한 무리가 그의 앞을 지나간다. 공작은 지체없이 그 귀부인들 가운데서 가장 예쁜 체프라노 백작부인에게 눈짓을 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잘 알려진 아리아 "이 여자도, 저 여자도 (Questa o quella)" 를 노래한다.
이 여자도, 저 여자도 모두가 다 미인들뿐 나는 모두에게 마음이 있다 오늘의 미소가 내일은 타인 어찌 하나에만 맘을 두랴 사랑은 자유로운 것
과연 공작의 노래답다. 리듬도 경쾌하고 선율도 즐거운 노래다.공작은 체프라노 백작부인에게 치근댄다. 부인은 "전 유부녀에요, 제발 가만히 놔두세요" 하고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공작은 부인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이 부분은 우아한 미뉴엣이다. 그들은 별실로 사라진다. 이 모습을 지켜본 체프라노 백작은 질투에 불탄다. 거기에 꼽추인 어릿광대 리골레토가 나타나서 짓궂은 눈초리로 체프라노 백작을 놀려댄다. 백작은 화가 나서 공작의 뒤를 쫓는다. 뒤따라 리골레토도 퇴장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작의 신하 마를로가 나타나서 "여보게들, 희한한 뉴스가 있다네" 하면서 모두를 불러모아 놓고, "사실은 리골레토란 놈이 변두리에다 애인을 두고 있다네" 하므로 모두 놀란다. 거기에 공작과 리골레토가 나타난다. 공작이 "백작부인은 선녀같이 아름답지만, 그 남편이 방해야" 하고 말하므로, 리골레토는 "그렇다면 백작을 감옥에 처넣든가, 아니면 죄를 씌워서 목을 날려버리면 되잖겠읍니까" 하고 큰소리로 외치므로, 그 말을 들은 백작은 물론이요, 거기 있던 귀족들 모두가 놀란다.
그 때 느닷없이 늙은 몬테로네 백작이 나타나서는, 자기의 딸을 농락했다고 공작에게 싸움을 건다. 공작은 적당히 능청을 떨다가 그 상대를 리골레토에게 넘기고 리골레토는 여전히 사람을 놀리는 태도로 백작을 대한다. 화가 치민 백작은 "어버이의 고통을 비웃는 이 못된 놈아. 네놈도 저주해 줄 테다" 하고 고함을 지른다. 그 저주하는 말에 리골레토는 내심 섬짓하다. 공작은 냉랭한 태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백작을 감옥에 처 넣으라고 명령한다. 위병이 나타나서 곧 백작을 체포하여 끌고나간다. "꼭 저주를 받을 것이다" 고 외치는 백작, "오, 저 두려운 저주..." 하면서 어깨를 움츠리는 리골레토, 을씨년스러운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더불어 장이 바뀐다.
장면이 바뀌어서 리골레토가 그의 예쁜 딸을 숨겨 두고있는 변두리의 쓸쓸한 집이 나타난다. 어두컴컴한 밤이다. 오솔길을 따라 왼쪽에 집이 있고, 높은벽이 길과 뜰을 막고 있다. 벽에는 문이 있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리골레토가 나타나고, 그 뒤를 스파라푸칠레가 따르고 있다. 리골레토가 "나를 저주하는 놈이 있다" 고 중얼대자 갑자기 나타난 스파라푸칠레가 그를 불러 세운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직업인데, 무슨 볼 일이 없겠는가" 하고 말한다. 리골레토는 일단 귀족을 한 사람 죽이는데 얼마를 줘야 하느냐고 묻고 그의 주소와 이름을 물은 뒤 헤어진다. 리골레토는 사라지는 스파라푸칠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리아 "두 사람은 똑같다 (Pari siamo)" 를 노래한다.
두 사람은 마찬가지 인간 저 놈은 칼로 사람을 죽이고 나는 혀로 사람을 죽인다. 나는 웃음을 만들어 내고 저놈은 죽음을 만들어 낸다. 오, 남이 시켜서 지어내는 웃음 하지만 그 노인의 저주는 내 몸을 갈기갈기 찢는구나...
집에 들어서자, 딸 질다가 품에 안긴다. 리골레토는 딸을 부둥켜 안고 "오, 사랑하는 딸아! 너 없이는 못살겠구나. 너는 나의 무한한 기쁨!" 하고 외친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2중창은 부녀간의 사랑을 노래한다.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질다가 그 이유를 묻는다. 리골레토는 "네 일이 걱정이 되서 그러는데, 어디 나간 적이 없느냐" 고 묻는다. 질다는 "교회에 간 것 말고는 아무데도 안 나갔어요" 라고 대답한다. 딸이 어머니 이야기를 묻자, 그는 "네 어미는 죽었다. 너만이 나의 보람이다" 라고만 말할뿐이다. 질다가 아버지의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는 "쓸데없는 말을 묻는구나, 네 아버지만으로 족하니, 내 곁을 떠나지 말거라" 하고 말한다.두 사람의 중창이 계속된다.
질다는 3개월 동안이나 여기서 살면서 거리의 일은 전혀 모르니, 밖에 나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리골레토는 놀라서, 안된다고 말린다. 그는 혼잣말로 누군가가 낌새를 알아차린거나 아닐까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하녀 죠반나를 부른다. 리골레토는 죠반나에게 누가 오지 않았더냐고 묻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말한다.
그가 문밖을 내다보는 틈에 학생으로 변장한 공작이 뜰안으로 물래 잠입하여 뒤뜰에 숨는다. 리골레토는 죠반나에게 "교회에 갈 때 누가 뒤쫓아 오지 않았느냐"고 묻고 죠반나는 "아뇨, 아무도..." 하고 대답하지만, 그것을 엿본 공작은 그가 리골레토임을 발견하고 깜짝놀란다. 리골레토는 죠반나에게, "누가 오든지 문을 열어서는 안된다" 고 말한다. 그녀가 "공작님이 오셔도 말입니까?" 하고묻자, 그는 "물론이다" 고 대답하고 딸과 헤어져서 밖으로 나간다. 이때서야 공작은 비로소 질다가 리골레토의 딸임을 알게 된다.
사랑을 하고 있는 질다는 죠반나에게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는다. 틈을 엿보던 공작은 죠반나에게 돈을 쥐어주고 물러가게한 다음 질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이 때 부르는 노래가 "사랑은 마음의 태양" 이다. 질다는 놀라서 죠반나를 부르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질다는 그녀앞에 나타난 이 대담한 청년이, 교회에서 만난 뒤로 꿈에서까지 보는 연인임을 알고 기뻐한다. 두 사람이 사랑의 2중창을 노래한다. 질다는 그의 이름을 묻는다.
이 때 문밖에서 체프라노 백작과 보르사가 지나가면서 "바로 여기다" 하고 속삭인다, 공작은 "저의 이름은 괄티에르 말데, 가난한 학생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그 때 죠반나가 돌아와서, 문밖에서 발소리가 난다고 말한다. 질다는 "틀림없이 아버지일 거예요, 얼른 이분을 문밖으로 모셔요" 하고 말한다. 두 사람은 사랑의 맹세를 다진 뒤에 공작은 죠반나를 따라 나간다.
혼자남은 질다는 등불을 들고 테라스에서 유명한 아리아 "그리운 그 이름 (Caro nome)" 을 노래한다. 이것은 순정에 사무친 처녀의 연정을 노래한 명가로서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잘 발휘된다. 질다의 모습을 본 보르사와 체프라노 백작은 "저것이 문제의 계집인가", "과연 아름답다. 요정이 아니면 천사라고 할 만하다" 고 탄복한다. 질다는 집 안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리골레토가 침울한 표정으로 그곳에 나타난다. 체프라노 백작은 리골레토에 대한 증오때문에 그를 죽이자고 말하지만, 보르사는 더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재미나는 모험을 하세. 모두들 체프라노 부인을 유괴하러 가세" 하고 말한다. 리골레토에게도 묘한 말로 꾀어서 함께 가자고 말한 뒤에, 가면을 씌워서 두 눈을 못보게 만든다. 그러는동안에 몇 사람은 담장을 타고넘어 집안에 들어가서 손수건으로 질다에게 재갈을 물린 뒤에 떠메고 나온다.
일동이 사라지자 갑자기 조용해졌으므로, 리골레토는 얼른 눈가리개를 벗어던진다. 그러자 발밑에 떨어져있는 질다의 손수건을 집는다. 마당에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죠반나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다. 리골레토는 그제야 속은 줄을 알고 "질다, 질다야, 오, 그 저주가..." 하고 외치면서 그 자리에 쓰러진다.
제 2 막
템포가 빠른 전주곡으로 막이 오른다. 무대는 만토바 공작 저택의 밀실이다. 벽에는 공작부처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공작이 침울한 얼굴로 나타나서 애인인 질다가 갑자기 유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픔의 노래를 부른다. 이 아리아는 "그대의 눈물이 보일 것 같다 (Parmi veder le lagrima)" 로 알려져있다.
그 사랑스러운 속눈썹에서 눈물 듣는 것이 보이는구나 그녀는 어려움을 당하면서 괄티에르를 찾았을 것인데... 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너를 구원하지 못하였구나
거기에 마룰로, 체프라노등 귀족들이 나타나서 장한일을 했다는듯이 리골레토의 애인을 유괴해 왔다고 말한다. "어디서?" 하고 묻는말에 "변두리의 그의 집에서" 라고 대답하므로, 순간 공작은 유괴되었다는 애인이 질다임을 확인하고 기뻐한다. 귀족들의 합창이 그 경위를 노래한다. 공작은 희색이 만연하여 질다가 갇힌방으로 들어간다.
음악이 경쾌해지면서 리골레토가 등장한다. 그는 딸을 빼앗긴 고통을 되도록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짐짓 명랑한체한다. 그도 어릿광대인지라 귀족들의 희롱을 적당히 받아넘기며 딸이 갇힌 곳을 알아내려고 한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꾹 참고 있다. 이 때 동자가 나타나서 공작부인이 공작을 모셔오랍신다고 말하지만, 귀족들은 공작이 지금 쉬고 있다느니, 사냥을 나가고 없다느니 핑계를 댄다. 여기서 리골레토는 분노를 터뜨려서 "내 딸을 내놓으라..." 고 외친다. 이때서야 비로소 귀족들은 리골레토의 애인인 줄만 알았던 그 여자가 실은 그의 진짜 딸임을 알고 깜짝놀란다.
이 때 리골레토는 귀족들에게 "악당들!" 하고 욕하며 딸을 내놓으라고 문을 열라고 대들지만, 그 분노는 점점 슬픔으로 변하여 마룰로에게 애원한다. 이 때 그가 부르는 아리아가 "신하들이여!..." 이다. 분노에서 슬픔으로 변해가는 곡의 흐름이 압권이다. 여기서 리골레토의 역할은 그 절정에 달하며 이 오페라에서 가장 볼 만한 대목이다.
그러자 공작의 방문이 열리면서 뒹굴듯이 질다가 튀어나와 아버지 리골레토의 가슴에 안긴다. 놀란 귀족들이 당황하여 그 자리를 뜨자, 질다는 공작과의 경위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이야기한다. 이 때 부르는 아리아가 "축제일에는 언제나...." 이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리골레토는, 그래도 상냥하게 딸을 어루만지면서 노래한다.
울어라, 울어라, 내 딸아! 눈물로 마음의 시름을 씻으려므나 이 불행은 그 모두가 이 아버지가 불러들인 것을...
부녀간의 정이 듬뿍담긴 아름다운 노래다. 두 사람이 그곳을 뜨려할 때, 위병들에게 호송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몬테로네 백작이 지나간다. 그는 공작의 초상화를 보면서 저주의 말을 뱉는다. 그것을 본 리골레토는 "이 원수는 기어코 갚고 말테다!..." 하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제 3 막
민초 강변에 있는 스파라푸칠레의 집. 왼쪽에는 퇴락한 2층집이 객석쪽을 향하고 무대 중앙은 벽으로 막히고 그 오른쪽은 쓸쓸한 민초강변이 된다. 한꺼번에 두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스파라푸칠레는 요염한 자태의 누이동생 맛달레나와 함께 살면서, 그녀가 끌고 온 손님들로부터 금품도 빼앗고 때로는 죽이기도 한다. 스파라푸칠레는 집안에서 가죽부대를 깁고 있고, 밖에는 질다와 리골레토가 지키고 있다. 리골레토는 여기서 자객 스파라푸칠레로 하여금 공작을 죽이게 할 참이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아직도 그를 단념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질다는 언제까지나 그를 사랑한다고 대답하며, 공작을 죽이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아버지는 "만약 그가 너를 배반해도 사랑하겠느냐?" 고 묻는다. 그는 여기서 바람을 피우는 공작의 모양을 딸에게 보임으로써 그를 단념케 하려는 심산이다. 기다릴 것도 없이 공작이 군복차림으로 늠름하게 나타난다. 이 때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을 부른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눈물을 흘리며 방긋 웃는 얼굴로 거짓말로써 속일 뿐이리...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은 변합니다
이 노래 속에는 공작의 여성관이 아주 잘 나타나있다. 스파라푸칠레는 맛달레나에게 공작의 술상대를 맡겨놓고, 밖으로 나와서 리골레토와 의논을 한다. 그리고 강쪽으로 사라진다.리골레토는 질다에게 벽구멍을 통해 집안을 엿보게 한다. 집 안에서는 공작이 맛달레나에게 한창 수작을 걸고 있다. 그것을 보고 질다는 절망에 빠진다. 집안에는 공작과 맛달레나, 집밖에는 질다와 리골레토의 두 쌍이 각각 다른 감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유명한 4중창 "언젠가 너를 만난 것 같다. (Un di, se ben rammentomi)" 이다.
"오, 아름다운 사람아!..." 하고 달콤한 말로 꾀는 공작, "농담의 말씀 거두시죠..." 하면서도 뜻은 있어하는 맛달레나, "사랑에 속은 이몸..." 하며 찬탄하는 질다, "울면 뭐하리, 오직 복수뿐!..." 하고 분노에 떠는 리골레토.
원작자 위고가 절찬해 마지 않은 것이 이 4중창이다. 리골레토는 질다에게 남장을 하고 베로나로 떠나라고 명하고 집에 보낸다. 이윽고 스파라푸칠레가 돌아오므로, 리골레토는 그에게 공작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우선 사례금의 절반을 준다.리골레토가 퇴장하고 스파라푸칠레가 집안에 들어가자, 날은 기울어 심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천둥번개가 천지를 진동한다. 베르디는 여기서 오케스트라 이외에 합창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더할 수 없이 멋진 효과를 내고 있다.
이윽고 공작은 2층으로 안내되어, 흥겹게 "여자의 마음" 을 부르면서 잠자리에 든다. 곧 남장을 한 질다가 나타나서 다시 벽 구멍으로 집안을 엿 본다. 이 때 스파라푸칠레와 맛달레나가 살인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사실 맛달레나는 공작에게 반해버렸기 때문에, 공작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꼽추인 의뢰인을 죽여 달라고 오빠에게 조른다. 스파라푸칠레는 처음에 반대하다가 결국 타협하고 만다. 즉 한밤중이 되기 전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대신 죽이기로 한다. 이 이야기를 엿들은 질다는 그저 자기가 사랑하는 공작 대신에 죽으리라 결심한다.
잠시 뒤에 질다는 문을 두드린다. 밖은 여전히 천둥이 친다. 순간 스파라푸칠레는 어찌할까 망설인다. 한편 이것으로써 공작의 목숨이 구원받게 된다고 생각한 맛달레나는 오빠를 재촉한다. 맛달레나가 문을 열고 스파라푸칠래는 문 뒤에 숨는다. 질다가 들어서자 등불은 꺼지고, 어둠속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비바람이 잠든 한밤중에 약속대로 리골레토가 나타난다. 스파라푸칠레는 묵직한 가죽부대를 리골레토에게 건네고, 잔금을 받아쥐고는 자취를 감춘다. 리골레토는 이걸로 복수는 끝났다고 좋아하면서 부대를 강에 던지려고 끌고 간다. 그때 스파라푸칠레의 집안에서 공작이 노래하는 "여자의 마음" 이 들리므로, 리골레토는 깜짝 놀라 부대를 끌러본다.
부대 속의 희생자는 다름아닌 자기 딸 질다가 아닌가! 리골레토는, "오, 내 딸 질다야, 질다! 뭐라고 말 좀 해 다오. 나는 그놈에게 속았구나!...." 하면서 질다를 끌어 안는다. 질다는 임종의 괴로움 속에서도, "누구세요? 아, 아버지!..." 하면서 애절한 2중창이 벌어진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제가.... 제가 그분 대신이 되었어요. 그분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무서운 일이로구나! 복수가 네게 돌아가다니..." "저는 이제부터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 곁에 가겠어요, 이제는 그분 일도, 저의 일도 잊어 주세요, 아버지..." "죽어서는 안된다. 나를 두고 가서는 안된다. 질다, 정신 차려라!"
질다는 숨이 끊어진다. 리골레토는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워서, "오, 무서운 저주로다!" 하고 외치면서 질다의 시체 위에 쓰러진다.
가수진도 물론 일류급이지만, 게오르그 솔티 경의 지휘가 매우 뛰어나다. 토스카니니를 연상케하는 응집력과 앙상블의 뛰어남이 크게 두드러진다. 특히 종막의 극적인 전개는 이 오페라의 리리시즘과 다이나미즘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어서 완전히 압도된다. 뭐니뭐니해도 메릴의 리골레토는 사람을 울린다. 이 역을 이만큼 몸에 익힌 가수는 그다지 자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성악적으로나 극적으로 아주 원숙한 표현에 성공하고 있다. 메릴이야말로 이 역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가수라고해도 과찬은 아니다. 모포도 적역을 만나 콜로라투라의 서정에 투철한 호연을 보인다. 끝장면에서의 노래는 듣는이의 가슴에 깊이 스며드는 명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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