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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2번 E단조 Op.27

산야초 2017. 7. 25. 23:52




Symphony No.2 in E minor, Op.27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2번 E단조 Op.27
Sergei Rachmaninov 1873∼1943

 

 



Orchestra of the Academy of Santa Cecilia, Rome
Sir Antonio Pappano, conductor

작품해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으로 그 이름을 음악사에 길이 남기고 있는 라흐마니노프는 70년의 생애를 살면서 모두 3곡의 교향곡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들은 그의 피아노 작품들에 비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어서 그가 뛰어난 교향곡 작곡가라는 사랑이 망각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말 러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피아니스트로 일생에 그 명성을 떨친 연주자였다. 이러한 활동은 그가 미국으로 망명하여 70세로 작고한 1943년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사이 사이에 교향곡이나 관현악곡 또는 협주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 센티멘털리즘을 그대로 물려받은 작곡가다. 그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 중반에 이르기까지 삶은 영위했지만, 음악만큼은 철저하게 19세기 풍의 서정성과 낭만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더구나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이 '현대'라는 시각적 공간적 개념을 그대로 흡수하여 구체화 시켰음을 비교해 볼 때, 라흐마니노프의 고집스러운 복고취향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뛰어넘고, 시대적인 음악성의 특수성을 뛰어넘어 오로지 자신이 예찬했던 음악의 성곽(城郭)을 굳게 지켜나간 '외로운 파수꾼'이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생애의 모든 기간을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병행해 가면서 음악의 길을 걸어간 세기말과 세기초의 거장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라흐마니노프는 당대에 그를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과 기교의 소유자였다. 그는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하여 피아노 건반을 완전히 압도하는 연주를 펼쳤으며, 그의 연주를 실제로 접한 사람들은 그 강렬한 여운을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고 한다.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피아노곡들은 그 자신이 직접 연수하기 위해 작곡한 것들이어서 어느 곡이나 고도의 연주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교향곡 작곡가로서 라흐마니노프는 3개의 장려한 작품 안에 그 모든 역량과 음악적 이상을 쏟아 넣고 있다. 1895년에 작곡되어 글라주노프의 지휘로 초연된 제1번 d단조를 필두로 하여, 1907년에 작곡된 제2번 e단조에 이르러서 그는 강렬하면서도 러시아적 우울이 꿈틀거리는 걸작을 남겨 놓게 되었다.
1908년 페테르스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제2교향곡이 초연되고 난 뒤에 그의 조국 러시아는 걷잡을 수 없는 혁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1917년 레닌을 앞세운 불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이 러시아를 붉은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예술적 진로를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18년 초 페테르스부르크를 떠나 스위스로 망명길을 택한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그해 가을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라흐마니노프의 중년과 만년을 결산지은 연주와 작곡활동이 이루어졌고, 그의 세 번째 교향곡도 이 망명기간 동안에 쓰여진 최후의 교향곡이 되었다. 이 세 곡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작품은 op27의 제2번 교향곡이다. 그러나 이 교향곡이 나오기까지 라흐마니노프가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897년 3월에 발표했던 교향곡 제1번이 예상과는 달리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게 되자 그는 그 충격으로 인해 극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거의 자포자기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 상태는 그 스스로 이 교향곡을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연주될 수 없도록 '절대 연주금지' 시켰는데 훗날 그는 이때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렇게 작곡가로서, 인간으로서 삶의 의의를 잃었던 라흐마니노프는 한 친구를 소개로 최면요법의 권위자인 니콜라이 다르 라는 의사를 만나면서 극적인 재기를 거두게 된다. 그로부터 약 3개월 동안 최면치료를 받은 라흐마니노프는 드디어 불사조처럼 소생, 다시 작곡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가 병마에서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완성해 대성공을 거둔 작품은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었고, 이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02년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후 1906년에는 가족과 함께 드레스덴으로 이주, 그곳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창작에 몰두한 끝에 자신의 두 번째 교향곡 e단조를 완성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 교향곡 제2번은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라흐마니노프의 세 개의 교향곡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라흐마니노프다운 어법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서정적인 분위기로 폭넓게 곡을 펼쳐 가는 대목은 마치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제1악장 : 라르고-알레그로 모데라토
소나타 형식. 차분하면서도 약간 음울한 기분의 도입부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전곡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몇 개의 동기가 깔려 있다. 예컨대 저음 현의 연주에 이른 목관과 혼의 폭넓은 동기, 그리고 제1바이올린에 의해 8분음표로 흐르는 섬세한 움직임 등의 동기가 되풀이되면서 고조되어 나가고 잉글리쉬 혼이 첫머리 동기에 의한 음형으로 주부로의 중계 역할을 한다. 알레그로 모데라코의 주부로 들어서면 먼저 바이올린에 의한 제1주제가 긴장된 느낌으로 제시되고 이것이 확대된 후 추이악구가 등장한다. 다시 이에 상응하는 클라리넷 독주가 나타나고 목관과 현에 의한 서정적인 제2주제가 G장조로 노래된다. 이어 전개부로 진행되면서 잉글리쉬 혼에 의해 제1주제가 모습을 나타내고 이것이 고조되는 가운데 금관이 멋진 팡파르를 연주한다. 극적인 분위기를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선 제1, 2주제가 라흐마니노프다운 악상으로 전개된 뒤 도입부의 바이올린 동기를 소재로한 코다가 이 1악장을 마무리 짖는다.

제2악장 : 알레그로 몰토
스케르초풍의 악장. 첫머리에 뚜렷한 윤곽의 리듬이 등장하고 이외에 야성미를 지닌 주제가 혼에 의해 시작된 후현에 인계된다. 다시 리듬을 강조한 금관이 절규하듯 나타나고 이윽고 모데라토로 변하면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부드럽고 온순한 멜로디의 노래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곧 스케르초의 리듬속으로 사라진다. 중간쯤에서 스케르초의 주제요소를 바탕으로한 대위법적인 취급이 모습을 드러낸 후 다시 스케르초의 주부로 되돌아오며 곡을 끝마친다.

제3악장 : 아다지오
먼저 바이올린에 의해 슬라브풍의 아름다운 노래가 전개된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이를 이어 받아 한가로운 듯한 느낌의 선율로 연주해 나간다. 템포가 포코 피우 모소로 바뀌어 1악장에서 나타났던 도입부의 바이올린에 의한 동기가 변형되어 나타나고 다시 오보에가 이를 받는다. 잠시 휴지부가 등장한 후 처음 템포로 돌아와 곡을 전개시켜나간다.

제4악장 : 알레그로 비바체
짧은 ff의 전주가 등장하고 힘찬 제1주제가 곡을 이끌어 간다. 행진곡풍의 에피소드를 사이에 두고 이 주제가 반복된 뒤 진폭있는 패시지로 묶어지면서 D장조의 제2주제로 옮겨진다. 도중에 아다지오로 바뀌는 듯하다가 이내 본래의 템포로 돌아간다. 곡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주제와 동기들을 재현시키며 힘차게 연주하는데 제2주제가 최고로 고조된 다음 코다에서 제1주제의 리듬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곡을 끝마친다.